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共に民主・李在明代表、独島で騒ぎ立てるのはもうやめてください」
韓国に「反米政権」が誕生して「反日扇動」に乗り出せば、独島の状況は予測不能に
李代表、デマばかり流せば日本の右翼の「竹島広報大使」になる
韓国最大野党「共に民主党」の李在明(イ・ジェミョン)代表による独島関連の発言を聞いていると、まるで日本の右翼の「竹島広報大使」(竹島:独島の日本式表記)を引き受けることに決めたかのように思える。国会の多数党のトップであり、野党の次期大統領候補ナンバーワンである李代表にそんなことを依頼したはずはないだろうから、自ら進んで引き受けたわけだ。李代表の発言は、即座に日本の新聞やテレビを通じて日本全域に伝わり、独島が韓日の紛争地だというイメージを強化したのは明らかだ。日本は手を汚さずに利益を得たようなものだ。
日本が領土紛争地域と考えているのは3カ所だ。一つ目はサハリン(樺太)と北海道の間にある四つの島の領有権問題だ。日本は1905年の露日戦争(日露戦争)で勝利し、サハリンの半分を領有した。その後、第2次世界大戦に敗れてサハリンの領有部分をソ連に返還したが、当時ソ連はその南方の島に居住していた日本人を追い出して、その島を占領した。自国民が住んでいた場所を追い出されたということで、日本は四つの島の返還を「北方領土回復の悲願」と表現した。
二つ目は、台湾と沖縄の間にある尖閣諸島(中国名:釣魚島)だ。中国は1895年の清日戦争(日清戦争)に敗れた後、台湾を日本に割譲したが、第2次世界大戦後に取り戻した。尖閣諸島は現在、日本が占有しているが、中国はこの島が本来台湾に属していたという理由を掲げて領有権を主張している。台湾は静観しているのに、中国が動いたのだ。そして三つ目が独島問題だ。当初は、竹島を知る日本人はほとんどいなかった。
これら三つの紛争地域について、日本政府はそれぞれ異なる対応を取った。日本は米国による占領が終わって主権を回復した直後、北方四島の返還をソ連にしつこく要求した。1956年にソ連は四つのうち二つの島について返還の意思をちらつかせたが、冷戦が激しくなると、返還の話はなかったことになってしまった。ソ連崩壊の直前、日本は膨大な経済援助を約束することでソ連の態度を覆そうと試みたが、成果は得られなかった。
尖閣諸島は、中国が騒ぎ立てて日本は無視するというパターンだった。日本で自民党政権が民主党政権に変わると「中国の攻勢-日本は無視」というそれまでの構図に変化が現れた。民主党政権は、個人の所有だった尖閣の島々を国有化したのだ。これを機に中国の対応は一気に激しくなった。日本は寝た子を起こしてしまったのだ。中国海警局が尖閣諸島の海域に頻繁に侵入するようになり、中国人たちは島への上陸を試みた。「中国の警察」に日本の軍隊に当たる「自衛隊」が対抗すれば、武力衝突に発展する危険性も出てきた。
日本の民主党政権が米日同盟に亀裂を生じさせ、北東アジア安全保障複合体など不完全な構想を打ち出すと、状況は悪化した。米国の大統領たちは米日安全保障条約の対日防衛義務に尖閣諸島が含まれるかどうかについて明確な言及を避けてきた。この隙を突いて、中国は尖閣の海域にミサイルを撃ち込んだ。尖閣危機は、自民党が政権を奪回して米日同盟を整備し、米国の大統領が対日防衛義務に尖閣諸島も含まれると明言したことで、沈静化し始めた。
韓国の独島領有権に対する日本の挑戦は、主に日本の外交青書・防衛白書・教科書に独島を日本名の「竹島」と表記する形で行われ、そこに政治家や右翼団体が便乗して火を付けた。これを無視できないのは、将来的に露骨な紛争に発展した場合に備えて国際法上の根拠を蓄積するという性格もあるからだ。このような時には、毎回厳しい抗議と警告が必要になる。しかし問題は、過剰な対応だった。
2000年代に入る前まで、「竹島」の存在を知っているという日本人は20-30%にも満たなかった。盧武鉉(ノ・ムヒョン)政権以降、韓国政府と反日団体による過激な反応が相次いだことで、日本人の間で独島の認知度は90%へと急上昇した。領土問題で世論に火が付けば、どんな国のどのような政権でも世論の影響を受けることになる。日本政府が一線を越えないよう、また軌道を外れないようけん制しているのは、韓米安全保障条約と米日安全保障条約によって北東アジアの安定を支えている米国の存在だ。米国が、韓日関係の緊張緩和に向けた尹錫悦(ユン・ソンニョル)政権の努力を評価しているのも同じ理由からだ。
独島が危険な状況になるというのはあり得ることだろうか。韓国に反米政権が誕生し、その政権が世論の反日感情をあおることで政権を維持しようとするならば、その可能性もある。恐らくその様子は、日本が実効支配している尖閣諸島に対する中国の挑発方式に近いものになる可能性が高い。米国が背後で調整することもなくなると考えた場合、「それは非現実的な悪夢だ」と言っていられるだろうか。
局長級の駐韓中国大使が無礼な態度で「米国が勝利し、中国が敗れることに賭けるのなら、韓国は歴史の流れを正しく把握していないということだ」と説教するのを頭を下げながら聞いている李在明代表と、それを書き留める民主党幹部の姿を思い浮かべると、不安が増すばかりだ。
「 모두 민주·이재 명대 오모테, 독도에서 소란피우는 것은 이제(벌써) 그만두어 주세요」
한국에 「반미 정권」이 탄생해 「반일 선동」에 나서면, 독도의 상황은 예측 불능에
이 대표, 유언비어만 흘리면 일본의 우익의 「타케시마 홍보 대사」가 되는
한국 최대 야당 「 모두 민주당」의 이재아키라(이·제몰) 대표에 의한 독도 관련의 발언을 (듣)묻고 있으면, 마치 일본의 우익의 「타케시마 홍보 대사」(타케시마:독도의 일본식 표기)을 맡기로 결정했는지와 같이 생각된다.국회의 다수당의 톱이며, 야당의 차기대통령 후보 넘버원인 이 대표에 그런 일을 의뢰했을 리는 없을테니, 스스로 진행되어 맡은 것이다.이 대표의 발언은, 즉석에서 일본의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통해서 일본 전역에 전해져, 독도가 한일의 분쟁지라고 하는 이미지를 강화한 것은 분명하다.일본은 부정한 짓을 하지 않고 이익을 얻을 것 같은 것이다.
둘째는, 대만과 오키나와의 사이에 있는 센카쿠 제도(중국명:조어섬)다.중국은 1895년의 청일 전쟁(청일 전쟁)에 진 후, 대만을 일본에 할양 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되찾았다.센카쿠 제도는 현재, 일본이 점유 하고 있지만, 중국은 이 섬이 본래 대만에 속하고 있었다고 하는 이유를 내걸고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대만은 세이칸 하고 있는데, 중국이 움직였던 것이다.그리고 셋째가 독도 문제다.당초는, 타케시마를 아는 일본인은 거의 없었다.
센카쿠 제도는, 중국이 소란피워 일본은 무시한다고 하는 패턴이었다.일본에서 자민당 정권이 민주당 정권으로 바뀌면 「중국의 공세 일본은 무시」라고 하는 지금까지의 구도에 변화가 나타났다.민주당 정권은, 개인의 소유였던 센카쿠의 섬들을 국유화 했던 것이다.이것을 기회로 중국의 대응은 단번에 격렬해졌다.일본은 긁어 부스럼을 일으켜 버렸던 것이다.중국 해경국이 센카쿠 제도의 해역에 빈번히 침입하게 되어, 중국인들은 섬에의 상륙을 시도했다.「중국의 경찰」에 일본의 군대에 해당되는 「자위대」가 대항하면, 무력 충돌로 발전하는 위험성도 나왔다.
한국의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의 도전은, 주로 일본의 외교 청서·방위 백서·교과서에 독도를 일본명의 「타케시마」라고 표기하는 형태로 행해져 거기에 정치가나 우익 단체가 편승 하고 불을 붙였다.이것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장래적으로 노골적인 분쟁으로 발전했을 경우에 대비해 국제법상의 근거를 축적한다고 하는 성격도 있기 때문이다.이러한 때에는, 매회 어려운 항의와 경고가 필요하게 된다.그러나 문제는, 과잉인 대응이었다.
국장급의 주한중국 대사가 무례한 태도로 「미국이 승리해, 중국이 지는 것에 건다면, 한국은 역사의 흐름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라고 설교하는 것을 고개를 숙이면서 (듣)묻고 있는 이재 명대표와 그것을 써두는 민주당 간부의 모습을 떠올리면, 불안이 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