한국 D램산업엔 “독보단 약”
수익성 좋지 않은 상태선 비용부담만 커져
”과거 LG반도체ㆍ현대전자 합병이 좋은 예”
일본 엘피다와 미국 마이크론의 대만 D램사 합병 논의가 가속화하면서 한국 D램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22일 포브스 등 해외 언론과 대만 현지언론 등에 따르면 세계 3위 D램 제조사인 일본 엘피다가 대만 정부의 D램 산업 회생을 위한 30억달러 이상의 긴급자금을 지원받기 위해 대만 파워칩과 렉스칩, 프로모스간 4사 합병안을 제출했고, 미국 마이크론은 대만 난야와 이노테라간 3사 합병안을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본 엘피다는 대만 D램사들과의 합병과 대만정부의 긴급자금을 수월하게 받을 수 있도록 대만 정부측에 구제금융기금으로 자사 지분을 인수해 최대주주가 되라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대만 정부가 자국 D램 업체가 해외 D램사와 합병할 경우 하청 업체로 전락하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해외 D램사의 기술이전을 구제금융 조건으로 내걸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엘피다는 대만 정부가 자사의 50나노급 공정 등 첨단 D램 생산기술을 대만사에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혹을 없애기 위해 이같은 제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만 정부는 내달 D램 구제금융 자금집행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엘피다와 마이크론의 기술이전이 보장된다면 합병에 따른 구제금융 자금을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엘피다와 마이크론은 대만 정부로부터 자금도 지원받고, 투자 없이 대만의 막대한 D램 생산라인을 손에 넣게 되는 셈이다.
이같은 엘피다와 마이크론의 대만업체 합병이 성사된다면 당장 세계 D램 업계의 판도에 큰 변화가 온다. 시장 조사업체인 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엘피다-파워칩-렉스칩-프로모스 4사의 지난해 1∼3분기까지 D램 점유율(매출기준)은 모두 27%에 육박, 19.1%를 기록한 하이닉스를 단번에 제치고 1위 삼성전자(30.3%)를 턱밑까지 쫓아가는 상황이 된다. 또 마이크론-난야-이노테라의 점유율도 17% 가량으로 늘어 하이닉스를 바짝 추격하게 된다.
물론 엘피다와 마이크론이 합병으로 D램 생산능력과 점유율만 늘린다고 능사는 아니다. 국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지난해 50나노급 D램 생산에 들어갔고, 올해 40나노급 생산에 들어가는데 반해 엘피다와 마이크론은 아직 50나노급 생산조차도 들어가지 못하는 등 기술격차가 6개월에서 1년 가량 벌어져 있기 때문이다. 기술격차는 곧 원가경쟁과 수익성에서 밀린다는 얘기다. 게다가 D램 가격이 아직 바닥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합병이 이들의 수익성을 더욱 악화시켜 자멸하는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투자증권 박영주 연구원은 “엘피다와 마이크론의 대만 D램사 합병은 오히려 한국 D램 산업에 큰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며 “D램 생산라인 1+1은 2가 아니라 보통 1.5가 되고, 수익성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의 합병은 더 많은 유지비 등 비용부담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LG반도체와 현대전자의 합병시 1년 이상 고전을 면치 못한 사례가 있다”며 “엘피다와 마이크론은 합병을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핀치에 몰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D램 주력제품인 1Gb DDR2 667㎒ 고정거래 가격은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내리 하락하다가 이달 들어 하락세를 멈추고 0.81달러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