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麗 = 高句麗
東西古今を問わず戦争は直接戦争に参加しない周辺国にも少なくない影響を及ぼす.
新羅との戦争で敗れた高句麗流民の中でかなり多い数は中国と日本で散らばる.
ヤックグァンは高句麗の最後の王だった宝蔵王の息子で彼は高句麗滅亡後日本埼玉県に定着, 新しい高句麗を建立する. その所で高句麗人たちは鉄製技術, 紙製造技術, 高麗音楽などを日本人たちに伝える. 関東地域では無事集団を形成するのにこれは日本無事集団の始めでもある.
しかし数の上にもっと多い数の高句麗流民たちの移住した所は中国大陸だ. その中一人である里程期は山東半島に定着, 党が脅威を感じるに値する規模の王国を形成した.
■ 00:00 武蔵野の開拓者ヤックグァンと 1799人の高句麗人
■ 57:54 大陸の中の高句麗王国, 帝王里程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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ニッポン kunは
親である韓国から受けないことがないね
고려 = 고구려
<iframe width="912" height="513" src="https://www.youtube.com/embed/41RBXvBiVN4" title="1500년전의 한류? 일본의 고구려 무사와 중국의 고구려 왕국 (KBS_2010/2007.방송)" frameborder="0" allow="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 referrerpolicy="strict-origin-when-cross-origin" allowfullscreen></iframe>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은 직접 전쟁에 참여하지않은 주변국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끼친다.
신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고구려 유민 중 상당수는 중국과 일본으로 흩어진다.
약광은 고구려의 마지막 왕이었던 보장왕의 아들로 그는 고구려 멸망 후 일본 사이타마현에 정착, 새로운 고구려를 건립한다. 그곳에서 고구려인들은 철제기술, 종이제조기술, 고려 음악 등을 일본인들에게 전파한다. 관동지역에서는 무사집단을 형성하는데 이는 일본 무사집단의 시초이기도 하다.
하지만 숫적으로 훨씬 많은 수의 고구려 유민들이 이주한 곳은 중국 대륙이다. 그 중 한명인 이정기는 산둥반도에 정착, 당이 위협을 느낄만한 규모의 왕국을 형성하였다.
■ 00:00 무사시노의 개척자 약광과 1799인의 고구려인
■ 57:54 대륙 속의 고구려 왕국, 제왕 이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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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뻔 kun은
부모인 한국으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