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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極右派の韓国館

第1章 朝鮮の土地を踏んですみません

石明鉄
2019.7.4.13:23

V.合併前の朝鮮

ところが韓日合併以前の朝鮮人たちはどのような生 活をしていたのだろうか。都会地や村の風景はどう でしたか? これからそのようなことについて学びま しょう。

1.その類例を見つけることができないほどの不潔性

韓日合併以前、朝鮮を旅行した外国人たちは一つ一緒に口をそろえ、朝鮮の村や街の不潔さについて語 っている。朝鮮の首都である京城の市街地において も、牛や馬の糞尿があちこちに広がっていることは
言うまでもなく、人糞もここそこに放置されていた と証言している。当時、朝鮮を訪れた外国人たち は、あなたもすることなく、朝鮮の土地のすべての
都市で鼻が捻れるほどの悪臭に苦しんだという経験 を伝えている。


1894年から1897の間の3年間で4回にわたって朝鮮 を訪れたことのあるイギリスの女性旅行家、イザベ ラ・バーアード夫人の『朝鮮紀行、イギリス夫人が 見た朝鮮末期』(講談士学術文庫) という本の中に は、を見ることができる。

崇新凱

「ソウルの城の中の姿がとても汚れていると描写す
るのは、ちょっと申し訳ない気がない。なぜなら、 私が北京を見る前までだけでもソウルの城の中こそ がこの世界で最も汚れたところだと思っていたし、
昌江城にある都市で小興黄州で有名ハダ: 引用者 注]に行く前までは、ソウルの悪臭がこの世界で最 もひどいと考えていたからだ!」


彼女の文章を読んでみると、ソウルよりは北京とシ
ャオシングのほうがより不潔で悪臭が激しいものと なっている。したがって、ソウルは東アジアにおい てそれほど少し良い方に属すると考えられるかもし
れないが、いかなる間にソウルはとんでもなく汚れ て臭いがひどいところだったことは確かに見える。 彼女はまた次のように書いている。


「夜も昼も絶えず城の外に排出される生活下水は、 遠い昔から何世代にもわたって何の対策もなく腐っ たまま腐るように放置することで真っ黒な泥地にな り、ひどい匂いを空中に発散させて旅行者たちの鼻 を歪ませるようにしている。」

この本には、二条末期朝鮮の姿が極明に描かれてい
る。政治、経済だけでなく街や農村の実態、人々が 生きていく生活上、そして朝鮮の自然などあるまま の姿を描いている。この資料は当時の朝鮮姿を研究
するにあたっては第一級資料である。翻訳された本 の分量が600以上を超える膨大な資料だ。


バーアード夫人は同じ時期に日本も五回も訪れ、 『日本王子紀行』(平凡師) という本を発刊した が、彼女はこの本で日本の美しい自然と清潔になる ことのない日本家庭に感銘を受けたと記録してい る。

また、韓日合併以前の1904年から1905年の間に朝 鮮を訪問したスウェーデンのジャーナリストである アアソン・グレイブストは、『悲劇の朝鮮』(白帝 社) という本を書いたが、彼はその本で釜山で受け た彼の印象を次にのように記述している。

「道路は狭くて不潔で、家屋は低く、見品がなかっ
た。日本で見た店や古い寺のようなものは一切見ら れなかった。悪臭が四方から鼻を突いていたし、家 の外にはゴミが汚れて溜まっていた。長い毛が縮ん
だ犬が集まって食べるものを探して迷っている。あ ちこちに乾燥した下水道が見えたが、その底には枝 の汚れがべたつく腐食していた。
(高演義、河在龍
駅)


釜山の街も多分ソウルと同じく不潔だったようだ。

19世紀に朝鮮を旅した日本人本間久助も『朝鮮捕獲
―日本人が見た1894年の李氏朝鮮』(祥傳社)とい う本を書いたが、この本もやはり当時朝鮮の不潔さ
を話題にして書いている。この『朝鮮捕獲』は著者 である本間氏が見た朝鮮民衆の生活像を描いてい る。彼の本はイギリスのバーアド夫人の『朝鮮紀
行』より4年前に書かれた本で、飼料的価値の高い 内容が多い。


その本によると、朝鮮人たちの不潔さは街並みだけ
でなく生活全般にまたがっていた。市場で野菜や魚 を売る人たちは地の底に食べるものを並べて売って いたが、その中には腐っているのも難しくないよう
に見られた。家庭で調理をする際にも、スーザーや 箸を使わずに、みんな素手で調理していた。鼻にぶ ら下がっている鼻水を拭いた手でキムチを浸すのは
予札であった。朝鮮人たちは風呂に入る習慣がない ため、体では不思議な体臭が鼻を刺していた。


家の家の壁は超壁の壁で拭くだけでも土が服に埋ま
って服が汚れて、泥を塗っただけの部屋の中天井は 非常に低く、広い部屋でも畳6兆ほどに過ぎず、狭 いのは畳一兆程度のものもあった。余談だが側間扉
は稲わらで作られ、ある丸馬は丸いものだったがそ れを開けて用便後用品として使っていた。


朝鮮人は糞尿に対する感覚も独特で、本間さんは朝
鮮人が尿で顔を拭くのを見たことがあると書いてい る。
朝鮮人たちは家の中に要綱を置いてお客を迎え る時もそれを目立たないところに隠しておくことな
どはしなかった。そしておしっこがうまくいけばそ れに龍辺を見た。婦女が猫を拭くときは、おしっこ で拭くという。こうすれば梅毒のような伝染病を防
ぐことができると信じたということだ。


朝鮮の街が不潔だったのは昔からの伝統だったよう だ。18世紀後半の朝鮮の実学者パク・ジェガ(朴齊 家)は『北学の(北學議)』で次のように書いている。

「我が国は城の中に排泄しておいた人前を打ち出す ことがなくて悪臭が道路に充満しており、橋の下や 土談の隣には排泄された人分が重なりが付いている ので、大きな雨が降って掃き出されない限りきれい になることができない。(宇野秀弥役)

第2章の「民間療法」で詳細に説明する予定だが、 朝鮮人たちは人糞に対して「汚い」とか「不潔だ」 という感覚をほとんど持っていなかったようだ。

また、合併以前の朝鮮は道路事情が非常に劣悪だっ たという事実も、多くの人々が指摘している。バア ード夫人はこれについて次のように書いている。

「朝鮮の道路はいくら広いとしても、二筆の言葉が
並んで走ることができない。狭いのは、一人のフォ ークリフトが行き来するにも苦しいほどだ。路辺に は悪臭がふくらんでいる溝が掘られており、路面の
上には時が道徳にかかった半裸の子供たちが悪着の ような犬たちと一緒に占領して遊んでいて旅行者が 挙動することは非常に難しい。」


このようなバアード夫人の技術は、朝鮮に対して何
らかの悪意を持って書かれたものではない。彼女は 旅行が自分自身で見たものを正確に、また非常に冷 徹に、そして客観性を持って描いている。例えば、
朝鮮人の外国語習得能力は中国人よりも優れてお り、朝鮮人の体格は日本人よりも大きいと書いてい る。


引用者の村評

引用者の村評
この部分はこの本の著者が書こうとする論題を離脱 した、いわば「人身攻撃性」発言に過ぎません。 ①外国文物なら無条件猿のように真似をしてこそ直
性が解ける日本人の習性とか② 『フンドシ』とい うことで猫だけを覆ったままほぼ裸に通う男たちの 姿、③戦争だけを一目で男性戦士が多くなることに
より男ギャップがひどくなって由来したという独特 の姿の日本女性の装いなど、いくつかの日本の否定 的な姿が考えられます。


しかし、今日本人の苦い声を聞いている立場で同じ 苦い声で対応するには時間が惜しいです。

2.朝鮮では貨幣が流通しなかった

韓日合併以前、朝鮮では貨幣というのがまったく使 われなかったわけではない。

二条時代には何度か貨幣が鋳造されたことがあった が額面そのままの価値が認められなかったのか、そ れとも流通を禁止していたのか、ほとんど普及して いなかった。朝鮮において貨幣の代わりに使われた ものは米や捕木であり、取引の大部分は物物交換だ った。

1429年、室町時代に日本を訪れた朝鮮通信使は、
その報告書中に次のように書いている。「日本では 貨幣が円滑に流通しており、野菜や米による支払い を上回っている。したがって、天理道を旅行すると
きにもただお金だけ携帯して通えば十分で、穀物を 携帯する必要はない。朝鮮通信社はこのように報告 し、日本で貨幣が円滑に流通する姿に驚きを禁じら
れていない。


1902年、日本主導で貨幣制度を改正し、日本風の
「1円=100前」として日本の大坂造幣局で貨幣を作 って発行した。同年、日本の第一銀行韓国総支店が
「第一銀行券」を発行し、大韓民国の紙幣に流通さ せた。結局、韓日合併直前に独立国となった朝鮮 は、日本の造幣国や民間銀行が発行する貨幣や紙幣
をお金として使用した。


朝鮮は貨幣経済という面ではヨーロッパや日本に1 千年以上遅れていた。そんな理由のためだったのか 工業や商業はほとんどその発展がなかった。染色技 術もなく、人々はみんな白い服を着て通った。(彼 らの白い服はほとんど汚れていましたが、馬で す。)

3.民衆心の中にある諦めの境地

朝鮮の民衆は、民衆とはすぐに常民を指す言葉だ
が、常に死の恐怖に苦しんでいた。フランス宣教師 であるマリー・ニコル・アントン・ダビュリュが氏 が書いて残したことを、同じ宣教師であるクロー
ド・シャルル・ダレ氏が編集した『朝鮮事情』(平 凡社)には、次のような内容が記述されていること がわかる。


「朝鮮では飢饉が頻繁に起こる。最も貧しい階級の
人々には、これが年に2回ずつ定期的に訪れる。ま ず大麦が収穫されるまでの6月と7月のいわゆる春
宮期に訪れ、次に稲が収穫される直前の9月と10月 に訪れる。この時、彼らが生き残るために食べるこ とができる養殖という塩水に漬けられたしばらくの
植生がすべてだ。(金容權役)


人命を脅かすのは飢饉だけではなかった。グレイブ
ストは彼の本『悲劇の朝鮮』で次のように書いてい る。「その当時、城門の中で打っている鐘は遠くま で響き渡ったが、一人で旅行する人がこの鐘を遠く
から聞くと、全身がぶらぶらと震えた。なぜなら、 その鐘は声門を閉める時刻を知らせる音なのに、声 門が閉じる前に中に入らなければ城門の外で夜を過
ごさなければならない。これは非常に危険なことで す。ソウルの城門の外には人の命をパリの命のよう に思える山賊たちが得意となっていた
からだ。」


また、支配階級である両班は民衆に対して搾取を日 常的に行った。

韓日合併以前の朝鮮は一言で言えば世界最貧国の一 つだったと言っても過言ではなかった。また同時に 到底文明国とは呼べない国でもあった。日本が合併 を断行した国はそのような国だった。

韓国は今も日本が朝鮮から多くを奪取していったと 非難している。しかし当時、朝鮮の土地では盗賊を しなければ盗賊をする物がなかった。これは間違い ない事実です。

(Google翻訳)

 


「일본 극우파의 한국관」

일본 극우파의 한국관

제1장 조선의 토지를 밟아 미안합니다

석명철
2019.7.4.13:23

V.합병전의 조선

그런데 한일 합병 이전의 한국인들은 어떠한 생활을 하고 있 것일까.도시지나 마을의 풍경은 어땠습니까? 지금부터 그러한 일에 대해 배웁시다.

1.그 유례를 찾아낼 수 없을 만큼의 불결성

한일 합병 이전, 조선을 여행한 외국인들은 한 살 함께 입을 모아 조선의 마을이나 거리의 불결함에 임해서 말하고 있다.조선의 수도인 경성의 시가지에 있어도,소나 말의 분뇨가 여기저기에 퍼지고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인분도 여기 거기에 방치되어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당시 ,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당신도 하는 일 없이, 조선의 토지의 모든 도시에서 코를 궁리할 수 있을 정도의 악취에 괴로워했다고 하는 경험을 전하고 있다.

1894년부터 1897의 사이의 3년간에 4회에 걸쳐서 조선을 방문한 것이 있는 영국의 여성 여행가, 이자베라·바아드 부인의 「조선 기행, 영국 부인이 본 조선 말기」(강담사 학술 문고)이라고 하는 책안에는, 을 볼 수 있다.

숭 신개

「서울의 성안의 모습이 매우 더러워져 있으면 묘사 의 것은, 조금 미안한 관심이 없다.왜냐하면, 내가 북경을 보기 전까지만으로도 서울의 성가운데가 이 세계에서 가장 더러워졌는데라고 생각했고, 창강성에 있는 도시에서 소흥황조우로 유명 하다: 인용자주]에 가기 전까지는, 서울의 악취가 이 세계에서 가장 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문장을 읽어 보면, 서울에서(보다)는 북경과 시 오싱 쪽이 보다 불결하고 악취가 격렬한 것이 되고 있다.따라서, 서울은 동아시아에 있어 그만큼 조금 좋은 분에 속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해 없지만, 어떠한 사이에 서울은 터무니 없게 더러워져 냄새나지만 심한 곳이었던 (일)것은 확실히 보인다. 그녀는 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밤이나 낮도 끊임 없이 성의 밖에 배출되는 생활 하수는, 먼 옛부터 몇 세대에 걸쳐 아무 대책도 없게 썩은 채로 썩도록(듯이) 방치하는 것으로 새까만 니지가 되어, 심한 냄새를 공중에 발산시켜 여행자들의 코를 비뚤어지게 하도록(듯이) 하고 있다.」

이 책에는, 2조말기 조선의 모습이 극명에 그려져 있어 .정치, 경제 뿐만이 아니라 거리나 농촌의 실태,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상, 그리고 조선의 자연등 있는 대로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이 자료는 당시의 조선 모습을 연구 하기에 즈음하고는 제일급 자료이다.번역된 책의 분량이 600이상을 넘는 방대한 자료다.

바아드 부인은 같은 시기에 일본도 5회도 방문해 「일본 왕자 기행」(평범사)이라고 하는 책을 발간했지만, 그녀는 이 책으로 일본의 아름다운 자연과 청결하게 될리가 없는 일본 가정에 감명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한일 합병 이전의 1904년부터 1905년간에 조선을 방문한 스웨덴의 져널리스트인 아아손·그레이브스트는, 「비극의 조선」(백제사)이라고 하는 책을 썼지만, 그는 그 책으로 부산에서 받은 그의 인상을 다음에와 같이 기술하고 있다.

「도로는 좁고 불결하고, 가옥은 낮고, 봐 물건이 (안)중 .일본에서 본 가게나 낡은 절과 같은 것은 일절 볼 수 없었다.악취가 사방에서 코를 찔러 해, 집의 밖에는 쓰레기가 더러워져 모여 있었다.긴 털이 축응 (이)다 개가 모여 먹을 것을 찾아 헤매고 있다.여기저기에 건조한 하수도가 보였지만, 그 바닥에는 가지의 더러움이 달라붙는 부식하고 있었다.(고연의, 하 재용 역)

부산의 거리도 아마 서울과 같이 불결했던 것 같다.

19 세기에 조선을 여행한 일본인 혼마 히사시조도 「조선 포획 ―일본인이 본 1894년의 이씨 조선」(상전사)이라고 하는 책을 썼지만, 이 책도 역시 당시 조선의 불결함 (을)를 화제로 하고 쓰고 있다.이 「조선 포획」은 저자인 혼마씨가 본 조선 민중의 생활상을 그리고 있다.그의 책은 영국의 바아드 부인의 「조선기 행」부터 4년전에 쓰여진 책으로, 사료적 가치의 높은 내용이 많다.

그 책에 의하면, 한국인들의 불결함은 거리풍경만 (이)가 아니게 생활 전반에 걸치고 있었다.시장에서 야채나 물고기를 파는 사람들은 땅의 바닥에 먹을 것을 늘어놓아 팔고 있었지만, 그 중에는 썩고 있는 것도 어렵지 않게 (으)로 보여졌다.가정에서 조리를 할 때에도, 스자나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 모두 맨손으로 조리하고 있었다.코에 매달리고 있는 콧물식 있던 손으로 김치를 담그는 것은 예찰이었다.한국인들은 목욕하는 습관이 없기 때문에, 몸에서는 신기한 체취가 코를 찌르고 있었다.

집의 집의 벽은 초벽의 벽에서 닦는 것만으로도 흙이 옷에 매 라는 옷이 더러워지고, 먹칠을 했을 뿐의 방의 중천우물은 매우 낮고, 넓은 방에서도 다다미 6조정도로 지나지 않고, 좁은 것은 다다미 1조 정도의 것도 있었다.여담이지만 측간문 (은)는 벼짚으로 만들어져 있다 환마는 둥근 것이었지만 그것을 열어 용변 후 용품으로서 사용하고 있었다.

한국인은 분뇨에 대한 감각도 독특하고, 혼마씨는 아침 선인이 뇨로 얼굴을 닦는 것을 보았던 것이 있다라고 쓰고 있다.한국인들은 집안에 요강을 두고 손님을 맞이할 때도 그것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겨 두는 것 는 하지 않았다.그리고 소변이 잘 되면 거기에 용변을 보았다.부녀가 고양이를 닦을 때는, 소변으로 닦는다고 한다.이렇게 하면 매독과 같은 전염병을 방 일이 생긴다고 믿었다고 하는 것이다.

조선의 거리가 불결했던 것은 옛부터의 전통이었던 것 같다.18 세기 후반의 조선의 실학자 박·제가(박제가)는 「북학의(북학의)」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우리 나라는 성가운데에 배설해 둔 남의 앞을 밝히는 것이 없어서 악취가 도로에 충만하고 있어, 다리아래나 토담의 근처에는 배설된 인분이 중복이 붙어 있으므로, 큰 비가 내려 쓸어 내지지 않은 한 예쁘게 될 수 없다.(우노수미역)

제2장의 「민간 요법」으로 상세하게 설명할 예정이지만, 한국인들은 인분에 대해서 「더럽다」라고「불결하다」라고 하는 감각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또, 합병 이전의 조선은 도로 사정이 매우 열악했다고 말하는 사실도,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다.바아드 부인은 이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조선의 도로는 아무리 넓다고 해도, 2붓의 말이 줄서 달릴 수 없다.좁은 것은, 한 명의 포크리프트가 왕래하기에도 괴로울 정도다.노변에는 악취가 부풀어 있는 도랑이 파지고 있어 노면의 위에는 때가 도덕에 걸린 반나체의 아이들이 악착과 같은 개들과 함께 점령해 놀고 있어 여행자가 거동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러한 바아드 부인의 기술은, 조선에 대해서 무엇 들인가의 악의를 가지고 쓰여진 것은 아니다.그녀는 여행이 자기 자신으로 본 것을 정확하게, 또 매우 냉철하게, 그리고 객관성을 가지고 그리고 있다.예를 들면, 한국인의 외국어 습득 능력은 중국인보다 뛰어나 한국인의 체격은 일본인보다 크다고 쓰고 있다.

인용자의 촌평

인용자의 촌평 이 부분은 이 책의 저자가 쓰려고 하는 논제를 이탈한, 말하자면 「인신 공격성」발언에 지나지 않습니다. ①외국 문물이라면 무조건원숭이와 같이 흉내를 내야만 곧 성이 풀리는 일본인의 습성이라든지② 「훈드시」라고 하는 것으로 고양이만을 가린 채로 거의 알몸에 다니는 남자들의 모습,③전쟁만을 한눈에 남성 전사가 많아지는 것에 보다 남자 갭이 심해져 유래했다고 하는 독특한 모습의 일본 여성의 치장 등, 몇개의 일본의 부정적인 모습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일본인의 씁쓸한 소리를 듣고 있는 입장에서 같은 씁쓸한 소리로 대응하려면 시간이 아깝습니다.

2.조선에서는 화폐가 유통하지 않았다

한일 합병 이전, 조선에서는 화폐라고 하는 것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2조시대에는 몇 번이나 화폐가 주조되었던 적이 있었지만 액면 그대로의 가치가 인정받지 못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유통을 금지하고 있었는지, 거의 보급되어 있지 않았다.조선에 있어 화폐 대신에 사용된 것은 미나 포목이며, 거래의 대부분은 물물교환이었다.

1429년, 무로마치 시대에 일본을 방문한 조선 통신사는, 그 보고서중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일본에서는 화폐가 원활히 유통하고 있어, 야채나 미에 의한 지불을 웃돌고 있다.따라서, 텐리도를 여행하면 나무에도 단지 돈만 휴대해 다니면 충분하고, 곡물을 휴대할 필요는 없다.조선 통신사는 이와 같이 보고해, 일본에서 화폐가 원활히 유통하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지해들 라고 없다.

1902년, 일본 주도로 화폐 제도를 개정해, 일본풍의 「1엔=100전」으로서 일본의 오오사카 조폐국에서 화폐를 만들어 발행했다.동년, 일본의 제일 은행 한국총지점이 「제일 은행권」을 발행해, 대한민국의 지폐에 유통시켰다.결국, 한일 합병 직전에 독립국이 된 조선은, 일본의 조폐국이나 민간은행이 발행하는 화폐나 지폐 (을)를 돈으로 해서 사용했다.

조선은 화폐 경제라고 하는 면에서는 유럽이나 일본에 1 천년 이상 늦었다.그런 이유이기 때문에였는가 공업이나 상업은 거의 그 발전이 없었다.염색 기술도 없고, 사람들은 모두 흰 옷을 입고 다녔다.(그들의 흰 옷은 거의 더러워져 있었습니다만, 말입니다.)

3.민중 마음 속에 있는 체념의 경지

조선의 민중은, 민중과는 곧바로 상민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항상 죽음의 공포에 괴로워하고 있었다.프랑스 선교사인 메리·니콜·안톤·다뷰류가 씨가 써 남긴 것을, 같은 선교사인 크로 드·샤를르·다레씨가 편집한 「조선 사정」(헤본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술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에서는 기근이 빈번히 일어난다.가장 궁핍한 계급의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1년에 2회씩 정기적으로 방문한다.우선 보리가 수확될 때까지의 6월과 7월의 이른바 봄 궁기에 방문해 다음에 벼가 수확되기 직전의 9월과 10월에 방문한다.이 때, 그들이 살아 남기 위해서 먹을 수 있는 양식이라고 하는 소금물에 담글 수 있었고 장미구의 식생이 모두다.(금용권역)

인명을 위협하는 것은 기근 만이 아니었다.그레이브 파업은 그의 책 「비극의 조선」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그 당시 , 성문안에서 치고 있는 종은 먼 곳까지 영향을 주어 건넜지만, 혼자서 여행하는 사람이 이 종을 멀고 (으)로부터 들으면, 전신이 어슬렁어슬렁떨렸다.왜냐하면, 그 종은 성문을 닫는 시각을 알리는 소리인데, 성문이 닫기 전에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성몬노소토에서 밤을 과 기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서울의 성몬노소토에는 사람의 생명을 파리의 생명과 같이 생각되는 산적들이 이익이 되고 있던부터다.」

또, 지배계급인 양반은 민중에 대해서 착취를 일상적으로 실시했다.

한일 합병 이전의 조선은 한마디로 말하면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었다.또 동시에 도저히 문명국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나라이기도 했다.일본이 합병을 단행한 나라는 그러한 나라였다.

한국은 지금도 일본이 조선으로부터 대부분을 탈취하며 갔다고 비난 하고 있다.그러나 당시 , 조선의 토지에서는 도적을 하지 않으면 도적을 하는 것이 없었다.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Google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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