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経済 PositiveNegativeFreeStyleArguments

朝鮮時代の鄭東愈という儒者(実学者)の書いた本『晝永編』によると、朝鮮に無いものとして、『羊と車と針』と記している。李氏朝鮮時代、車輪を作る為の木を曲げて丸く加工する技術は無く、馬車・牛車・人力車、農業用の水車が無かった。

これで作業が効率的に行えるだろうか。針が無いとは、金属加工の技術が著しく低かったことを示している。

針を作るには金属を細く先を尖らせる技術が必要であり、しかも折れてはいけない。そして後部に糸を通せる穴を加工する必要がある。李氏朝鮮時代に車輪や針は中国から手に入れていた。

ものを作る為にはその道具が無いと作ることができない。その道具を作る為には、又してもその道具を作る為の道具が必要だ。

韓国人は、日本統治期が無くても朝鮮半島は近代化できたと言うが、車輪すら作れないのならば産業革命などできるはずがない。どのように蒸気機関を利用した巨大な産業機械を作るのだろうか。

日本の産業革命は1,000年を超えて伝承された職人技術を土台として可能になった。西洋から学んだ生産設備や鉄道などを見様見真似で作り上げてしまったのだ。日本では特に現在でも様々な世界特許を持つ前提の技術として研磨技術や金属加工の技術がある。その理由は日本では刀文化が長く続き、鍛冶屋が金属を加工する伝統技術を長く伝承し発展させてきたからだと言われている。


室町時代前期の1429年、日本にきた朴端生は、次のように復命していた。
それによると「日本の農人水車の設けあり」として、学生の金慎に「造車の法」を精査させて模型を作り、鍍銀(銀めっき)、
造紙(紙漉)、朱紅、軽粉等の製造法を報告している。
この時の復命では、日本の貨幣経済の実態や店舗商業の発展等にも及んだが、
その中で技術に言及していたのは、渡航前に世宗から
「倭紙堅靱、造作の法また宜しく伝習すべし」と、日本の技術を導入するよう命じられていたからである。
朝鮮はまだ物々交換の時代で、貨幣や商いを知らなかったので、15世紀の朝鮮通信使は日本の乞食は銭を乞うと驚きをもって記録している。
これに対して日本では、朴端生が日本を訪れる百年以上も前に、水車を利用して離宮に川の水を汲み上げた話が
『徒然草』(第五十一段)に記されている。
その水車が農民たちの手で取り付けられていたことを考えると、
当時、日本と朝鮮の間には相当の技術格差があったことがわかる。
したがって、韓国の歴史教科書にあるように
「技術を学ぶのに苦労していた」のは、
日本側ではなくむしろ朝鮮の方であったのである。
朝鮮人が水車の技術を導入しようと苦慮していたことに関しては、
1880年代になっても金弘集が「朝鮮には灌漑設備がない。水車もない」
と未開性を嘆いていた。
つまり朝鮮では、朴端生が1429年に日本に来た後、500年近くかけても水車を実用化できなかったということになる。

바늘과 물방아를 만드는 기술이 없었던 조선

조선시대의 정동유라고 하는 유생(실학자)이 쓴 책 「주영편」에 의하면, 조선에 없는 것으로서 「양과 차와 바늘」이라고 적고 있다.이씨 조선 시대, 차바퀴를 만들기 때문에(위해)의나무를 굽혀 둥글게 가공하는 기술은 없고, 마차·우차·인력거, 농업용의 물방아가 없었다.

이것으로 작업을 효율적으로 실시할 수 있을까.바늘이 없다고는, 금속 가공의 기술이 현저하게 낮았던 일을 나타내고 있다.

바늘을 만들려면 금속을 가늘게 앞을 날카롭게 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고, 게다가 접혀 안 된다.그리고 후부에 실을 통할 수 있는 구멍을 가공할 필요가 있다.이씨 조선 시대에 차바퀴나 바늘은 중국에서 손에 넣고 있었다.

물건을 만들기 위해는 그 도구가 없으면 만들 수 없다.그 도구를 만들기 위해는, 또 해도 그 도구를 만들기 때문에(위해)의 도구가 필요하다.

한국인은, 일본 통치기가 없어도 한반도는 근대화 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차바퀴조차 만들 수 없는 것이라면 산업혁명등에서 올 리가 없다.어떻게 증기 기관을 이용한 거대한 산업 기계를 만드는 것일까.

일본의 산업혁명은1,000년을 넘어 전승된 직공 기술을 토대로서 가능하게 되었다.서양에서 배운 생산 설비나 철도등을 본 그대로 흉내 내는 것으로 만들어내 버렸던 것이다.일본에서는 특히 현재에도 님 들인 세계 특허를 가지는 전제의 기술로서 연마 기술이나 금속 가공의 기술이 있다.그 이유는 일본에서는 칼문화가 길게 계속 되어, 대장간이 금속을 가공하는 전통 기술을 길게 전승해 발전시켜 왔기 때문이라고 말해지고 있다.


무로마치 시대 전기의 1429년, 일본에 온 박단생은, 다음과 같이 복명 하고 있었다.
그것에 따르면 「일본의 농인 물방아의 서로 마련해 」(으)로서, 학생 김 마코토에 「조차의 법」을 정밀 조사 시키고 모형을 만들어, 도은(은도금),
조지(지 녹), 주홍, 경분등의 제조법을 보고하고 있다.이 때의 복명에서는, 일본의 화폐 경제의 실태나 점포 상업의 발전등에 달했지만,
그 중에 기술에 언급하고 있던 것은, 도항전에 세종으로부터
「야마토지견인, 조작의 법 또 잘 전습할 것」이라고, 일본의 기술을 도입하도록(듯이) 명령받고 있었기 때문에이다.
조선은 아직 물물교환의 시대로, 화폐나 거래를 몰랐기 때문에, 15 세기의 조선 통신사는 일본의 거지는 전을 청하면 놀라움을 가지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에 대해서 일본에서는, 박단생이 일본을 방문하는 백년 이상이나 전에, 물방아를 이용해 별궁에 강의 물을 퍼 올린 이야기가
「쓰레즈레구사」(제5십1단)에 기록되고 있다.
그 물방아가 농민들의 손으로 장착되고 있던 것을 생각하면,
당시 , 일본과 조선의 사이에는 상당한 기술 격차가 있던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역사 교과서에 있도록(듯이)
「기술을 배우는데 고생하고 있었다」 것은,
일본측은 아니고 오히려 조선의 분이었던 것이다.
한국인이 물방아의 기술을 도입하려고 고심하고 있었던 것에 관계해서는,
1880년대가 되어도 김 히로시집이 「조선에는 관개 설비가 없다.물방아도 없다」
와 미개성을 한탄하고 있었다.
즉 조선에서는, 박단생이 1429년에 일본에 온 후, 500년 가깝게 걸쳐도 물방아를 실용화할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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