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10월 9일. 에조의 보고서
을미사변이 터진 바로 다음날 작성된 또 한 건의 보고서가 일본 본국으로 날아왔다. 조선 정부 내부(內部, 요즘의 내무부) 고문의 직책을 가지고 있던 이시즈카 에조(石塚英藏)가 일본 정부의 법제국장관인 스에마쓰 가네즈미(末松謙澄)에게 별도로 보낸 장문의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를 맨 처음 찾아낸 사람은 일본의 역사학자 야마베 겐타로(山 健太郞, 1905∼1977). 그는 1966년 2월 <일한병합소사(日韓倂合小史)>를 이와나미(岩波書店)에서 발간했다.
그는 이 저서에서 “사체 능욕”이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썼는데, 이것이 바로 그후 국내 역사학계에서 거론되기 시작한 “명성황후 능욕설”의 원조가 됐다.
실제로 1988년 <민비암살(閔妃暗殺)>을 발간한 일본의 저명한 전기작가 쓰노다 후사코((角田房子) 여사도 자신의 저서에서 에조를 “민비의 유해 곁에 있던 일본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야마베 겐타로가 “에조 보고서”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1966년 9월 발간한 <일본의 한국병합(日本の 韓國倂合)>이었다. 물론 야마베 겐타로의 언급 이후 “능욕설”은 재일 사학자 박종근, 나카쓰라 아키라 등에 의해서도 거론된 바 있기는 하다.
”에조 보고서”가 다시 언급된 것은 22년이 흐른 뒤였다. 앞에서 거론했던 쓰노다 후사코 여사의 <민비암살>에 잠시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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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年 10月 9日. エゾの報告書
乙未事変が裂けたすぐ翌日作成されたまた一件の報告書が日本本国で飛んで来た. 朝鮮政府内部(内部, このごろの内務省) 顧問の職責を持っていたイシズカエゾ(石塚英蔵)が日本政府の法制局長官であるスエマスがネズミ(末松謙澄)に別途に送った長文の報告書だった.
が報告書を最初捜し出した人は日本の歴史学者山部ゲンタで(山 健太郎, 1905〜1977). 彼は 1966年 2月 <日韓併合小史(日韓併合小史)>をこれとナミ(岩波書店)から発刊した.
彼はこの著書で死体陵辱という表現を初めて書いたが, これがちょうどその後国内歴史学界で挙論され始めた ¥"明成皇后陵辱説¥"の援助がなった.
実際に 1988年 <明成皇后暗殺(閔妃暗殺)>を発刊した日本の著名な電気作家スノ−だ厚謝して((角田房子) 女史も自分の著書でエゾを明成皇后の有害のそばにいた日本人だと説明した事がある.
山部ゲンタでが ¥"エゾ報告書¥"の存在を具体的に言及したことは 1966年 9月発刊した <日本の韓国併合(日本の 韓国併合)>引き継いだ. もちろん山部ゲンタへの言及以後 ¥"陵辱説¥"は在日史学者朴種根, 中津だとAkiraなどによっても挙論された事があることはある.
¥"エゾ報告書¥"がまた言及されたことは 22年が経った後だった. 前で取り上げたスノ−だ厚謝して女史の <明成皇后暗殺>にしばらく登場したの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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