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台湾人が見た日韓併合時代


韓国人は日本に併合されていた時代が世界一幸せだった
『日本人はとても素敵だった』


楊素秋(台湾人女性)著より

 負けた側である日本がある程度経済的に豊かになると、今度は、弁償という言葉のもとに強請やたかりをする。これはやくざのやり方です。中国や朝鮮・韓国は、それをずっとやり続けています。テレビを見る度に日本の悪口を言ってる朝鮮の人などを見ると、私は憤りに似たものを感じます。不公平だと。してもらったことに対して、なぜありがとうと言わないのか、と。


黄文雄(台湾) 正論 2003年6月号


日本の過保護で世界一幸福だった20世紀の朝鮮民族


 「韓国併合」と言われるもの本質は、日本の朝鮮植民地化ではなく、日韓の合併だった。戦後の朝鮮人はよく、日帝の植民地略奪」を強調し、日本人も朝鮮では台湾以上に過酷な統治が行われていたと考えがちだが、事実はまったくその逆である。朝鮮では台湾よりも地租が安く、産米も逆ざや制度が取られ、地下資源の経営も中央政府からの補助で支えられ歳出も中央による年平均15〜20パーセントの補填で支えられていた。資本投資も台湾より朝鮮の方が大きかった。

 そのため20世紀初頭まで糞尿だらけで世界一不潔な都市といわれていた現ソウルなど、美しい近代的な街に変貌し、半島の人口も倍増した。普通の近代国家なら、国民が国防費を賄うのが義務であり常識だが、朝鮮人からは一銭たりとも徴収しないという特別待遇だった。

 20世紀の人類史において、当時の朝鮮人ほど、過保護を受けて幸福に暮らしていた民族はない。
 飢饉・疫病や戦乱・革命の被害も、自国民同士の朝鮮戦争を除いては、この国の人々の損害は実に小さい。このように韓国は、日本に依存しながら成長した国家なのである。戦後の国作りの成功、OECDの加盟の達成にしても、日米の資本と技術の移転に頼ったからこそだ。「第二の国辱」と言われる97年末以来の金融危機も、IMFの管理下に入ることで国際的地位を守っている。他力本願、ことに対日依存というのが、近代以降のこの国の体質になっている。

しかし韓国人は民族の誇りから、このことを絶対に認めたくない。だから日本時代に行われた徴兵や徴用にしても、みな自分たちの意に反した「強制連行」だったと主張したがるのである。




「韓国は日本人がつくった」

 

黄文雄著 より

 19世紀から20世紀初頭にかけての韓国は農村から都市ソウルまで、あらゆる地域においてきわめて不衛生な生活環境であった。

 今のハングル世代は常に韓国の山紫水明を誇りにし、韓国人はどこへ行っても生水が飲める世界でも珍しく水のきれいな国だと自慢している。しかし、日帝時代以前の韓国を見た外国人は、赤裸々に当時の実情を記録している。例えば、ダレ神父の「朝鮮事情」には、韓国の「水はまずく」、水が原因でかかる早老病をはじめ様々な、「水土病」について書いている。そんな朝鮮に、慈恵医院の管制が発布されたのは1909年のことであった。本格的に近代医学医療制度が導入されたのは、朝鮮総督府時代からである。総督府が設立した大韓医院は、やがて京城帝大(現在のソウル大学)付属病院となり、朝鮮半島の近代医学、医療発展の中心的存在となった。各開港都市と国境都市は1910年から厳しい防疫、検疫を実旋しており、疫病の浸入防止に取り組んでいた。

 コレラ、天然痘、ペストなどの大流行は1918年〜20年が最後となり、その後は乳児の死亡率が撃滅した。その後、地方の医療制度は清州、金州など順次各地で確立され、医師の養成と疫病の防止に全力が注がれた。さらに、150万円の下賜金から済生会がつくられ、李朝以来存続していた階級制度の廃止とともに、各道から市町村に至るまで医療設備が整備されていった。賎民も国民として、近代医療の恩恵を受けられ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

30年代に入ると、近代医療制度の確立と普及によって、中国大陸から来襲してくる疫病を完全に食い止められるようになっていた。飢饉による餓死と、疫病による大量の死亡者を出していた中国大陸とは、天国と地獄ほどの隔世の感を抱くほどであった。ことにインド、中国から朝鮮にわたって猛威を振っていたハンセン病には徹底して対処し、6000人以上収容できる小鹿島更正園は世界的に有名になった。



「日帝36年」はほかならぬ近代医学による衛生、環境の改善と疫病の撲滅によって朝鮮半島の生命保全、韓民族の繁栄に大きく貢献したのである。



대만인 「일제 시대의 한국인은 행복」

대만인이 본 한일합방 시대


한국인은 일본에 병합 되고 있었던 시대가 세계 제일 행복했다
「일본인은 매우 멋졌다」


양소추(대만인 여성) 저보다

 진 측인 일본이 있다 정도 경제적으로 풍부해지면, 이번은, 변상라는 말의 아래에서 강청빌려를 한다.이것 빠르게 자리의 방식입니다.중국이나 조선·한국은, 그것을 계속 쭉 하고 있습니다.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일본의 욕을 하고 있는 조선의 사람등을 보면, 나는 분노를 닮은 것을 느낍니다.불공평하다면.받았던 것에 대하고, 왜 고마워요라고 말하지 않는 것인지, 라고.


노랑 후미오(대만) 정론 2003년 6월호


일본의 과보호로 세계 제일 행복했던 20 세기의 조선 민족


 「한국 병합」이라고 해지는 것 본질은,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가 아니고, 일한의 합병이었다.전후의 한국인은 좋고, 일제의 식민지 약탈」을 강조해, 일본인도 조선에서는 대만 이상으로 가혹한 통치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기 쉽상이지만, 사실은 완전히 그 역이다.조선에서는 대만보다 지조가 싸고, 산미도 시세의 차이 제도가 놓쳐 지하자원의 경영도 중앙정부로부터의 보조로 유지되어 세출도 중앙에 의한 연평균 15~20퍼센트의 보충으로 유지되고 있었다.자본 투자도 대만 보다 조선이 컸다.

 그 때문에 20 세기 초두까지 분뇨 투성이로 세계 제일 불결한 도시라고 하고 있던 현서울 등, 아름다운 근대적인 거리에 변모해, 반도의 인구도 배증했다.보통 근대국가라면, 국민이 국방비를 조달하는 것이 의무이며 상식이지만, 한국인에게서는 일전이라도 징수하지 않는다고 하는 특별 대우였다.

 20 세기의 인류사에 대하고, 당시의 한국인(정도)만큼, 과보호를 받아 행복하게 살고 있던 민족은 없다.
 기근·역병이나 전란·혁명의 피해도, 자국민끼리의 한국 전쟁을 제외해서는, 이 나라의 사람들의 손해는 실로 작다.이와 같이 한국은, 일본에 의존하면서 성장한 국가인 것이다.전후의 코쿠사쿠의 성공, OECD의 가맹의 달성으로 해도, 일·미의 자본과 기술의 이전에 의지했기 때문에다.「제2의 국욕」이라고 해지는 97년말 이래의 금융 위기도, IMF의 관리하에 들어가는 것으로 국제적 지위를 지키고 있다.타력 본원, 일로 대일 의존이라고 하는 것이, 근대 이후의 이 나라의 체질이 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인은 민족의 자랑으로부터, 이것을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그러니까 일본 시대에 행해진 징병이나 징용으로 해도, 모두 스스로의 뜻에 반한 「강제 연행」이었다고 주장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한국은 일본인이 만들었다」

 

노랑 후미오저보다

 19 세기부터 20 세기 초두에 걸친 한국은 농촌에서 도시 서울까지, 모든 지역에 있어 극히 비위생적인 생활 환경이었다.

 지금의 한글 세대는 항상 한국의 산자수명을 자랑해로 해, 한국인은 어디에 가도 생수를 마실 수 있는 세계에서도 드물게 물의 깨끗한 나라라면 자랑하고 있다.그러나, 일제 시대 이전의 한국을 본 외국인은, 적나라하게 당시의 실정을 기록하고 있다.예를 들면, 다레 신부의 「조선 사정」에는, 한국의 「물은 맛이 없고」, 물이 원인으로 걸리는 겉늙음병을 시작해 님 들인, 「수토병」에 대해서 쓰고 있다.그런 조선에, 자혜의원의 관제가 발포된 것은 1909년의 일로였다.본격적으로 근대 의학 의료 제도가 도입된 것은, 조선 총독부 시대부터이다.총독부가 설립한 대한 의원은, 이윽고 경성 제국대학(현재의 서울 대학) 부속 병원이 되어, 한반도의 근대 의학, 의료 발전의 중심적 존재가 되었다.각 개항 도시와 국경도시는 1910년부터 어려운 방역, 검역을 실선 있어, 역병의 침수 방지에 임하고 있었다.

 콜레라, 천연두, 페스트등의 대유행은 1918년~20년이 최후가 되어, 그 다음은 유아의 사망률이 격멸 했다.그 후, 지방의 의료 제도는 청주, 금주등 차례차례 각지에서 확립되어 의사의 양성과 역표`a의 방지에 전력이 따라졌다.게다가 150만엔의 하사금으로부터 제생회가 만들어져 이조 이래 존속하고 있던 계급제도의 폐지와 함께, 각 도로부터 시읍면에 이르기까지 의료 설비가 정비되고 갔다.천민도 국민으로서 근대 의료의 혜택을 받게 되게 되었던 것이다.

30년대에 들어오면, 근대 의료 제도의 확립과 보급에 의해서, 중국 대륙으로부터 와 습 하고 오는 역병을 완전하게 막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기근에 의한 아사와 역병에 의한 대량의 사망자를 내고 있던 중국 대륙이란, 천국과 지옥 정도의 격세지감을 안는 만큼에서 만났다.일로 인도, 중국으로부터 조선에 걸쳐서 맹위를 털고 있던 문둥병에는 철저하게 대처해, 6000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오가시마 경정원은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일제 36년」은 다름 아닌 근대 의학에 의한 위생, 환경의 개선과 역병의 박멸에 의해서 한반도의 생명 보전, 한민족의 번영에 크게 공헌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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