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지폐엔 “현대重 발전기”가… 기술이 그들을 감동시켰다
- 2009/01/14 11:06 발신지:Seoul/한국
지난 8일 쿠바 수도 아바나 북동부 레그라구(區). 쿠바 사회주의 혁명 50주년 기념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는 거리를 지나자 외딴 곳에 40피트(약 12.2m)짜리 컨테이너 30여 개가 옆으로 나란히 놓여 있었다. 컨테이너에서는 쉴 새 없이 굉음이 흘러나왔다. 현대중공업이 2007년 1월 준공한 “이동식 발전소”이다. 굉음은 컨테이너 안에 설치된 엔진이 중유를 공급받아 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쿠바 전체 전력 수요 30% 이상 공급
이 설비는 현대중공업이 자체 개발한 “힘센엔진”을 비롯해 발전기 구동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컨테이너에 담아 전기를 생산하는 소규모 발전 시스템이다. 필요에 따라 설치와 이동이 편리해 발전·송전 시설이 취약한 쿠바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레그라 발전소에 설치된 28대를 포함해 쿠바 전역에 372대의 이동식 발전 설비가 올해까지 설치될 예정이다. 이동식이 아니라 고정식이지만, 소규모로 설치가 쉬운 디젤 발전 설비 172대도 연내에 모두 가동된다. 전체 544대 설비의 발전 용량은 1062MW. 쿠바 전체 전력 수요의 30%가 넘는다.
빈센티 데 라 오 레비 쿠바 전력청장은 “쿠바의 극심한 전력난을 해소하는 데 현대중공업 설비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남미 시장 진출을 모색하던 현대중공업은 쿠바가 대규모 발전 사업을 추진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협상에 나서 2005년 9월 첫 수주를 했다. 레그라 발전소는 현대중공업이 처음으로 준공한 발전소. 전체 수주액은 7억2000만달러로,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쿠바 수출액 3억1712만달러(11월 현재)의 2배가 넘는다.
◆화폐에도 등장한 발전기
레그라 발전소 통제 센터 안에는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 평의회 의장이 2006년 공사 중이던 이곳을 방문해 현장 기술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 4장이 걸려 있었다. 당시 카스트로는 “쿠바도 한국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현대중공업 설비에 대한 쿠바의 관심과 신뢰를 보여주는 예가 또 있다. 쿠바가 2007년 1월 새롭게 발행한 10페소(약 1만2000원)짜리 지폐에 “에너지 혁명”(Revolucion Energetica)이라는 문구와 함께 현대중공업의 이동식 발전 설비가 도안됐다.
현대중공업 변재욱 부장은 ”쿠바 무역 관례상 전례가 없는 선수금을 받고 납품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공요인에 대해 정병옥 상무는 “쿠바의 수요에 잘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허리케인 피해가 잦은 쿠바는 대형 발전소를 지었다가 무너지면 전력 피해가 큰 데 비해 현대중공업 설비는 피해가 제한적이다. 무엇보다 극심한 전력난을 빨리 해소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었다. 아벤쇼 로페즈 톨레도(Avencio Lopez Toledo) 레그라 발전소장은 “대형 발전소를 짓는다면 3~4년 걸리지만 현대중공업 발전소는 1년도 안 돼 전기를 생산할 수 있어 쿠바에는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2년 지나도 차 번호판 못 받아
쿠바는 우리와 미수교 국가인 데다 체제가 달라 현대중공업도 진출 초기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시장에 가도 상품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가 먹는 쌀을 두 달간 구하지 못해 안남미와 감자, 한국에서 가져간 라면으로 버텼다. 담요 20개가 필요했는데 아바나 시내를 두 달간 돌아다녀 겨우 5장을 구했다.”(정의범 과장)
현대중공업은 쿠바 전력청의 허가를 받아 공사 현장에서 쓴 후 정부에 기증하는 조건으로 소형 크레인을 부착한 1t짜리 트럭 2대를 들여왔다. 하지만 정작 교통부에서는 번호판을 내주지 않았다. 관공서 차량에 부착하는 하늘색 번호판을 줘야 하느냐, 외국 기업 차량에 부착하는 오렌지색 번호판을 줘야 하느냐 결정하기가 힘들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 트럭은 2년이 넘도록 운행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꾸준한 “현지화” 작업을 통해 쿠바인들을 사로잡았다. 발전소 완공 후 1년까지만 기술 보증을 해주면 되지만, 현대중공업은 기한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 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현지 기술자를 위한 교육 센터를 세워 기술 교육까지 시켰다. 쿠바 정부는 전력 사정이 안 좋은 니카라과와 아이티에 현대중공업이 이동식 발전 설비 100대를 팔도록 주선해 주기도 했다. 빈센티 데 라 오 레비 쿠바 전력청장은 “한국은 미수교국이지만 현대중공업과 성공적인 사업 모델을 만들었다”며 “앞으로도 현대중공업과 계속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최근에는 이라크 정부로부터 1.7MW급 144기(3억 8천만 달러)의 이동식 발전기를 추가로 수주했다.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품을 만들고 있는 만큼 주문 협상이 끊이질 않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회사는 이 같은 비조선 부문의 업황 호조에 힘입어 올 상반기 영업이익도 대폭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