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国メディア「日本は韓国がノーベル文学賞を受賞し、村上春樹が受賞できなかったことに悔しがっている。平静を装っているが内心は悔しくてしかたないのだ!」……そんなこと言われてもどうすりゃいいのさ
10日、ハン・ガンのノーベル文学賞受賞のニュースが伝えられると、隣国の日本でも主要マスコミが一斉に「アジア女性作家としては初めての受賞」とし、関連ニュースを大きく報道した。 (中略)
一方、日本では今回ノーベル文学賞の常連候補である村上春樹の受賞にかける期待がかなり大きかったので失望感も大きいと見られる。
現地のインターネットメディアは、ハン・ガンの受賞記事に先立ち、村上氏の受賞失敗を一斉に先に伝えた。 ハン・ガン受賞のニュースに対する現地のネチズンたちの反応は、アジア女性作家の初受賞に対する祝賀と共に、春樹の受賞失敗に対する物足りなさを表出するものが多い。
長い間ノーベル文学賞候補として取り上げられてきた春樹は、全世界的に多くのファンを保有しており、日本だけでなく海外でも受賞の可能性が非常に高いとされてきた。
日本はこれまでノーベル文学賞分野で自国国籍で川端康成、大江健三郎の2人の受賞者を輩出した。 2017年の受賞者である石黒和夫は日系英国人だ。
(引用ここまで)
韓国には「表情管理」なる言葉がありまして。
割と最近になって作られた言葉です。
そうですね、簡単にいうと「TPOにあわせて表情を取り繕う」って感じかな。
スポンサーが来ていればなにを言われても笑みを浮かべ、葬式の場では悲しみの表情を貼りつける、といった意味。
なんかのグループがそんなタイトルの歌も歌ってました。
で、「ハン・ガンのノーベル文学賞受賞の一報を聞いた日本が表情管理をしている」っていうのは「悔しくてしょうがないのに平静を装っている」って韓国人が思っているってことなのですね。
これ、逆の視点から見るとすごくよく分かるのですけども。
日本人がなんらかのノーベル賞を受賞する度に、韓国人はとてつもなく悔しがってきたってことなのです。
それこそ「表情管理」が必要になるくらいに悔しがってきた。
日本と韓国の差はどこにあるのかだのなんだのを考えてきたって自白そのものなのです。
まあ、悔しがっていなかったら「受賞者を顕彰するための台」は作らないよね……。
日本のメディアは比較的さらっと「韓国のハン・ガンがノーベル文学賞を受賞した」って報道している。
それを「表情管理をしているのだ」と思わざるを得ない。
なぜなら自分たちがそうしてきたから。
「村上春樹が受賞を逃した上に、韓国が受賞したことで本当は悔しくて悔しくてしかたがないのに!」って思っているわけです。
んー、そういう人もゼロではないと思いますけども。
韓国人が2000年以降、14回ほど感じてきていた「表情管理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ほどの激情」を感じてはいないだろうなぁとも思います。 「今年の10月は残酷な月ではなかった」でよかったんじゃないですかね?
ちなみに「村上の受賞はなかったのにハン・ガンが受賞したことに日本が失望感を抱えている」みたいなことを書いている記事は10どころでなくあります(笑)。
10일, 한·암의 노벨 문학상 수상의 뉴스가 전해지면, 이웃나라의 일본에서도 주요 매스컴이 일제히 「아시아 여성 작가로서는 첫 수상」이라고 해, 관련 뉴스를 크게 보도했다. (중략)
한편, 일본에서는 이번 노벨 문학상의 단골 후보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상에 들이는 기대가 꽤 컸기 때문에 실망감도 크다고 볼 수 있다.
현지의 인터넷 미디어는, 한·암의 수상 기사에 앞서, 무라카미씨의 수상 실패를 일제히 먼저 전했다. 한·암 수상의 뉴스에 대한 현지의 네티즌들의 반응은, 아시아 여성 작가의 첫수상에 대한 축하와 함께, 하루키의 수상 실패에 대한 어딘지 부족함을 표출 하는 것이 많다.오랫동안 노벨 문학상 후보로서 다루어져 온 하루키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어, 일본 뿐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수상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여겨져 왔다.
일본은 지금까지 노벨 문학상 분야에서 자국 국적으로 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에 겐자부로의 2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2017년의 수상자인 이시구로 카즈오는 일본계 영국인이다.
(인용 여기까지)
한국에는 「표정 관리」되는 말이 있어서.
생각보다는 최근이 되어 만들어진 말입니다.
그렇네요, 간단하게 말하면 「TPO에 맞추고 표정을 손질한다」라는 느낌일까.
스폰서가 와있으면 무엇을 들어도 미소를 띄워 장례식의 장소에서는 슬픔의 표정을 붙인다, 라고 하는 의미.
무슨그룹이 그런 타이틀의 노래도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이것, 반대의 시점에서 보면 몹시 잘 압니다만도.
일본인이 하등의 노벨상을 수상할 때마다, 한국인은 터무니없게 분해해 와도 일입니다.
그야말로 「표정 관리」가 필요하게 될 정도로에 분해해 왔다.
일본과 한국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지라든가야의를 생각해 왔다고 자백 그 자체입니다.
뭐, 분해하지 않았으면 「수상자를 현창하기 위한 대」는 만들지 않지요 .
일본의 미디어는 비교적 은근하게 「한국의 한·암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보도하고 있다.
그것을 「표정 관리를 하고 있다」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스스로가 그렇게 해서 왔기 때문에.
응―, 그러한 사람도 제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도.
한국인이 2000년 이후, 14회 정도 느껴 오고 있던 「표정 관리를 해야 할 만큼의 격정」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합니다. 「금년의 10월은 잔혹한 달은 아니었다」로 좋았던 응이 아닙니까?
덧붙여서 「무라카미의 수상은 없었는데 한·암이 수상했던 것에 일본이 실망감을 안고 있다」같은 일을 쓰고 있는 기사는 10무렵이 아니고 있어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