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大統領の戒厳令、「全てのメディアを統制」と布告も実際は統制せず?テレビ局は“放置状態”だった
尹錫悦(ユン・ソンニョル)大統領が12月3日夜に突如宣言した非常戒厳令は粗末極まりないものだった。戒厳令を下した直後、抜け目なくテレビ局の統制を図った過去の軍事政権とは比較にもならなかった。
12月5日、本紙『スポーツソウル』の取材を総合すると、非常戒厳令が発令された当時、韓国国内の地上波テレビ局の報道局内部には、戒厳軍が一人も進入しなかったことがわかった。
ただ、ソウル汝矣島(ヨイド)のKBS本館前には、レクストン・スポーツと推定される国軍指揮車両が1台配置されていたことが確認された。汝矣島は国会の所在地でもある。
KBSのとある関係者は、「夕方遅くまで事務室にいたが、大統領による戒厳令宣布を見て国会前に行き、再び会社に戻ってきた」とし、「後日確認したところによると、軍用車両1台があることを確認した」と明らかにした。
また、KBSのコミュニケーション部にも確認を取ったが、軍人がテレビ局内に進入することはなかったという。
ほかの地上波テレビ局であるMBCとSBSでも、軍人が進入した痕跡はなかった。
とあるテレビ局関係者は「戒厳令が宣言された当時、テレビ局に戒厳軍が来ることがあり得ると考えて緊張した」としつつ、「実際には誰も来ないので、“これは合っているのか”とも考えた」と明かした。
地上波CBSの朝のラジオ番組『キム・ヒョンジョンのニュースショー』でMCを務めるアンカーのキム・ヒョンジョンは、戒厳令の発令を聞いた直後、4日0時頃にテレビ局に到着した。
キム・ヒョンジョンは「CBSは電波を利用する地上波放送なので、主要情報通信基盤施設に分類される。戦時や戒厳が宣言されれば、戒厳軍がここに来て、放送を統制・指揮することができる」とし、「テレビ局に到着したとき、軍人たちがずらりと並んでいたらどうしようかと思ったが、実際はアリ一匹もいなかった。それで、“緻密に計画を立てた戒厳ではない”と感じた」と振り返った。
一方、進歩陣営から支持を得ている時事系YouTubeチャンネル「キム・オジュンのニュース工場」には戒厳軍が配置され、実際に出入りが統制されるなどし、恐怖を造成したようだ。
元KBS記者のイ・ジェソク氏は4日未明に実施したライブ配信で、「約10人がソウル忠正路(チュンジョンノ)にあるテレビ局スタジオ出入り口を封鎖した」とし、軍人たちが社屋周辺に配置されている写真を公開した。このため、ヤン・ジヨル弁護士など出演者がスタジオに入ることができず、キム・オジュンも軍人を避けて別の場所に非難したという。
もっとも、尹大統領による今回の非常戒厳令は、過去に朴正熙(パク・チョンヒ)、全斗煥(チョン・ドゥファン)軍部がクーデターを起こし、戒厳令を宣布したときと明確な違いがある。
朴正熙陸軍少将(当時)は1961年5月16日5時、朴正熙らクーデター軍が中央放送局(現KBSラジオ)を通じて革命公約を発表した。このように放送局を占領し、国民向けの宣伝に乗り出したことがある。
全斗煥新軍部当時の1979年12月12日の粛軍クーデターとも差がある。当時、全斗煥はクーデターを通じて軍部を掌握した後、戒厳司令部の検閲団による報道指針を通じて、市民社会の民主化要求を歪曲・縮小し、自身を美化する記事報道を強行した経緯がある。
本紙『スポーツソウル』にも今回、戒厳令が下された。尹大統領より戒厳司令官に任命された陸軍参謀総長パク・アンスは、「戒厳司令部布告令(第1号)」において「すべてのメディアと出版は戒厳司令部の統制を受ける」と明示していた。
ただ、尹大統領による発令から155分で非常戒厳令が解除されたためか、実際に戒厳軍が来ることはなかった。
윤대통령의 계엄령, 「모든 미디어를 통제」라고 포고도 실제는 통제하지 않고?텔레비전국은“방치 상태”였던
윤 주석기쁨(윤·손뇨르) 대통령이 12월 3일밤에 갑자기 선언한 비상 계엄령은 조말 마지막 없는 것이었다.계엄령을 내린 직후, 빈틈 없게 텔레비전국의 통제를 도모한 과거의 군사 정권과는 비교도 안 되었다.
12월 5일, 본지 「스포츠 서울」의 취재를 종합 하면, 비상 계엄령이 발령된 당시 , 한국 국내의 지상파 텔레비전국의 보도 국내부에는, 계엄군이 한 명도 진입하지 않았던 것을 알았다.
단지, 서울 여의도(여의도)의 KBS 본관전에는, 렉스턴·스포츠와 추정되는 국군 지휘 차량이 1대 배치되어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다.여의도는 국회의 소재지이기도 하다.
KBS의 어떤 관계자는, 「저녁 늦게까지 사무실에 있었지만, 대통령에 의한 계엄령 선포를 보고 국회앞에 가,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라고 해, 「후일 확인한바에 의하면, 군용차 양 1대가 있다 것을 확인했다」라고 분명히 했다.
또, KBS의 커뮤니케이션부에도 확인을 취했지만, 군인이 텔레비전국내에 진입할 것은 없었다고 한다.
다른 지상파 텔레비전국인 MBC와 SBS에서도, 군인이 진입한 흔적은 없었다.
지상파 CBS의 아침의 라디오 프로그램 「김·현정의 뉴스 쇼」로 MC를 맡는 엥커 김·현정은, 계엄령의 발령을 (들)물은 직후, 4일 0 시경에 텔레비전국에 도착했다.
김·현정은 「CBS는 전파를 이용하는 지상파 방송이므로, 주요 정보 통신 기반 시설로 분류된다.전시나 계엄이 선언되면, 계엄군이 여기에 오고, 방송을 통제·지휘할 수 있다」라고 해, 「텔레비전국에 도착했을 때, 군인들이 죽 줄지어 있으면 어떻게 할까하고 생각했지만, 실제는 개미 한마리도 없었다.그래서,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계엄은 아니다”라고 느꼈다」라고 되돌아 보았다.
한편, 진보 진영으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는 시사계 YouTube 채널 「김·오즐의 뉴스 공장」에는 계엄군이 배치되어 실제로 출입이 통제되는 등 해, 공포를 조성한 것 같다.
무엇보다, 윤대통령에 의한 이번 비상 계엄령은, 과거에 박정희(박·톨히), 전두환(정·두판)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계엄령을 선포했을 때와 명확한 차이가 있다.
박정희육군 소장(당시 )은 1961년 5월 16일 5시, 박정희등 쿠데타군이 중앙 방송국(현KBS 라디오)을 통해서 혁명 공약을 발표했다.이와 같이 방송국을 점령해, 국민 전용의 선전에 나섰던 것이 있다.
전두환 신군부 당시의 1979년 12월 12일의 숙군 쿠데타와도 차이가 있다.당시 , 전두환은 쿠데타를 통해서 군부를 장악 한 후, 계엄 사령부의 검열단에 의한 보도 지침을 통해서, 시민사회의 민주화 요구를 왜곡·축소해, 자신을 미화하는 기사 보도를 강행한 경위가 있다.
단지, 윤대통령에 의한 발령으로부터 155분에 비상 계엄령이 해제되었기 때문에인가, 실제로 계엄군이 올 것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