浮浪者収容施設、生きているうちは強制労働、死亡後は解剖実習に渡していた=韓国
登録:2024-09-09 23:59 修正:2024-09-11 07:09
113体の遺体を医学部の解剖用に引き渡した聖地園
真実和解委、施設収容調査で記録を初確認
――民間人虐殺が全国で吹き荒れた朝鮮戦争が停戦すると、今度は拉致と監禁の時代がはじまった。施設収容を中心とした政府の浮浪者政策は施設側の利害と結び付き、浮浪者を標的にするにとどまらなかった。酒に酔って乱暴を働くとして、住居が定まっておらず徘徊しているとして、身なりがみすぼらしいからとして、さらには顔が青白いからとして、警察と取り締まり班員に捕まり、獣のように「飼育」された。憲法に明示された「人間としての尊厳と価値」、「身体の自由」は無視された。これは内務部訓令第410号、物乞い行為者保護対策、保健社会部訓令第523号によって裏付けられたことで、形式的な民主化が成し遂げられた1987年以降も続いた。1987年に暴露された釜山(プサン)最大の浮浪者収容施設の兄弟福祉院がすべてではなかった。ソウル市立更生院、大邱市立希望院、忠清南道の天声園(大田の聖地園、燕岐郡のヤンジ園)、京畿道のソンヘ園の5施設(4法人)による大規模な人権侵害に対する真実和解委の真実究明を契機として、この問題を多角的に探った。――
1980年代、大田の浮浪者収容施設が死亡した収容者の遺体を無縁仏として分類し、大学の医学部の解剖実習用の死体として無断で提供していたことが、記録から明らかになった。浮浪者施設の死者の遺体が大学病院に解剖実習用として売られたとする主張が最初に登場したのは、1987年に兄弟福祉院事件が暴露された時のことで、被害者の証言を根拠としていた。だが、記録が発見されたのは今回が初めてだ。
この事実は、真実・和解のための過去事整理委員会(真実和解委)が今月6日の第86回全体委で真相究明(被害認定)を決議した「ソウル市立更生院など成人浮浪者収容施設の人権侵害事件」の調査過程で確認された。問題の収容施設はソウル市立更生院、大邱市立希望院、忠清南道の天声園(大田(テジョン)の聖地園、燕岐郡(ヨンギグン)のヤンジ園)、京畿道のソンヘ園の5施設(4法人)で、このうち解剖用の遺体を提供していたとの記録が発見されたのは、天声園傘下の大田の聖地園だ。
真実和解委が忠南大学医学部から提出を受けた「天声園事件死亡者解剖実習用交付状況」によると、社会福祉法人天声園傘下の聖地園が、浮浪者収容業務を開始した1982年から1986年にかけて忠南大学医学部に引き渡した解剖用の遺体は113体。この時期に忠南大学が各所から引き渡しを受けた解剖用遺体は117体で、聖地園からの遺体は97%に達する。だが、兄弟福祉院事件が明るみに出たことで浮浪者収容施設での人権侵害が問題化した1987年からは、遺体の交付件数が急激に減少している。
生きているうちは警察や公務員による取り締まりで浮浪者収容所に強制収容され、過酷行為、独房への収容、強制労役など人間として耐え難い人権侵害にあった人々が、死んでからも本人の意思とは関係なしに解剖実習用に引き渡されるという人権侵害を被っていたわけだ。ただし、この資料にはやり取りされた金銭の内訳がないため、遺体が単なる交付にとどまらず「売買」されていたのかは確認できていない。
今回、真実和解委が調査を実施した浮浪者収容施設では、死亡率が著しく高かった。ソウル市立更生院の場合、1966年の900人あまり(推定)の収容者のうち180人が死亡している。二日に1人の割合だ。翌年の1967年には、1月1日から5月12日にかけて、一日平均で2人の死者が出ている。死者を解剖実習用に引き渡していた聖地園の場合、1986年の600人の収容者のうち46人が死亡している。死亡率は7.7%だ。真実和解委は「1986年の20歳以上の一般国民の死亡率が0.58%であることを考えると、10倍を超える数値」だと述べた。
真実和解委は、「各死亡者についての死体交付申請書や死体引き取り証などを検討した結果、大半が死亡当日またはその翌日に死体交付申請書が医学部から大田市に提出され、直ちに死体が交付されていた」とし、「死体引き取り証に『上記の死体は(死体解剖)保存法第4条、第11条に則って本学が引き取った。同法第3条の規定による保存期間(30日間)を6カ月に延長して保管する』と記載されているのをみると、引き取りから6カ月以内に解剖実習に使用し、その後、年末にまとめて埋葬処理していたと判断される」と述べた。
真実和解委は、「聖地園は、収容者の中から死亡者が発生した際に、彼らを迅速に『無縁仏推定死体』に分類し、医学部に引き渡すシステムを構築していた」とし、「聖地園は死者のほとんどを無縁仏として分類し、医学部に迅速に移送していたことから、意図的に縁者につなげる努力を放棄していたと判断される」と述べた。
見なさい!この残虐性を
北も南もやってる事は同じ
This is Chousenjin!
부랑자 수용 시설, 살아 있을 때는 강제 노동, 사망 후는 해부 실습에 건네주고 있던=한국
진실 화해위, 시설 수용 조사에서 기록을 첫확인
1980년대, 대전의 부랑자 수용 시설이 사망한 수용자의 유초`후를 무연불로서 분류해, 대학의 의학부의 해부 실습용의 시체로서 무단으로 제공하고 있던 것이, 기록으로부터 밝혀졌다.부랑자 시설의 사망자의 사체가 대학병원에 해부 실습용으로서 팔렸다고 하는 주장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87년에 형제 복지원사건이 폭로되었을 때의 일로, 피해자의 증언을 근거로 하고 있었다.하지만, 기록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사실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일정리 위원회(진실 화해위)가 이번 달 6일의 제86회 전체위로 진상 구명(피해 인정)을 결의한 「서울 시립 갱생원 등 성인 부랑자 수용 시설의 인권침해 사건」의 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문제의 수용 시설은 서울 시립 갱생원, 대구 시립 희망원, 충청남도의 하늘의 소리원(대전(대전)의 성지소노, 연기군(욘기군)의 얀지원), 경기도의 손헤원의 5 시설(4 법인)에서, 이 중 해부용의 사체를 제공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발견된 것은, 하늘의 소리원산하의 대전의 성지원이다.
진실 화해위가 충남 대학 의학부로부터 제출을 받은 「하늘의 소리원사건 사망자 해부 실습용 교부 상황」에 의하면, 사회 복지 법인 하늘의 소리원산하의 성지원이, 부랑자 수용 업무를 개시한 1982년부터 1986년에 걸쳐 충남 대학 의학부에 인도한 해부용의 사체는 113체.이 시기에 충남 대학이 각처로부터 인도를 받은 해부용 사체는 117체로, 성지원으로부터의 사체는 97%에 이른다.하지만, 형제 복지원사건이 표면화된 것으로 부랑자 수용 시설에서의 인권침해가 문제화한 1987년부터는, 사체의 교부 건수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이번, 진실 화해위가 조사를 실시한 부랑자 수용 시설에서는, 사망률이 현저하게 높았다.서울 시립 갱생원의 경우, 1966년의 900명 남짓(추정)의 수용자중 180명이 사망해 있다.이틀에 1명의 비율이다.다음 해의 1967년에는, 1월 1일부터 5월 12일에 걸치고, 하루 평균으로 2명의 사망자가 나와 있다.사망자를 해부 실습용으로 인도하고 있던 성지원의 경우, 1986년의 600명의 수용자중 46명이 사망해 있다.사망률은 7.7%다.진실 화해위는 「1986년의 20세 이상의 일반 국민의 사망률이 0.58%인 것을 생각하면, 10배를 넘는 수치」라고 말했다.
진실 화해위는, 「 각 사망자에 대한 시체 교부 신청서나 시체 인수증등을 검토한 결과, 대부분이 사망 당일 또는 그 다음날에 시체 교부 신청서가 의학부로부터 오오다시에 제출되어 즉시 시체가 교부되고 있었다」라고 해, 「시체 인수증으로 「상기의 시체는(시체 해부) 보존법 제4조, 제11조에 준거하고 본학이 물러갔다.동법 제3조의 규정에 의한 보존 기간(30일간)을 6개월로 연장해 보관한다」라고 기재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인수로부터 6개월 이내에 해부 실습에 사용해, 그 후, 연말에 정리해 매장 처리하고 있었다고 판단된다」라고 말했다.
진실 화해위는, 「성지원은, 수용자중에서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에, 그들을 신속히 「무연불추정 시체」로 분류해, 의학부에 인도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다」라고 해, 「성지원은 사망자의 대부분을 무연불로서 분류해, 의학부에 신속히 이송하고 있던 것으로부터, 의도적으로 친척에게 연결하는 노력을 방폐하고 있었다고 판단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