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経済 PositiveNegativeFreeStyleArguments

「教えてあげた」「伝えてあげた」

 まず、日本との関係が最初に登場するのは、高句麗、新羅、百済のいわゆる三国時代の章においてであるが、そこに記述されているのは、なんとも恩着せがましい記述である。中学教科書はこう記述する。

 百済は、「近肖古王のとき、阿直岐と王仁は日本へわたり、漢文・論語・千字文を伝えてあげ、武寧王の時に段陽爾と高安茂などが、漢学と儒教を教えてあげ、日本に政治思想を忠孝思想を普及させてあげた。つづいて、聖王の時には仏教を教えてあげ、そのほか天文・地理・暦法などの科学技術を伝えてあげた。」

 高句麗も「たくさんの文化を日本に伝えてあげた」という。例えば「高句麗の僧侶慧慈は聖徳太子の師であり、曇徴は紙、墨、硯をつくる技術を教えてあげ、法隆寺の金堂壁画も彼の作品として知られている」。さらに、「新羅は船をつくる技術、ならびに堤防と城郭を築く技術を、伽耶は土器をつくる技術を日本に伝えてあげた」と記述している。

 ここでいう「教えてあげた」「伝えてあげた」という韓国語の言い方は決して翻訳のニュアンスではない。これは「親が子供に、先生が生徒にといった目上の人が目下の人に使う表現」であり、実は「文化的優越感を堅持する」ため使われているのだという(小学校教科書の訳者「あとがき」)。同様の記述は高校教科書や小学校教科書にもある。その意味で、韓国では小中高一貫して古代日本文化はみんな朝鮮から伝えられたものだ、と言わんばかりの記述をまず教えられていることになるわけである。

 むろん、ここで書かれていることがすべて実証された歴史的事実というわけではなく、例えば曇徴が法隆寺金堂壁画を書いたというのは明らかに事実誤認である。

 

◆朝鮮は文化的「優越者」

 こうした「優越感」の誇示は、単に古代の文物伝搬という話に止まらない。中世・近世でも同様である。十五世紀頃に盛んだった富山浦など三港を通じての対日貿易は「日本の封建領主たちは……交易を懇請してきた。朝鮮は……朝貢貿易を許し……(李朝)朝鮮初期の交易によって、朝鮮の先進的な文物は、日本……に多くの影響を与えた」と書いている。

 また、徳川幕府と李朝朝鮮との間で「朝鮮通信使」による交流があったことは知られているが、その通信使についても「……日本は朝鮮を文化の先進国と考え、使節を派遣するよう要請してきた。これに対し、朝鮮では通信使を派遣したが、……日本は通信使の一行をとおして先進学問と技術を学ぼうと懸命であった」(中学)、「徳川幕府は、先進文物を受け入れるために、……交渉を許可するよう懇請した」(高校)と書かれている。つまり、中世や近世でも、朝鮮は「先進学問と技術」をもつ先進国として描かれ、日本はその先進文物を「懇請」し、朝鮮はそれを「許可」する立場の国だったというわけである。要するに、ここに共通するのは朝鮮を「文化的優越者」と位置づけ、日本は「劣等」であるとの姿勢である。

 しかし、ここでいう朝鮮の「先進学問」とは要は漢文・漢詩であり、通信使の書画をもとめた、いわばミーハー的な日本人がいたという話に過ぎない。念のために事実を記せば、中世の交易は朝鮮の綿布と日本の銅(のちには銀)との交易であり、室町前期から朝鮮側は日本の水車や和紙(彼らは倭紙と書く)の製造技術の導入をはかろうとしているが、結局は成功しなかった(下條正男氏)。「先進学問と技術を学ぼうと懸命であった」のは、むしろ朝鮮側だったというのもまた事実なのである。さらに江戸期に入ると、通信使の通訳が、江戸市街をみて「かつて見た北京にも劣らないと驚嘆した」と記していることもあげておきたい。

 

◆「日本征伐」

 こうした優越感の誇示は外交・軍事でも貫かれていて、中世の「元寇」の記述にも表れている。

 「元は日本を征伐するために軍艦の建造、兵糧の供給、兵士の動員を高麗に強要した。こうして二次にわたる高麗・元連合軍の日本遠征が断行されたが、すべて失敗した」

 ここでは「征伐」という言葉が歴史用語ではなく、教科書の説明記述として使われている。むろん、「征伐」とは悪い者を懲らしめるという意味を含む。しかも、高麗は「日本征伐」に無理矢理加担させられたかのような書き方になっているが、事実はまったく違う。高麗軍は元軍に加わった(とりわけ文永の役では元寇の主体は高麗水軍だった)だけでなく、二度とも元の世祖に日本への遠征を要請したのは高麗自身(忠烈王)であることは明白な事実である。

 元への侵略要請は書かず、未だに「征伐」というのは、日本蔑視史観といっても過言ではない。

 十五世紀の朝鮮が日本を「島夷(引用者注・日本のこと)は……人類に歯うるに足らず」(成宗実録)と認識し、また江戸期でも通信使は日本を「倭」と呼んでいた。しかし、この教科書では当時の認識がそうであると書いているのではなく、現代の執筆者がそう書いている。だとすれば、これは単に優越感の誇示としてより日本蔑視と言っても過言ではなかろう


◆隠蔽されるシナへの「服属」

 日本に対して自国の「優越」を誇示するこの教科書は、では中国との関係をどう記述しているのだろうか。というのも古代から十九世紀末まで、どの朝鮮王朝もシナの王朝から冊封をうけ(シナの皇帝によって朝鮮王に認知されること)、臣従していた。つまりシナに服属していたことは誰もが知るところだからである。

 実際、年号もシナのものを一貫して使っていた。さらには、新たな国王の即位、立后、立太子がある毎にシナの承認をもとめ、外交関係も問題が起こればシナの意見を求めていた。むろん、朝貢は欠かすことなく行われ、シナからの使節を迎える際は、朝鮮王は使節をソウル城外に出て迎え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ところが、中高の教科書では、驚くべきことにその点はまったく隠されてしまっている。例えば明と李朝との関係について「明との親善関係を維持して王権を固め、国の政治を安定させようとした」と記述されている。他のケースでも「冊封」という歴史用語は見あたらない。

 では、明への朝貢はどう書かれているのか。「朝鮮は朝貢を通して明の名分を立ててやり、使臣の往来を通して経済的・文化的実利を得た」と書かれていて、一応「朝貢」という用語は使われているが、明の顔をたてるために貢ぎ物をしただけで、要は朝鮮は実利を得たのだというのである。高校教科書では朝貢という用語自体がなく、「朝鮮からは明に対して一年に数次の定期的な使節を派遣し、その他にも随時、使節を派遣した」と、単なる外交使節のような記述になっている。

 では、事実はどうなのか。「朝貢」は決して儀礼にとどまらず、「金百両、銀千両、白米一万包、絹二千匹」をはじめとする大量の貢ぎ物の献納を義務づけられていた。これに対して明からの見返りもあったが、逆に何かと理由を付けて停止されたりもしたという。「朝貢国としての李朝は、毎年、莫大な出費を必要とした」(呉善花『「日帝」だけでは歴史は語れない』)。つまり、朝貢は「明の名分を立てて」やったり、単なる使節を送ったということではないのである。

 その意味では、朝貢に関する教科書記述は事実の歪曲と言わざるを得ないが、これに関連して明らかに虚偽だという記述もある。教科書は「朝鮮」という国号についてこう書いている。

 「新王朝は、国号を朝鮮と定めた。『朝鮮』は、すなわち古朝鮮の伝統を受けつぐという意味で、檀君に民族の独自性を求めるという意味が含まれている」

 確かに「朝鮮」という言葉にそうした民族意識の側面がないわけではないのだが、ここには決定的な嘘がある。

 『朝鮮王朝実録』(朴永圭著)によれば、「李成桂は、中枢院使・趙琳を明に派遣して、新政権の樹立をしらせる一方、国号を改定するという意思を伝えた。これに対して、明の太祖・朱元璋は新政権の樹立を承認し、国号改定に対して迅速に報告するように要請した。李成桂は元老たちと百官を集めて、国号を論議するようにし、その結果、『朝鮮』と『和寧』という二つの名称が決まった。(中略)このように『朝鮮』と『和寧』という二つの国号が決まると、李成桂は一三九二年十一月、芸文館学士・韓尚質を再び明に派遣し、朝鮮と和寧の二つのなかから一つを国号として採択することを請うた。(中略)翌九三年二月彼は『朝鮮』という国号を決めてもらい、戻ってきた」

 つまり、「朝鮮」という国号を決めたのは宗主国である明なのであって、「新王朝は、国号を朝鮮と定めた」というのは、明らかに嘘ということになる。シナの王朝を宗主国とする体制を「華夷秩序」というが、韓国の教科書は事実をねじ曲げてでもその華夷秩序に組み込まれていたことを隠していると言わざるをえない。

 この教科書には「自主」「主体性」という形容詞が登場する。むろん、「自主」も「主体性」も国家民族にとって重要であるが、だからといって歴史的事実を隠蔽して、中国との対等を装ったり、日本をおとしめたりするのは、夜郎自大といわざるを得ないのではあるまいか。

 

◆記述されない日本の貢献

 近代に入ると、文化的「劣等」であるはずの日本が、明治維新を経て朝鮮の近代化に深くかかわるようになる。しかし、日本の貢献を評価する記述は何もない。むろん、近代化を「教えてもらった」とは書かない。

 教科書は中高ともに、金玉均など開化党によって起こされた甲申政変(明治十七年)、さらに日清戦争開戦にともなう甲午改革(明治二十七年)などが近代化に向けた重要な改革だったと評価している。とはいえ、甲申政変も甲午改革も、日本の支援なしにはあり得なかったことも事実である。その点は教科書も認めてはいるが、それは「強要」だと言ってのける。「甲午……改革は概して日本帝国主義の勢力によって強要された面もあったが、封建的な伝統秩序を打破する近代的改革だったことは間違いない」(高校)と。

 また、これらの改革は、王室経済の問題などの内政改革とともに清からの独立が大きなテーマだった。清からの自立ということは教科書も一応は触れているのだが、最終的に清との服属関係が終わったのは日清戦争によってであるという事実は教科書では触れられない。というのも日清戦争の講和条約である下関条約の記述そのものが教科書にないからである。ちなみに、下関条約第一条は、「清国は朝鮮国の完全無欠なる独立自主の国たることを確認す。よって右独立自主を損害すべき朝鮮国より清国に対する貢献典礼等は将来全く之を廃止すべし」と規定している。

 日本は善意だけで朝鮮の独立を推進したとは言わないが、千数百年にわたる朝鮮とシナ王朝との服属関係を終わらせたことは、朝鮮の歴史にとって非常に重要な画期だと思うのだが、教科書は中高ともにまったくの無視をきめ込む。

 また、近代化の端緒を開いたのも、福沢諭吉など日本人の支援によるものが多いのだが、その点も触れられない。例えば、福沢が支援し日本人が創刊した新聞『漢城旬報』は「わが国最初の新聞」として記述されるが、どういうわけか、日本人の手によることはもちろん、この新聞の最大の功績である漢文ハングル混淆文を最初に使いその普及をめざしたという事実は無視し、その功績は後続の皇城新聞など日本批判の新聞の功績として描かれている。

 清からの最終的な独立達成にしても漢文ハングル混淆文を使った最初の新聞発行にしても、それらに教科書が触れないのは、それ以前は文化的「劣等」者として記述し、その後は「日帝」と非難することになる日本によってなされたからだと見るのは穿ちすぎだろうか。

 


全てbooqに当てはまる

日本の文化文明の祖は韓国

江戸時代以前は朝鮮が発展していた

高麗は元の日本侵攻に反対していた。

中国に服属した惨めな歴史を否定

韓国の捏造歪曲教科書を妄信し真実だと完全に洗脳されている。

私がいくら証拠を出しても盲目的に否定する。

統一教会のような狂信的な信者と同じで。いくら歴史的真実の証拠を出しても

認めず。韓国歪曲教科書の信者であり続ける。

真実の歴史を認めて洗脳から目覚めると精神崩壊して廃人になってしまうからだ。




booq는 왜곡 날조 된 교과서를 망신해 세뇌되었다.

「가르쳐 주었다」 「전해 주었다」

 우선, 일본과의 관계가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고구려, 신라, 쿠타라의 이른바 삼국시대의 장에 대해이지만, 거기에 기술되고 있는 것은, 정말 생색내는 것같은 기술이다.중학 교과서는 이렇게 기술한다.

 (쿠다라)백제는, 「근초고왕 때, 아직기와 왕인은 일본에 건너, 한문·논어·천자문을 전해 주어 무령왕때에 단양이와 타카야스 시게루등이, 한학과 유교를 가르쳐 주어 일본에 정치사상을 충효 사상을 보급시켜 주었다.계속되고, 성왕때에는 불교를 가르쳐 주어 그 외 천문·지리·역법등의 과학기술을 전해 주었다.」

 고구려도 「많은 문화를 일본에게 전해 주었다」라고 한다.예를 들면 「고구려의 승려 혜자는 쇼오토쿠 타이시의 스승이며, 무대막은 지, 먹, 벼루를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 주어 호류사의 금당 벽화도 그의 작품으로서 알려져 있다」.게다가 「신라는 배를 만드는 기술, 및 제방과 성곽을 쌓는 기술을, 가야는 토기를 만드는 기술을 일본에게 전해 주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가르쳐 주었다」 「전해 주었다」라고 하는 한국어의 말투는 결코 번역의 뉘앙스는 아니다.이것은 「부모가 아이에게, 선생님이 학생에게라고 하는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 사용하는 표현」이며, 실은 「문화적 우월감을 견지 한다」모아 두어 사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초등학교 교과서의 역자 「후서」).같은 기술은 고교 교과서나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있다.그 의미로, 한국에서는 초중고 일관해서 고대 일본 문화는 모두 조선에서 전해진 것이다, 라고 하 듯이 기술을 우선 배우고 있게 되는 것으로 있다.

 물론, 여기서 쓰여져 있는 것이 모두 실증된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고, 예를 들면 무대막이 호류사 금당 벽화를 썼다는 것은 분명하게 사실 오인이다.

◆조선은 문화적 「우월자」

 이러한 「우월감」의 과시는, 단지 고대의 문물전반이라고 하는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중세·근세라도 같이이다.15 세기무렵에 번성했던 토야마포 등 3항을 통한 대일무역은 「일본의 봉건영주들은……교역을 간청 해 왔다.조선은……조공 무역을 허락해……(이조) 조선 초기의 교역에 의해서, 조선의 선진적인 문물은, 일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라고 쓰고 있다.

 또, 토쿠가와막부와 이조 조선과의 사이에 「조선 통신사」에 의한 교류가 있던 것은 알려져 있지만, 그 통신사에 대해서도 「……일본은 조선을 문화의 선진국이라고 생각해 사절을 파견하도록(듯이) 요청해 왔다.이것에 대해, 조선에서는 통신사를 파견했지만,……일본은 통신사의 일행을 이라고 눌러 선진 학문과 기술을 배우려고 열심이었다」(중학), 「토쿠가와막부는, 선진 문물을 받아 들이기 위해서,……교섭을 허가하도록(듯이) 간청 했다」(고등학교)이라고 쓰여져 있다.즉, 중세나 근세라도, 조선은 「선진 학문과 기술」을 가지는 선진국으로서 그려져 일본은 그 선진 문물을 「간청」해, 조선은 그것을 「허가」하는 입장의 나라였다고 하는 것으로 있다.요컨데, 여기에 공통되는 것은 조선을 「문화적 우월자」라고 평가해 일본은 「열등」이다라는 자세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조선의 「선진 학문」이란요점은 한문·한시이며, 통신사의 서화를 구한, 말하자면 미하-적인 일본인이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만약을 위해 사실을 적으면, 중세의 교역은 조선의 면포와 일본의 동(후에는 은)과의 교역이며, 무로마치 전기부터 조선측은 일본의 물방아나 일본 종이(그들은 야마토종이라고 쓴다)의 제조 기술의 도입을 도모하려 하고 있지만, 결국은 성공하지 않았다(시모죠 마사오씨).「선진 학문과 기술을 배우려고 열심이었다」 것은, 오히려 조선측이었다고 하는 것도 또 사실인 것이다.한층 더 에도기에 들어가면, 통신사의 통역이, 에도 시가를 보고 「전혀 본 북경에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경탄 했다」라고 적고 있는 일도 주어 두고 싶다.

◆「일본 정벌」

 이러한 우월감의 과시는 외교·군사에서도 관철해지고 있고, 중세의 「원구」의 기술에도 나타나고 있다.

 「원래는 일본을 정벌 하기 위해서 군함의 건조, 자금의 공급, 병사의 동원을 고려에 강요했다.이렇게 해 2차에 걸치는 코마·겐 연합군의 일본 원정이 단행되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여기에서는 「정벌」이라고 하는 말이 역사 용어가 아니고, 교과서의 설명 기술로서 사용되고 있다.물론, 「정벌」이란 나쁜 사람을 벌준다고 하는 의미를 포함한다.게다가, 고려는 「일본 정벌」에 무리하게 가담 당한 것 같은 쓰는 법이 되어 있지만, 사실은 완전히 다르다.고려군은 원군에 참가한(특히 문장 긴 역에서는 원구의 주체는 고려수군이었다) 뿐만이 아니고, 두 번 다시도 원래의 세조에게 일본에의 원정을 요청한 것은 고려 자신(충렬왕)인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원래로의 침략 요청은 쓰지 않고, 아직도 「정벌」이라고 하는 것은, 일본 멸시 사관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15 세기의 조선이 일본을 「도이(인용자주·일본)는……인류에게 이빨 파는에 충분하지 않고」(성소우지츠록)이라고 인식해, 또 에도기라도 통신사는 일본을 「야마토」라고 부르고 있었다.그러나, 이 교과서에서는 당시의 인식이 그렇다라고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집필자가 그렇게 쓰고 있다.(이)라고 하면, 이것은 단지 우월감의 과시로서 보다 일본 멸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은폐 되는 세멘시나에의 「복속」

 일본에 대해서 자국의 「우월」을 과시하는 이 교과서는, 그럼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 것일까.그렇다고 하는 것도 고대부터 19 세기말까지, 어느 조선 왕조도 세멘시나의 왕조부터 책봉을 받아(세멘시나의 황제에 의해서 조선왕에게 인지되는 것), 신종하고 있었다.즉 세멘시나에 복속하고 있던 것은 누구나가 아는 곳(중)이니까이다.

 실제, 연호도 세멘시나의 것을 일관해서 사용하고 있었다.또, 새로운 국왕의 즉위, 입후, 입태자가 있다 마다 세멘시나의 승인을 구해 외교 관계도 문제가 일어나면 세멘시나의 의견을 요구하고 있었다.물론, 조공은 빠뜨리는 일 없이 행해져 세멘시나로부터의 사절을 맞이할 때는, 조선왕은 사절을 서울 성밖에 나와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 중고의 교과서에서는, 놀랄 만한 일로 그 점은 완전히 숨겨져 버려 있다.예를 들면 명과 이조와의 관계에 대해 「명과의 친선 관계를 유지하고 왕권을 굳혀 나라의 정치를 안정 시키려고 했다」라고 기술되고 있다.다른 케이스에서도 「책봉」이라고 하는 역사 용어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럼, 명에의 조공은 어떻게 쓰여져 있는 것인가.「조선은 조공을 통해 명의 명분을 세워 주어, 사신의 왕래를 통해 경제적·문화적 실리를 얻었다」라고 쓰여져 있고, 일단 「조공」이라고 하는 용어는 사용되고 있지만, 명의 얼굴을 세우기 위해서 공물을 한 것만으로, 요점은 조선은 실리를 얻었던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고교 교과서에서는 조공이라고 하는 용어 자체가 없고, 「조선에서는 명에 대해서 일년에 수차의 정기적인 사절을 파견해, 그 외에도 수시, 사절을 파견했다」라고, 단순한 외교 사절과 같은 기술이 되어 있다.

 그럼, 사실은 어떤가.「조공」은 결코 의례에 머무르지 않고, 「금백량, 은천냥, 백미1만포, 비단2천 마리」를 시작으로 하는 대량의 공물의 헌납이 의무 지워지고 있었다.이것에 대해서 명으로부터의 담보도 있었지만, 반대로 무엇인가 이유를 붙여 정지되기도 했다고 한다.「조공국으로서의 이조는, 매년, 막대한 지출을 필요로 했다」(오선화 「 「일제」만으로는 역사는 말할 수 없다」).즉, 조공은 「명의 명분을 세워」주거나 단순한 사절을 보냈다고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있다.

 그 의미에서는, 조공에 관한 교과서 기술은 사실의 왜곡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것에 관련해 분명하게 허위라고 하는 기술도 있다.교과서는 「조선」이라고 하는 국호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 신왕조는, 국호를 조선이라고 정했다.「조선」은, 즉 고조선의 전통을 받아 따른다고 하는 의미로, 단군에 민족의 독자성을 요구한다고 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확실히 「조선」이라고 하는 말에 그러한 민족 의식의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는 결정적인 거짓말이 있다.

 「조선 왕조 실록」(박영규저)에 의하면, 「이성계는, 중추원사·조림을 명에 파견하고, 신정권의 수립을 알게 하는 한편, 국호를 개정한다고 할 의사를 전했다.이것에 대해서, 명의 태조·주원장은 신정권의 수립을 승인해, 국호 개정에 대해서 신속히 보고하도록(듯이) 요청했다.이성계는 원로들과 백관을 모으고, 국호를 논의하도록(듯이) 해, 그 결과, 「조선」과 「화녕」이라고 하는 두 개의 명칭이 정해졌다.(중략) 이와 같이 「조선」과 「화녕」이라고 하는 두 개의 국호가 정해지면, 이성계는 이치조92년 11월, 예문관학사·한상질을 다시 명에 파견해, 조선과 화녕의 두 개 속으로부터 하나를 국호로서 채택개를 청하는.(중략) 다음9삼년 2월그는 「조선」이라고 하는 국호를 결정해 주어, 돌아왔다」

 즉, 「조선」이라고 하는 국호를 결정한 것은 종주국인 명인 것에서 만나며, 「 신왕조는, 국호를 조선이라고 정했다」라고 하는 것은, 분명하게 거짓말이라는 것이 된다.세멘시나의 왕조를 종주국으로 하는 체제를 「화이질서」라고 하지만, 한국의 교과서는 사실을 나사 굽혀서라도 그 화이질서에 짜넣어지고 있던 것을 숨기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교과서에는 「자주」 「주체성」이라고 하는 형용사가 등장한다.물론, 「자주」도 「주체성」도 국가 민족에게 있어서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 사실을 은폐 하고, 중국과의 대등을 가장하거나 일본을 얕보거나 하는 것은, 야랑자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기술되지 않는 일본의 공헌

 근대에 들어가면, 문화적 「열등」이어야할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거쳐 조선의 근대화에 깊게 관계되게 된다.그러나, 일본의 공헌을 평가하는 기술은 아무것도 없다.물론, 근대화를 「배웠다」라고는 쓰지 않는다.

 교과서는 중고 모두, 김옥균 등 개화당에 의해서 일으켜진 갑신정변(메이지 17년), 한층 더 청일 전쟁 개전에 따르는 갑오개혁(메이지 27년)등이 근대화를 향한 중요한 개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그렇다고는 해도, 갑신정변도 갑오개혁도, 일본의 지원없이는 있어 유리한 산 것도 사실이다.그 점은 교과서도 인정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강요」라고 감히 말해버린다.「갑오……개혁은 대체로 일본 제국주의의 세력에 의해서 강요 당한 면도 있었지만, 봉건적인 전통 질서를 타파하는 근대적 개혁이었던 (일)것은 틀림없다」(고등학교)이라고.

 또, 이러한 개혁은, 왕실 경제의 문제등의 내정 개혁과 함께 청으로부터의 독립이 큰 테마였다.청으로부터의 자립이라고 하는 것은 교과서도 일단은 접하고 있지만, 최종적으로 청과의 복속 관계가 끝난 것은 청일 전쟁 에 의해서이다고 하는 사실은 교과서에서는 접할 수 없다.그렇다고 하는 것도 청일 전쟁의 강화 조약인 시모노세키조약의 기술 그 자체가 교과서에 없기 때문에이다.덧붙여서, 시모노세키조약 제일조는, 「청나라는 조선국의 완전 무결 되는 독립 자주의 나라인 것을 확인.따라서 오른쪽 독립 자주를 손해해야 할 조선국부터 청나라에 대한 공헌전례등은 장래 완전히 지를 폐지 할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선의만으로 조선의 독립을 추진했다고는 말하지 않지만, 천 수백년에 걸치는 조선과 세멘시나 왕조와의 복속 관계를 끝낸 것은, 조선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획기라고 생각하지만, 교과서는 중고 모두 완전한 무시를 결정한다.

 또, 근대화의 단서를 열었던 것도, 후쿠자와유키치 등 일본인의 지원에 의하는 것이 많지만, 그 점도 접할 수 없다.예를 들면, 후쿠자와가 지원해 일본인이 창간 한 신문 「한성순보」는 「우리 나라 최초의 신문」으로서 기술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일본인의 손에 의하는 것은 물론, 이 신문의 최대의 공적인 한문 한글혼효문을 최초로 사용해 그 보급을 목표로 했다고 하는 사실은 무시해, 그 공적은 후속의 황성신문 등 일본 비판의 신문의 공적으로서 그려져 있다.

 청으로부터의 최종적인 독립 달성으로 해도 한문 한글혼효문을 사용한 최초의 신문 발행으로 해도, 그것들에 교과서가 접하지 않는 것은, 그 이전은 문화적 「열등」자로서 기술해, 그 다음은 「일제」라고 비난 하게 되는 일본에 의해서 되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뚫을 것일까.


모두 booq에 들어맞는

일본의 문화 문명의 선조는 한국

에도시대 이전에는 조선이 발전하고 있었다

고려는 원래의 일본 침공에 반대하고 있었다.

중국에 복속한 비참한 역사를 부정

한국의 날조 왜곡 교과서를 망신해 진실하다면 완전하게 세뇌되고 있다.

내가 아무리 증거를 내도 맹목적으로 부정한다.

통일 교회와 같은 광신적인 신자와 같고.아무리 역사적 진실의 증거를 내도

인정하지 않고.한국 왜곡 교과서의 신자로 계속 된다.

진실의 역사를 인정하고 세뇌로부터 눈을 뜨면 정신 붕괴해 폐인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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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1214 韓国人の汚染水発言から判明した事....... (2) executioner3 01:01 9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