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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国、我が歴史のトラウマ


「中国人民解放軍の陳炳徳総参謀長が韓国の金寛鎮(キム・グァンジン)国防部長官と会談した席で、一方的に10分間ほど米国を非難する外交的な非礼を見せたといいます。私は歴史学者としてそのニュースを聞いた時、1618年に後金のヌルハチ(努爾哈赤)が明に宣戦布告をした頃、朝鮮に送った手紙を思い出しました」。

非常に興味深い講義だった。私は18日晩、歴史専門出版社「プルン歴史」の付設機関「プルン歴史アカデミー」が準備した歴史特講の最初の時間に出席した。予告されていたテーマ(「G2時代に改めて見る朝鮮時代の国際関係」)と講師(ハン・ミョンギ明知大教授)の名前を見て、この講義をぜひ聴きたいと思った。少なくない参加料まで支払ったので、計4回の講義で必ず元を取ろう(?)と思っていた。

後金は1618年の宣戦布告の前後、朝鮮を‘お前’と呼ぶ国書を送り、明の戦争に朝鮮は介入するなと伝えた。朝鮮は苦しい状況の中、光海君の賢明な実利外交で持ちこたえていた。しかし仁祖の時代に入ると、力もないのに後金に抵抗して丁卯胡乱(1627年)を経験し、続いて丙子胡乱(1636年)でははるかに過酷な災難を迎えた。仁祖は真冬に南漢山城(ナムハンサンソン)を出て、清のホンタイジ(太宗)に3度のお辞儀をし、9度も頭を下げた。勝者のパーティーが終わり、ホンタイジが毛皮を贈り物として渡すと、また仁祖は「感謝します」と2度ひざまずいて6度も頭を下げた(三田渡屈辱)。王がこれだから一般民の惨状は言うまでもない。清に連行された捕虜だけでも最大50万人。逃げて捕まり、かかとを切られた捕虜も多かった。清に連れて行かれて性奴隷に転落した朝鮮女性は満洲人の本妻から熱湯を掛けられたりもした。苦労して故国に戻ると「還郷女」という罵声を浴びた。その前の壬辰倭乱(文禄・慶長の役)に参戦した明の軍隊はどうだったのか。国民は明軍の過酷な収奪を「倭軍は目の荒い櫛、明軍は目の細かい櫛」と表現した。

ハン・ミョンギ教授は「新しい強国が従来の覇権国に挑戦する時、韓半島にはほぼ例外なく危機が迫った」と分析した。 中国大陸で元から明への交代期、16世紀の日本の戦乱期、明から清への交代期、近代の清・日国力逆転期がそうだ。 倭乱・胡乱から国亡にいたるまで朝鮮の悲劇はすべて、既存の覇権国と新興強国の間で「関係」に失敗した場合に訪れた。 中国が米国に立ち向かい始めた今はまさにこういう時期ではないだろうか。

大韓民国で生まれたという幸運のため私たちが経験していないだけで、先祖にとって中国発の屈辱はほとんど日常的だった。 歴史的に中国の傲慢と非礼は新しいものではない。 中国の使臣を恐れ多く迎えた迎恩門を壊して独立門を建てたのはわずか115年前だ。 袁世凱が威勢を見せたのもこの頃だ。 中国では明時代の壬辰倭乱参戦を「抗倭援朝」と呼ぶ。 419年後に起きた韓国戦争(1950-53)参戦は「抗美援朝」だ。 当然のことながら、徹底して自国中心に歴史を見ている。 私たちは国を丸ごと奪った日本に対する強烈な反感と冷戦時代の竹のカーテンのため、中国というスーパーパワーを忘れて過ごしてきたのではないだろうか。 しかしもうこうした例外的な時代は終わった。 中国・米国の間で「関係」をどう設定するのか深く考えなければ、先祖たちの悲劇が別の形で迫ってくるかもしれない。 いずれにしても米国だけを常数として国の進路を模索してきた時代は過ぎたようだ。

こうしてみると、陳炳徳総参謀長が金寛鎮長官に見せた‘非礼’は今後、非礼のうちにも入らないのかもしれない。 ハン・ミョンギ教授も講義を終えながらこう語った。 「私たちは非常に頭が痛い時間を控えているようだ」。

ノ・ジェヒョン論説委員・文化専門記者


https://japanese.joins.com/JArticle/142078

自国民を献上した李氏朝鮮の史実

 ご存知の通り、丙子胡乱は、国号を「清」と改めたいわゆる支那が、同朝皇帝の即位を認めない朝鮮に大軍を以って軍事侵攻し、同国を制圧した戦いであった。1637年に降伏の和議が交わされて以来、朝鮮は 2世紀半の長きに渡り、「清」への隷属を強いられたのである。「清」との和議により、毎年、『黄金100両、白銀1000両の他、牛3000頭、馬3000頭など20項目余りの物品を毎年献上した。毎年美女3000人も献上したとされるが、詳細は不明であり、実際は、8才~12才までの少女の献上が確認されるだけである。

 献上の規模や内容の詳細については諸説によって差異があり、専門家の検証に委ねるしかない。表題記事の数値についてもまた同様と思われる。だが、その2世紀半の長きに渡り、金品と併せて自国民、とりわけ婦女子を「清」に献上していたことは、共通して指摘される点である。それが年々、および250年にも渡るとあれば累々たる数に上るに違いない。

 現代でいえば、この宗主国と属国の両方に顕著な「人権問題」が指摘されるはずだ。米国下院議会に、韓国民のために、議員10人の出席により60年以上も前にあったとする“性的奴隷”の「対日謝罪要求決議」を“採択”し。あるいは、同様に、90年以上前のアルメニア人に関し「当時のオスマン・トルコ帝国を非難する」決議案を“採択”する“寛容性”が有るならば、いっそのこと、370年遡(さかのぼ)り、これらの諸国に対する「謝罪要求決議」でも採択したらどうか。ふと、そうとさえ思いたくなるおぞましい史実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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清は朝鮮^人を「物」としてあつかう

 表題に云く、『朝鮮^人捕虜の生活は凄惨を極めた。一冬の間に2000里を超える道を歩かされ、清軍から鞭で打たれ続けた。凍えた体を鞭で打たれたため、皮膚が裂けて血が滲んだ。そして捕虜は奴隷市場に売られて行った』と。

 そして、云く、『清の人々は男女を問わず、朝鮮^人捕虜の衣服を剥いで健康状態をチェックした後、代金を払って奴隷を買っていた。奴隷を売買する市場を目にした荘献世子は、『瀋陽状啓』において「(代金を支払って捕虜の身を免れる)送還費用として要求される代価の値段は測り知れない。多ければ数百もしくは数千両にもなり、人々は皆希望を失い、泣き叫ぶ声が通りに溢れ返っていた。毎日館所の外で泣いて訴えており、残酷でどうにも見ていられない』と同書に記されているとある。

 言葉は悪いが、「清」にとっては、乱終結時の朝鮮^人捕虜や、その後の朝鮮からの「献上」で手に入れた人間を「物」としてあつかっていたことは事実であろう。“歴史認識”を正しく持つのであれば、自国の、しかも2世紀半に渡るこの「歴史」から学び直すべきだろう。


 同記事には、同書の著者が『『朝鮮王朝実録』をはじめ、当時のあらゆる資料に記されていた事実を土台として、朝鮮の人々の受難の歴史を語る。朝鮮の女性キム・プンナム、白丁(賤民の中で最下位に位置する人。)キル・ヨンボクといった下層階級の人物を登場させることで、生き生きとした情感を増したが、すべてにおいて事実を土台に据えた』とある。

 あまりに生々しいために、「史実小説」というスタンスで読者を広めようとしているようだが。著者のチュ・ドンシク氏は、『金永三(キム・ヨンサム)政権で政務・広報主席、文化体育部長官を務めた』人物とのこと。記事に紹介されているこの著者の言葉が印象的である。云く、『韓国は17世紀にも清の要求に従い、自国民を供出するかのように、毎年数十人ずつ献上していた国だ。時代が変わったとはいえ、このような国で今さら人権を手に入れることができるのだろうか』と。現状では困難だ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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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を隷属から救った日本

 日本は、その「清」を日清戦争で打ち破り、下関条約(1895年4月17日)の調印を以って、朝鮮を独立させたのである。同条約の第1条には、『清国は、朝鮮国が完全無欠なる独立自主の国であることを確認し、独立自主を損害するような朝鮮国から清国に対する貢・献上・典礼等は永遠に廃止する。(第一条)』と明記し、ここで朝鮮は「清」への隷属から解放されたのである。その後、ロシアをはじめ数ヶ国による干渉が度を増し、1910年の、大日本帝国と大韓帝国との間で「日韓併合条約」締結(8月22日)となった。この日韓併合に際し、当時の日本にとっては、朝鮮半島の「併合」は、膨大な労力と費用を投じるのみでさしたるメリットも無く、「支那、ロシアから隣国の韓国を保護する」以外に目的はなかった。

 この「韓国併合ニ関スル条約」に基づいて日本が大韓帝国を併合し、朝鮮は正式に「日本国朝鮮地方」となった。巷間で意図的に呼ぶ“植民地時代”ではなく、日本の「一地方」ゆえに、日本政府は莫大な予算を投入し、朝鮮の近代化に尽力したのである。「日本国朝鮮地方」には、5000校を超える学校をはじめ、必要な各種設備、医療設備、道路他の多数のインフラを構築したのである。近代教育の教育の中でハングルを必修として、文字を用いる文化を提供。日本人による朝鮮史上初の「朝鮮語辞典」(朝鮮日報2004年2月27日付が報じる)が生まれたのもこの時代である。人を国家の基本として重視する日本は、朝鮮半島の医療と衛生環境を飛躍的に向上させ、半島の人々の平均寿命の伸長にも貢献したのである。

 こうした資金や資材などの「物的支援」に終わらず、「人的支援」「技術支援」も同時に行った時期が「日韓併合」時代である。この日本の献身的な努力と貢献により、また、戦後にも提供した多大な支援により、朝鮮半島には“奇跡”と呼ばれるほどの発展をもたらされたのである。後に、昭和40年(1965年)の「日韓間相互の請求権の破棄」の取り決めにおいて、「両締約国(日韓双方)は、両締約国及びその国民(法人を含む)の財産、権利及び利益並びに両締約国及びその国民の間の請求権に関する問題が、完全かつ最終的に解決されたこととなることを確認する」とする戦後の「日韓基本条約」を締結。

 日本は「謝罪」「賠償」する筋合いには全く無いのである。しかし、日本は、同条約の締結に際し、日本国の好意から、この日本統治時代に建設し、空襲も受けずに残ったインフラを代償を求めずに提供している。時価に換算(試算)して16兆円とも、20兆円とも指摘されている。朝鮮半島にとって、「清」への隷属に伏した約「2世紀半」と、日本の一部となった約「35年間」と比較すれば、どちらの時代が文明国家へと歩み出す基礎となったか。真正の歴史を再学習し、その上で、胸に手を当ててよく考えるべきであろう。恩義を「仇」、また「仇」で返される筋合いは無いのである。




千年以上の中国に対しての屈辱は教科書に殆ど記載せず恨み言も書かない

日本統治の35年間はハングルを禁止した創始改名は強制だとデタラメな嘘を教科書に数ページに渡り重点的に記載して反日

どうしてですか?


청의 노예로부터 조선을 해방한 일본

중국, 우리 역사의 트라우마


「중국 인민 해방군 진병덕총참모장이 한국의 김 히로시진(김·그진) 국방부 장관과 회담한 석으로, 일방적으로 10분간 정도 미국을 비난 하는 외교적인 무례를 보였다고 합니다.나는 역사학자로서 그 뉴스를 들었을 때, 1618년에 잔금의 누르하치(노이합적)가 명에 선전포고를 했을 무렵, 조선에 보낸 편지를 생각해 냈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강의였다.나는 18일밤, 역사 전문 출판사 「프룬 역사」의 부설 기관 「프룬 역사 아카데미」가 준비한 역사 특강의 최초의 시간에 출석했다.예고되고 있던 테마( 「G2시대로 고쳐 보는 조선시대의 국제 관계」)와 강사(한·몰기 명지대 교수)의 이름을 보고, 이 강의를 꼭 듣고 싶었다.적지 않은 참가료까지 지불했으므로, 합계 4회의 강의로 반드시 원을 취하자(?)(이)라고 생각했다.

잔금은 1618년의 선전포고의 전후, 조선을‘너’라고 부르는 국서를 보내, 명의 전쟁에 조선은 개입하지 말아라 라고 전했다.조선은 괴로운 상황속, 광해 너의 현명한 실리 외교로 유지하고 있었다.그러나 인조의 시대에 들어가면, 힘도 없는데 잔금에 저항해 정묘호란(1627년)을 경험해, 계속 되어 병자호란(1636년)에서는 훨씬 가혹한 재난을 맞이했다.인조는 한겨울에 남한산성(남한산손)을 나오고, 청의 혼타이지(태종)에 3도의 인사를 해, 9도나 고개를 숙였다.승자의 파티가 끝나, 혼타이지가 모피를 선물로 해서 건네주면, 또 인조는 「감사합니다」라고 2도 무릎 꿇어 6도나 고개를 숙였다(미타 도굴욕).왕이 이것이니까 일반민의 참상은 말할 필요도 없다.청에 연행된 포로만으로도 최대 50만명.도망쳐 잡혀, 발뒤꿈치를 잘린 포로도 많았다.청에 데리고 가져 성 노예에 전락한 조선 여성은 만주인의 본처로부터 열탕을 걸 수 있기도 했다.고생하고 고국으로 돌아오면 「환향녀」라고 하는 욕설을 받았다.그 전의 임진왜란(문녹·게이쵸의 역 )에 참전한 명의 군대는 어땠어요 의 것인지.국민은 명군의 가혹한 수탈을 「야마토군은 눈이 난폭한 빗, 명군은 눈의 세세한 빗」이라고 표현했다.

한·몰기 교수는 「새로운 강국이 종래의 패권국에 도전할 때, 한반도에는 거의 예외없이 위기가 다가왔다」라고 분석했다. 중국 대륙에서 원으로부터 명에의 교대기, 16 세기의 일본의 전란기, 명으로부터 청에의 교대기, 근대의 청·일국력 역전기가 그렇다. 야마토란·호란으로부터 국 망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비극은 모두, 기존의 패권국과 신흥 강국의 사이에 「관계」에 실패했을 경우에 방문했다. 중국이 미국으로 향하기 시작한 지금은 확실히 이런 시기는 아닐까.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행운이기 때문에 우리가 경험하고 있지 않는 것뿐으로, 선조에게 있어서 중국발의 굴욕은 거의 일상적이었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오만과 무례는 새로운 것으로는 없다. 중국의 사신을 송구스럽게 맞이한 영은문을 부수고 독립문을 지은 것은 불과 115년전이다. 원세개가 위세를 보였던 것도 요즘이다. 중국에서는 명시대의 임진왜란 참전을 「항 야마토원조」라고 부른다. 419년 후에 일어난 한국전쟁(195053) 참전은 「항미원조」다. 당연한 일이면서, 철저히 해 자국 중심으로 역사를 보고 있다.우리는 나라를 통째로 빼앗은 일본에 대한 강렬한 반감과 냉전시대의 대나무의 커텐 때문에, 중국이라고 하는 슈퍼 파워를 잊으며 보내 온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이제(벌써) 이러한 예외적인 시대는 끝났다. 중국·미국의 사이에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지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선조들의 비극이 다른 형태로 강요해 올지도 모른다. 어쨌든 미국만을 상수로서 나라의 진로를 모색해 왔던 시대는 지난 것 같다.

이렇게 해 보면, 진병덕총참모장이 김 히로시진장관에게 보이게 한‘무례’는 향후, 무례가운데도 들어가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몰기 교수도 강의를 끝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매우 머리가 아픈 시간을 앞에 두고 있는 것 같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 전문 기자


https://japanese.joins.com/JArticle/142078

자국민을 헌상 한 이씨 조선의 사실

 아시는 대로, 병자호란은, 국호를 「키요시」라고 심문해 이른바 시나가, 동아침 황제의 즉위를 인정하지 않는 조선에 대군으로 군사 침공해, 동국을 제압한 싸움이었다.1637년에 항복의 화해가 주고 받아진 이래, 조선은 2 세기반의 장 나무에 건너, 「청」에의 예속을 강요당했던 것이다.「청」이라는 화해에 의해, 매년, 「황금 100량, 백은 1000량의 외, 우 3000마리, 말 3000마리 등 20항목 남짓의 물품을 매년 헌상 했다.매년 미녀 3000명이나 헌상 했다고 여겨지지만, 자세한 것은 불명하고, 실제는, 8세 12세까지의 소녀의 헌상이 확인되는 것만으로 있다.

 헌상의 규모나 내용의 상세한 것에 대하여는 제설에 의해서 차이가 있어, 전문가의 검증에 맡길 수 밖에 없다.표제 기사의 수치에 대해서도 또 같이라고 생각된다.하지만, 그 2 세기반의 장 나무에 건너, 금품과 아울러 자국민, 특히 부녀자를 「청」에 헌상 하고 있던 것은, 공통되어 지적되는 점이다.그것이 해마다, 및 250년에도 걸치면 있으면 루들인 수에 오를 것임에 틀림없다.

 현대에 말하면, 이 종주국과 속국의 양쪽 모두에 현저한 「인권문제」가 지적될 것이다.미국 하원 의회에, 한국민을 위해서, 의원 10명의 출석에 의해 60년 이상이나 전에 있었다고 하는“성적 노예”의 「대일 사죄 요구 결의」를“채택”해.있다 있어는, 같이 90년 이상전의 아르메니아인에 관계되어 「당시의 오스맨·터키 제국을 비난 한다」결의안을“채택”하는“관용성”이 있다면, 차라리, 370년소(나 ) , 이러한 제국에 대한 「사죄 요구 결의」에서도 채택하면 어떤가.문득, 그렇다고마저 생각하고 싶어지는 무서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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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은 조선^인을 「물건」으로서 다룬다

 표제에 운구, 「조선^인 포로의 생활은 처참을 다했다.한겨울의 사이에 2000리를 넘는 길을 보 빌려주어져 청군으로부터 채찍으로 계속 맞았다.언 몸을 채찍으로 맞았기 때문에, 피부가 찢어지고 피가 배였다.그리고 포로는 노예 시장에 팔려서 갔다」라고.

 그리고, 운구, 「청의 사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조선^인 포로의 의복을 벗겨 건강 상태를 체크한 후, 대금을 지불하고 노예를 사고 있었다.노예를 매매하는 시장을 본 장헌세코는, 「심양장계」에 대해 「(대금을 지불해 포로의 몸을 면한다) 송환 비용으로 해서 요구되는 대가의 가격은 측정해 모르다.많으면 수백 혹은 수천 양으로도 되어, 사람들은 모두 희망을 잃어, 울부짖는 소리가 대로에 흘러넘쳐 돌아가고 있었다.매일관소의 밖에서 울어 호소하고 있어 잔혹하고 어떻게도 보고 있을 수 없다」와 동서에 기록되고 있으면 있다.

 말은 나쁘지만, 「청」에 있어서는, 란종결시의 조선^인 포로나, 그 후의 조선으로부터의 「헌상」으로 손에 넣은 인간을 「물건」으로서 다루고 있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역사 인식”을 올바르게 가진다면, 자국의, 게다가 2 세기반에 건너는 이 「역사」로부터 다시 배워야 할 것이다.


 동기사에는, 동서의 저자가 「 「조선 왕조 실록」을 시작해 당시의 모든 자료에 기록되고 있던 사실을 토대로서 조선의 사람들의 수난의 역사를 말한다.조선의 여성 김·푼남, 백정(천민중에서 최하위에 위치하는 사람.) 킬·욘 나라고 하는 하층계급의 인물을 등장시키는 것으로, 생생하게 한 정감을 더했지만, 모두에 있어 사실을 토대로 자리잡았다」라고 있다.

 너무나 생생하기 위해(때문에), 「사실 소설」이라고 하는 스탠스로 독자를 넓은나름으로 하고 있는 것 같지만.저자의 츄·돈시크씨는, 「금영3(김·영삼) 정권으로 정무·홍보 주석, 문화체육부 장관을 맡았다」인물과의 일.기사에 소개되고 있는 이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다.운구, 「한국은 17 세기에도 청의 요구에 따라, 자국민을 공출 하는 것 같이, 매년 수십명씩 헌상 하고 있던 나라다.시대가 바뀌었다고는 해도, 이러한 나라에서 이제 와서 인권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일까」와.현재 상태로서는 곤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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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예속으로부터 구한 일본

 일본은, 그 「청」을 청일 전쟁으로 깨어, 시모노세키조약(1895년 4월 17일)의 조인으로, 조선을 독립시켰던 것이다.동조약의 제1조에는, 「청나라는, 조선국이 완전 무결 되는 독립 자주의 나라인 것을 확인해, 독립 자주를 손해하는 조선국으로부터 청나라에 대한 공·헌상·전례등은 영원히 폐지한다.(제일조)」라고 명기해, 여기서 조선은 「청」에의 예속으로부터 해방되었던 것이다.그 후, 러시아를 시작해 수개국에 의한 간섭이 번을 더해, 1910년의, 대일본 제국과 대한제국과의 사이에 「한일합방조약」체결(8월 22일)이 되었다.이 한일합방에 즈음해, 당시의 일본에 있어서는, 한반도의 「병합」은, 방대한 노력과 비용을 투자할 뿐으로 이렇다할 메리트도 없고, 「중국, 러시아로부터 이웃나라의 한국을 보호한다」이외로 목적은 없었다.

 이 「한국 병합니관술 조약」에 근거해 일본이 대한제국을 병합 해, 조선은 정식으로 「일본 조선 지방」이 되었다.항간에서 의도적으로 부르는“식민지 시대”가 아니고, 일본의 「1 지방」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조선의 근대화에 진력했던 것이다.「일본 조선 지방」에는, 5000교를 넘는 학교를 시작해 필요한 각종 설비, 의료 설비, 도로 다른 다수의 인프라를 구축했던 것이다.근대 교육의 교육 중(안)에서 한글을 필수로서 문자를 이용하는 문화를 제공.일본인에 의한 조선 사상최초의 「조선어 사전」(조선일보2004년 2월 27 일자가 알린다)가 태어났던 것도 이 시대이다.사람을 국가의 기본으로서 중시하는 일본은, 한반도의 의료와 위생 환경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켜, 반도의 사람들의 평균수명의 신장에도 공헌했던 것이다.

 이러한 자금이나 자재등의 「물적 지원」에 끝나지 않고, 「인적 지원」 「기술 지원」도 동시에 갔던 시기가 「한일합방」시대이다.이 일본의 헌신적인 노력과 공헌에 의해, 또, 전후에도 제공한 다대한 지원에 의해, 한반도에는“기적”으로 불릴 정도의 발전을 초래되었던 것이다.후에, 쇼와 40년(1965년)의 「일한간 상호의 청구권의 파기」의 결정에 대하고, 「 양체결국(일한 쌍방)은, 양체결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한다)의 재산, 권리 및 이익 및 양체결국 및 그 국민의 사이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되는 것을 확인한다」라고 하는 전후의 「한일 기본 조약」을 체결.

 일본은 「사죄」 「배상」하는 도리에는 전혀 없기 때문에 있다.그러나, 일본은, 동조약의 체결에 즈음해, 일본의 호의로부터, 이 일본 통치 시대에 건설해, 공습도 받지 않고 남은 인프라를 대상을 요구하지 않고 제공하고 있다.시가에 환산(시산)해 16조엔 모두, 20조엔 모두 지적되고 있다.한반도에 있어서, 「청」에의 예속에 따른 약 「2 세기반」이라고, 일본의 일부가 된 약 「35년간」과 비교하면, 어느 쪽의 시대가 문명 국가로 걷기 시작오는 기초가 되었는지.진정의 역사를 재학습해, 그 위에, 가슴에 손을 대어 잘 생각해야 하는 것일 것이다.은의를 「원수」, 또 「원수」로 돌려주어지는 도리는 없기 때문에 있다.




천년 이상의 중국에 대해서의 굴욕은 교과서에 대부분 기재하지 않고 원망의 말도 쓰지 않는

일본 통치의 35년간은 한글을 금지한 창시 개명은 강제라면 데타라메인 거짓말을 교과서에 수페이지에 건너 중점적으로 기재해 반일

왜 그렇습니까?



TOTAL: 2682247

番号 タイトル ライター 参照 推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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