たらこは韓食です
君たちは全部盗んだことだけじゃないの
歴史[編集]
歴史的に見れば 1800年代末の 《是議全書》に登場して, その以前 《オズヨンムンザングゾンサンゴ》で記録を捜してみることができる. このような高まり里書によるとチァングナンゾッと一緒に明太本場として明太をおびただしく食べた地域である咸境道が祈願のことに推定される. 分断の前には北青郡新浦邑と興南の時西湖陣(西湖津)のたらこが有名だった.#
ただ以後6.25 戦争が勃発しながら南に押し寄せた避難民たちおかげさまで南韓の海岸地域でも広く広がって自主的に生産し始めたし,釜山でたらこが東区チョリャン洞で始まったという認識もある. このような認識の理由はたらこを世界的に一番多く消費する日本が釜山でこれを伝来受けたからだ.#
ただ以後6.25 戦争が勃発しながら南に押し寄せた避難民たちおかげさまで南韓の海岸地域でも広く広がって自主的に生産し始めたし,釜山でたらこが東区チョリャン洞で始まったという認識もある. このような認識の理由はたらこを世界的に一番多く消費する日本が釜山でこれを伝来受けたからだ.#
명란젓은 한식입니다
명란젓은 한식입니다
너희들은 전부 훔친 것 뿐이잖아
역사[편집]
역사적으로 보면 1800년대 말의 《시의전서》에 등장하며, 그 이전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고조리서에 의하면 창난젓과 함께 명태 주산지로써 명태를 엄청나게 먹었던 지역인 함경도가 기원인 것으로 추정된다. 분단 전에는 북청군 신포읍과 흥남시 서호진(西湖津)의 명란젓이 유명했었다.#
다만 이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남쪽으로 밀려든 피난민들 덕분에 남한의 해안 지역에서도 널리 퍼져 자체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고, 부산에서 명란젓이 동구 초량동에서 시작되었다는 인식도 있다. 이러한 인식의 이유는 명란젓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소비하는 일본이 부산에서 이를 전래받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남쪽으로 밀려든 피난민들 덕분에 남한의 해안 지역에서도 널리 퍼져 자체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고, 부산에서 명란젓이 동구 초량동에서 시작되었다는 인식도 있다. 이러한 인식의 이유는 명란젓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소비하는 일본이 부산에서 이를 전래받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