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記事入力 : 2024/08/18 11:35

                 北朝鮮と日本の「合作犯罪」在日朝鮮人帰還事業【萬物相】



          

                   当時は、日本の客船よりも立派なんだよな。



 京都府で生まれた在日2世の17歳の少女は1960年4月、新潟から清津に向かう「帰還船」に一人で乗り込んだ。「北朝鮮は地上の楽園、無料で勉強できる」という朝鮮総連の教師らの言葉を信じ、帰還事業で北朝鮮に渡ることを決心した。引き留める父親の言葉は耳に入らなかった。日本で差別の中で生きるよりも、「平等で発展した」北朝鮮で堂々と生きたかった。




 清津に到着した少女は、数千人の歓迎の人波に胸が熱くなった。船が港に近付くと、1年早く北朝鮮に来ていた先輩の姿が見えた。ところが先輩は、ふ頭から日本語で「日本へ戻れ」と絶叫していた。わけが分からなかった。船が着岸して歓迎の人波の様子が細かく見えてくると、少女は驚かずにはいられなかった。人々の様子は、物乞いの群れのようだったのだ。北朝鮮の実情を知った少女は、わずか2カ月後には自殺しようとしたが、そうすることもできなかった。1年後、北朝鮮で合流するという家族を押しとどめ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先に自殺した人が「かます」で巻かれて捨てられているのを見て、死ぬことを思いとどまった。北朝鮮は、自殺した在日朝鮮人を反逆者として追及した。彼女は2003年に脱北した。地獄のような時代が忌まわしくて、北朝鮮名を捨てて「川崎栄子」という日本名で暮らしている。




 日帝の敗亡後、日本の左派は北朝鮮を「理想社会」と称賛した。日本メディアは在日朝鮮人の帰還事業について好意的な記事を量産した。読売、朝日新聞の当時の1面記事は「帰還船、希望を載せて新潟から清津へ出発」だった。東京大学で学生運動をしていた小川晴久さん=現・東京大学名誉教授=も、当時、社会主義のため北朝鮮帰還を選んだ朝鮮人に感動したという。小川さんは、北朝鮮帰還事業の惨状を知った後、現在まで北朝鮮人権運動を行いながら贖罪を続けている。


 1959年から84年にかけて、9万3340人が帰還船に乗った。この反人倫犯罪の共犯は、北朝鮮と日本だ。北朝鮮は金日成(キム・イルソン)体制を宣伝し、不足している労働力を補うために帰還事業が必要だった。在日朝鮮人を蔑視し、差別していた日本政府と社会にとって、朝鮮人の帰還事業は渡りに船だった。北朝鮮と日本の利害関係が一致したのだ。国交がなかった北朝鮮と日本の当局に代わって、双方の赤十字が協定を結んだ。地獄に向かう道は人道主義で舗装された。


 韓国の過去史委員会が、在日朝鮮人帰還事業(北送事件)を「北朝鮮と朝鮮総連による人権じゅうりん」と公式に規定した。過去史委は「一次的な責任は北朝鮮と朝鮮総連にある」としつつも「当時、日本政府と日本赤十字社は実体を確認し得たが、意図的に事業を継続して人権侵害を容認した」と指摘した。金氏王朝の罪悪に口をつぐんでいる韓国の学生運動出身層が、過去史委の今回の発表について何と言うのか、気になる。


鄭佑相(チョン・ウサン)記者

https://www.chosunonline.com/site/data/html_dir/2024/08/12/20240812800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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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く一方的で、これもナンセンスな話だ。


開始当時の在日朝鮮人帰還事業は、日本に裁量権は無いに等しかったと思うね。

「戦犯国日本は韓国・朝鮮の言う事を聞けば良い」「日本は要求通りに用意して決して一切口を出すな」というものではなかったか?

韓国・朝鮮帰国に熱狂していた朝鮮人に、「実態は良くないから帰還を止めなさい。韓国に行きなさい」と日本が口を出せたとでも?

暴動が起きるぞ。



>「当時、日本政府と日本赤十字社は実体を確認し得たが、意図的に事業を継続して人権侵害を容認した」と指摘した。

>北朝鮮と日本の「合作犯罪」


これなど韓国の当事者・当事国としての責任感など皆無だ。

それなら韓国の犯罪でもある。



韓国はこの問題で何をした?? 韓国こそが敵対国北朝鮮に対し情報と実態を把握し主体的に事業への裁量を発揮できたのではないか?

なぜ黙っていた? 日本に確認なり要求などをした様子も無いし、朝鮮帰還阻止・韓国帰還変更キャンペーンなどを繰り広げた記録も無い。

今やってる反日の方が余程熱心なのに、薄情ではなかったのか?


ただ単に韓国帰還者事業だけで精一杯で何も知らなかった、というのであれば、今回のこの言い草は後から文句の難癖でしかない。


韓国の歴史認識・判断がこのようなものであるなら、日韓の歴史自体を身勝手な韓国の価値観から見直し、再検討せねばならない。


この帰還事業で、韓国は何処にいた? 何をやってたのだ?


韓国からの釈明を聞きたいものだ。



이것도 한국의 역사 인식의 유치함





기사 입력 : 2024/08/18 11:35

                 북한과 일본의 「합작 범죄」재일 한국인 귀환 사업【만그릇】



       

                   당시는, 일본의 여객선보다 훌륭해.



 쿄토부에서 태어난 재일 2세의 17세의 소녀는 1960년 4월, 니가타에서 기요쓰로 향하는 「귀환선」에 혼자서 탔다.「북한은 지상의 낙원, 무료로 공부할 수 있다」라고 하는 조총련의 교사등의 말을 믿어 귀환 사업으로 북한에 건너는 것을 결심했다.만류하는 부친의 말은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일본에서 차별의 안으로 사는 것보다도, 「평등하고 발전했다」북한에서 당당히 살고 싶었다.




 기요쓰에 도착한 소녀는, 수천인의 환영의 인파에게 가슴이 뜨거워졌다.배가 항구에 가까워지면, 1년 빨리 북한에 와있던 선배의 모습이 보였다.그런데 선배는, 부두로부터 일본어로 「일본에 돌아올 수 있다」라고 절규하고 있었다.나누어를 몰랐다.배가 착안해 환영의 인파의 님 아이가 세세하게 보여 오면, 소녀는 놀라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사람들의 님 아이는, 거지의 무리같았던 것이다.북한의 실정을 안 소녀는, 불과 2개월 후에는 자살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는 것도 할 수 없었다.1년 후, 북한에서 합류한다고 하는 가족을 말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먼저 자살한 사람이 「가마니」로 감겨져 버리기등?`독트 있는 것을 보고, 죽는 것을 단념했다.북한은, 자살한 재일 한국인을 반역자로서 추궁했다.그녀는 2003년에 탈북 했다.지옥과 같은 시대가 꺼림칙해서, 북한명을 버려 「카와사키 시게코」라고 하는 일본명으로 살고 있다.




 일제의 패망 후, 일본의 좌파는 북한을 「리소사회」라고 칭찬했다.일본 미디어는 재일 한국인의 귀환 사업에 대해 호의적인 기사를 양산했다.요미우리, 아사히 신문의 당시의 1면기사는 「귀환선, 희망을 실어 니가타에서 기요쓰에 출발」이었다.도쿄대학에서 학생 운동을 하고 있던 오가와 하루히사씨=현·도쿄대학 명예 교수=도, 당시 , 사회주의이기 때문에 북한 귀환을 선택한 한국인에 감동했다고 한다.오가와씨는, 북한 귀환 사업의 참상을 안 후, 현재까지 북한 인권 운동을 실시하면서 속죄를 계속하고 있다.


 1959년부터 84년에 걸치고, 9만 3340명이 귀환선을 탔다.이 반인륜 범죄의 공범은, 북한과 일본이다.북한은 김일성(김·일 손) 체제를 선전해,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귀환 사업이 필요했다.재일 한국인을 멸시 해, 차별하고 있던 일본 정부와 사회에 있어서, 한국인의 귀환 사업은 마침 운 좋게였다.북한과 일본의 이해관형`W가 일치했던 것이다.국교가 없었던 북한과 일본의 당국에 대신하고, 쌍방의 적십자가 협정을 체결했다.지옥으로 향하는 길은 인도주의로 포장되었다.


 한국의 과거사 위원회가, 재일 한국인 귀환 사업(북송 사건)을 「북한과 조총련에 의한 인권 유린」이라고 공식으로 규정했다.과거사위는 「일차적인 책임은 북한과 조총련에 있다」라고 하면서도 「당시 , 일본 정부와 일본 적십자사는 실체를 확인 할 수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사업을 계속해 인권침해를 용인했다」라고 지적했다.김씨 왕조의 죄악에 입을 다물고 있는 한국의 학생 운동 출신층이, 과거사위의 이번 발표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지, 신경이 쓰인다.


정우상(정·우산) 기자

https://www.chosunonline.com/site/data/html_dir/2024/08/12/20240812800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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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일방적으로, 이것도 넌센스인 이야기다.


개시 당시의 재일 한국인 귀환 사업은, 일본에 재량권은 없는 동일했다고 생각하는군.

「전범국 일본은 한국·조선이 말하는 일을 (들)물으면 좋다」 「일본은 요구 대로에 준비해 결코 일절 참견하지 말아라」라고 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한국·조선 귀국에 열광하고 있던 한국인에, 「실태는 좋지 않기 때문에 귀환을 멈추세요.한국에 가세요」라고 일본을 참견할 수 있었다고에서도?

폭동이 일어날거야.



>「당시 , 일본 정부와 일본 적십자사는 실체를 확인 할 수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사업을 계속해 인권침해를 용인했다」라고 지적했다.

>북한과 일본의 「합작 범죄」


이것 등 한국의 당사자·당사국으로서의 책임감 등 전무다.

그렇다면 한국의 범죄이기도 하다.



한국은 이 문제로 무엇을 했어? 한국이 적대 쿠니호쿠 조선에 대해 정보와 실태를 파악해 주체적으로 사업에의 재량을 발휘할 수 있던 것은 아닌가?

왜 입다물고 있었어? 일본에 확인이든지 요구등을 한 님 아이도 없고, 조선 귀환 저지·한국 귀환 변경 캠페인등을 펼친 기록도 없다.

지금 비치는 반일이 여정 열심인데, 몰인정하지 않았던 것일까?


단지 단지 한국 귀환자 사업만으로 힘껏으로 아무것도 몰랐다, 라고 한다면, 이번 이 말투는 나중에 불평의 트집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의 역사 인식·판단이 이러한 것이다면, 일한의 역사 자체를 제멋대로인 한국의 가치관으로부터 재검토해,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귀환 사업으로, 한국은 어디에 있었어? 무엇을 했었던 것이야?


한국으로부터의 해명을 듣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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