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世紀に 成功学と同じぐらい脚光を浴びる分野が 失敗学だ。
失敗の原因を知ってこそ成功のためにより大きな跳躍が可能だからだ。
「愚かな朝鮮」(戦略と文化出版)は19世紀末の朝鮮がなぜ日本に強制的に開港させられ、
100年前には なぜ 植民支配の苦痛の中に歴史の断絶を体験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か、
16~18世紀朝鮮と日本の比較を通じて鋭く指摘した本だ。
ある財閥総師は
「中国が追いかけてきて日本は先んじる状況で韓国はサンドイッチの境遇」と言ったが、
本を書いたムン・ソヨン、ソウル新聞記者は
すでに歴史的に16~19世紀に朝鮮は 当時の中国(明・清)と日本(江戸幕府)の間に挟まったサンドイッチである
可能性が高かったと指摘する。
朝鮮が蛮夷、倭寇程度と無視した日本は16世紀から
ヨーロッパや東南アジアなど外部世界と疎通して交流を拒否しなかったし、
数百年間蓄積された経済力を土台に 日本独特の文化の花を咲かせることができた。
著者は18世紀頃から 朝鮮と日本の間の文物交流逆転現象が起き始めたと主張する。
代表的な例として18世紀中頃、ヨーロッパ王室では日本の彩色陶磁器とともに漆器木家具が流行した。
英語でジャパン(Japan)は日本を意味するが「漆器・漆」という普通名詞でもある。
チャイナ(China)は中国を意味するが陶磁器も意味する。
ヨーロッパは16世紀以後、中国や日本から輸入された陶磁器や漆器に該当国家の代表性を付与し、
「国家の名前=普通名詞」に転換したのだ。
だが、同時期、コリアの普通名詞は存在しない。
著者は文化、経済、社会、政治の四つの部分に分けて朝鮮と日本両国の姿を綿密に分析する。
自ら「陶磁器強国」を主張する韓国はなぜ世界的な照明を受けられず、韓国より数百年遅く陶磁器産業に飛び込んだ日本は
陶磁器元祖のようにそびえ立ったのだろうか。
ここにも朝鮮と日本の差があった。17~18世紀彩色陶磁器でヨーロッパ王室と貴族を魅了した日本は明治維新以後、
産業化された生産方式に切り替えたヨーロッパと競争するために西洋の専門家を雇用し、近代的陶磁器技術を導入したが、
何の準備もなしに開港期をむかえた朝鮮の窯は「倭磁器」と呼んだ磁器が安い価格で輸入されて門を閉じるほかなかった。
この過程で朝鮮末期まで 命脈を保ってきた伝統陶磁器の製作技法も空しく消えた。
ことに対する分析も興味深い。
中国と日本は16世紀、遅くとも17世紀にジャガイモ・サツマイモなど救荒作物を受け入れたが、
17~18世紀の深刻な大飢饉を体験した朝鮮は 救荒作物伝来が遅れて 草根木皮で延命する苦しい生活を送るほかなかった。
だから停滞した朝鮮末期の人口は朝鮮の手工業と商業の発達に悪影響を及ぼしたというのが著者の主張だ。
「思考の枠組み」である両国言語も比較する。
ハングルは1446年に朝鮮王の世宗(セジョン)が作ったが朝鮮王室や支配層からは敬遠された。
だからハングルで書かれた古典文学は日本に比べてかなり少ない。
反面、日本は漢字の草書体を模倣したヒラガナなどを作った直後から各種の詩や小説を出したことが
後の日本文学の成果と出版の発展に大きな影響を及ぼした。
この本の最も大きな長所はこれまで歴史学者が
あるいは国民感情をおもんばかって躊躇してきた時点を選んで
朝鮮と日本を比較したことだ。
この本は表面では歴史書物の姿をしているが、現在の韓国社会が直面している問題とも直結した部分が多い。
本を閉じた後「真実は不快で痛みを伴うが、受け入れれば新しい未来を作る力になるだろう」という
著者の話が長い余韻を残す。
イ・ウンジュ記者
ソース:ソウル新聞(韓国語) 朝鮮の没落…16~18世紀日本で答えを探す【愚かな朝鮮】ムン・ソヨン著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01030017006&s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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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の書評を読んでも、非常に、「甘い」認識が見えるが、少なくとも10年前には、
こんな本を出したらソウル広場で火あぶりにされただろう。
今は無きNAVERも、存在する意味はあったということか。
ちなみに、個人的には、韓国人が、この本を受け入れようが、受け入れまいが、
「韓国を嫌い」という、軸はぶれないと思いますが。
21 세기에 성공학과 같을 정도 각광을 받는 분야가 실패학이다.
실패의 원인을 알아야만 성공을 위해서 보다 큰 도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조선 」(전략과 문화 출판)는 19 세기말의 조선이왜 일본에 강제적으로 개항 당해,
100년전에는 왜 식민 지배의 고통안에역사의 단절을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일까,
16~18 세기 조선과 일본의 비교를 통해서 날카롭게 지적한 책이다.
어느 재벌총사는
「중국이 뒤쫓아 오고 일본은 앞서는 상황으로 한국은 샌드위치의 경우」라고 말했지만,
책을 쓴 문・소욘, 서울 신문기자는
벌써 역사적으로 16~19 세기에 조선은 당시의 중국(명・청)과 일본(에도 막부)의 사이에 협 기다린 샌드위치이다
가능성이 높았다고 지적한다.
조선이 만이, 일본인 정도와 무시한 일본은 16 세기부터
유럽이나 동남아시아 등 외부 세계와 소통 해 교류를 거부하지 않았고,
수백 년간 축적된 경제력을 토대로 일본 특유의 문화가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저자는 18 세기무렵부터 조선과 일본의 사이의 문물 교류 역전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예로서 18 세기 중순, 유럽 왕실에서는 일본의 채색 도자기와 함께 칠기목 가구가 유행했다.
영어로 재팬(Japan)은 일본을 의미하지만「칠기・옻나무」라고 하는 보통명사이기도 하다.
차이나(China)는 중국을 의미하지만 도자기도 의미한다.
유럽은 16 세기 이후, 중국이나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도자기나 칠기에 해당 국가의 대표성을 부여해,
「국가의 이름=보통명사」로 전환했던 것이다.
하지만, 동시기, 코리아의 보통명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는 문화, 경제, 사회, 정치의 네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조선과 일본 양국의 모습을 면밀하게 분석한다.
스스로「도자기 강국」를 주장하는 한국은 왜 세계적인 조명을 받지 못하고, 한국에서(보다) 수백년 늦고 도자기 산업에 뛰어든 일본은
도자기 원조와 같이 우뚝 솟아 선 것일까.
여기에도 조선과 일본의 차이가 있었다.17~18 세기 채색 도자기로 유럽 왕실과 귀족을 매료한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산업화 된 생산 방식으로 전환한 유럽과 경쟁하기 위해서 서양의 전문가를 고용해, 근대적 도자기 기술을 도입했지만,
어떤 준비도 없이 개항기를 맞이한 조선의 가마는「야마토 자기」라고 부른 자기가 싼 가격으로 수입되고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조선 말기까지 명맥을 유지해 온전통 도자기의 제작 기법도 허무하게 사라졌다.
조선 말기에 생산력 증대에 필수의 인구증가가 거의 없었던것에 대한 분석도 흥미롭다.
중국과 일본은 16 세기, 늦어도 17 세기에 감자・고구마 등 구황 작물을 받아 들였지만,
17~18 세기의 심각한 대기근을 체험한 조선은 구황 작물 전래가 늦어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괴로운 생활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정체한 조선 말기의 인구는 조선의 수공업과 상업의 발달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사고의 골조」인 양국 언어도 비교한다.
한글은 1446년에 조선왕의 세종(세종)이 만들었지만 조선 왕실이나 지배층에서는 경원되었다.
그러니까한글로 쓰여진 고전 문학은 일본에 비해 꽤 적다.
반면, 일본은 한자의초서체를 모방한 히라가나등을 만든 직후부터 각종의 시나 소설을 보냈던 것이
후의 일본 문학의 성과와 출판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지금까지 역사학자가
자료 부족을 이유로,
혹은 국민 감정을 것 어리석다는 것은 주저 해 온 시점을 선택해
조선과 일본을 비교한 것이다.
이 책은 표면에서는 역사 서적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현재의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와도 직결한 부분이 많다.
책을 닫은 후 「진실은 불쾌하고 아픔을 수반하는이, 받아 들이면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힘이 될 것이다」라고 한다
저자의 이야기가 긴 여운을 남긴다.
이・운쥬 기자
소스:서울 신문(한국어) 조선의 몰락…16~18 세기 일본에서 대답을 찾는【어리석은 조선】문・소욘저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01030017006&s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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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을 읽어도, 매우, 「단」인식이 보이지만, 적어도 10년전에는,
이런 책을 내면 서울 광장에서 화형으로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없는 것 NAVER도, 존재하는 의미는 있었다고 하는 것인가.
덧붙여서, 개인적으로는, 한국인이, 이 책을 받아 들이든지, 받아 들이지 않든지가,
「한국을 싫어해」라고 하는, 축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