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世宗大王は高位官僚たちが土地を攻撃的に買い入れながら 大地主になることを大きい問題距離(通り)で認識していた. 良人らと地域の言論が不満と憂慮の上訴をたくさんあげたと実録で記録していると言う.
そのすごい世宗大王もこの問題をどんなに解決す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 朝鮮初期に土地改革を通じて 良人に支給した土地は国家と王家の権威の象徴で税金はもちろん軍役などの基盤だからだった.
それで税金取り立て制度を改革してどの位牽制はしたが...
以後彼の孫である燕山君が廃位されながら税金制度は当時両班たちに有利な方式に変わった...
2. 白丁は元々 良人 男性のまた他の呼称だったし, 戦争虜と罪人などの賎民に対する社会的差別意識がとても極甚になると,
根本的には人本主義に根拠した性理学的価値に行き違うと判断して世宗大王が王命で彼らを 良人のまた他の呼称である白丁と呼ぶようにしたこと....
しかし歳月が経ちながら白丁はそのまま白丁の呼称になってしまったこと...
旧韓国末東学革命が失敗した原因を外勢の干渉のためだと言うが, 差別的な性理学の弊習を東学徒飛び越え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から東学は成功することができないとずっと根本的な原因を診断した士たちも当時にあった.
朝鮮中期以後朝鮮を衰退させて結局滅びるようにしたそのうんざりする問題が実は朝鮮の全盛期という世宗-成宗の治世時代に現われ始めたこと....
そしてその問題を乗り越えればこそ朝鮮の未来があるという認識が旧韓国末当時まじめな士たちはもう分かっていたということ....
朝鮮の歴史は多方面に切ない...
1. 세종대왕은 고위관료들이 토지를 공격적으로 매입하면서 大地主가 되는 것을 큰 문제거리로 인식하고 있었다. 良人들과 지역의 언론이 불만과 우려의 상소를 많이 올렸다고 실록에서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그 대단한 세종대왕께서도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지는 못했다. 조선 초기에 토지개혁을 통해 良人에 지급한 토지는 국가와 왕가의 권위의 상징이고 세금은 물론 군역 등의 기반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세금징수 제도를 개혁해서 어느 정도 견제는 했지만...
이후 그의 손자인 연산군이 폐위되면서 세금 제도는 당시 양반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바뀌었다...
2. 백정은 원래 良人 남성의 또 다른 호칭이었고, 전쟁포로와 죄인 등의 천민에 대한 사회적 차별의식이 너무 극심해지자,
근본적으로는 인본주의에 근거한 성리학적 가치에 어긋난다고 판단하고 세종대왕이 왕명으로 그들을 良人의 또 다른 호칭인 백정으로 부르게 한것....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백정은 그냥 백정의 호칭이 되어 버린 것...
구한말 동학혁명이 실패한 원인을 외세의 간섭 때문이라고 하지만, 차별적인 성리학의 폐습을 동학도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에 동학은 성공할 수 없다고 훨씬 더 근본적인 원인을 진단한 선비들도 당시에 있었다.
조선 중기이후 조선을 쇠퇴시키고 결국 망하게 했던 그 지긋지긋한 문제들이 실은 조선의 전성기라는 세종-성종의 치세 시대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
그리고 그 문제를 극복해야만 조선의 미래가 있다는 인식이 구한말 당시 성실한 선비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
조선의 역사는 여러모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