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国は何故、新幹線を導入しなかったのか?
KTX
KTXは1980年代末の盧泰愚政権時代に計画され、金泳三政権時代の1994年、フランスの高速鉄道TGVと契約、2004年に部分開通した。
10年もかかった理由のひとつに10kmのトンネルを掘らないといけなかったという報道があった。
日本では青函トンネル56km、一戸トンネル25kmと沢山トンネルがある。というよりも、東海道新幹線(東京-新大阪)以外は路線の半分以上がトンネルである
国際入札の段階では、日本と似た平野の少ない韓国の地形や、それまで100年以上の間の韓国の鉄道は全て日本システムであった事など、日本が最有力候補であった。
しかし、特に韓国では他のアジアとは違い、反日感情が高かったため新幹線を韓国国内で走らせる事に対しての風当たりが強かったという。
その反日感情を肌で感じた日本側の担当者は、韓国側から要求が出されても、徐々に腰が引けた対応になっていき、「侵略」「反省」「謝罪」などを口々に日本に叫びながら、高飛車に技術移転などの受け入れにくい条件を要求してくる韓国側の態度を見るにつけ、「韓国には導入しない方が良いのではないか?」「もし故障でも起きた場合に日本が相手だと、大変な事になるのではないか?」という「反日感情への過剰な気遣い」も多くなった。また、「ソウル地下鉄問題」の再燃を日本政府が恐れたという面も有った。
ソウル地下鉄の1号線は円借款によって建設され、1号線用の車両も日本の商社連合が落札していたが、この車両の輸出価格が水増しされ、その分が当時の韓国朴政権や日本の国会議員に渡ったのではないかという疑惑が1977年に浮上し、国会でも問題にされた。
その為、日本の消極的とも取れる対応に「日本は韓国に対して反省する立場のくせに生意気だ」と怒りを感じた韓国側は、いち早く日本を入札から脱落させるという「日本側に屈辱感を与えてやった」という処置で自尊心を満たした。
しかし、こんなに高飛車な態度で技術移転を迫る韓国と契約で悩んでいた日本側も内心ほっと安心したという。
もっとも、日本の新幹線が除外された1993年6月当時、韓国の貿易収支は全体では黒字でしたが、対日本では赤字つづきだった為、日本政府としては成り行きを傍観するだけで積極的に誘致に動きづらいという状況も有った。
2002年9月にはロテム製の第13編成が330km/hを記録している。 しかしトンネル進入時に前頭部へ想定外の圧力がかかっていることが判明するなど、 車輌と路線の相性に疑問を投げかける試運転結果も明らかになった。
この件の解消の為、2000年9月に日本政府に対して技術協力の以来があったが、日本は拒否している。
また、2004年列車を引く電力供給装置である「モーターブロック」の中の半導体素子(IGCT)が燃える現象があるなど、モーターブロックだけでも4個の欠陥が見つかった。
この時も新幹線技術を保有している日本の車両会社と運輸省に技術支援を要請したが、「協力を求められた日本企業の関係者は「TGVと新幹線は基本的な設計や概念が違うため、日本の技術が有効かどうか疑問だ」とし、支援に消極的な姿勢を見せていると朝鮮日報が報じている。
한국은 왜, 신간선을 도입하지 않았던 것일까?
KTX
10년이나 걸린 이유의 하나에 10 km의 터널을 파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하는 보도가 있었다.
일본에서는 세이칸 터널 56 km, 이치노헤 터널 25 km와 많이 터널이 있다.그렇다고 하는 것보다도, 토카이도 신간선(도쿄-신오사카) 이외는 노선의 반이상이 터널이다
국제 입찰의 단계에서는, 일본과 닮은 평야의 적은 한국의 지형이나, 그것까지 100년 이상의 사이의 한국의 철도는 모두 일본 시스템인 일 등, 일본이 최유력 후보였다.
그러나, 특히 한국에서는 다른 아시아와는 달라, 반일 감정이 비쌌기 때문에 신간선을 한국 국내에서 달리게 하는 일에 대해서의 비난이 강했다고 한다.
그 반일 감정을 피부로 느낀 일본측의 담당자는, 한국측으로부터 요구가 나와도, 서서히 허리가 파한 대응이 되어서 가 「침략」 「반성」 「사죄」등을 각자가 일본에 외치면서, 고압적인 자세에 기술 이전등의 받아 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요구해 오는 한국측의 태도를 보니, 「한국에는 도입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닌가?」 「만약 고장이라도 일어났을 경우에 일본이 상대?`세와 대단한 일이 되는 것은 아닌가?」라고 하는 「반일 감정에의 과잉인 염려해」도 많아졌다.또, 「서울 지하철 문제」의 재연을 일본 정부가 무서워했다고 하는 면도 있었다.
서울 지하철의 1호선은 엔차관에 의해서 건설되어 1호선용의 차량도 일본의 상사 연합이 낙찰하고 있었지만, 이 차량의 수출가격이 증가되어 그 만큼이 당시의 한국박정권이나 일본의 국회 의원에게 건넌 것은 아닐것인가 라고 하는 의혹이 1977년으로 부상해, 국회에서도 문제로 되었다.
그 때문에, 일본의 소극적과도 잡히는 대응에 「일본은 한국에 대해서 반성하는 입장인 주제에 건방지다」라고 분노를 느낀 한국측은, 재빨리 일본을 입찰로부터 탈락시킨다고 하는 「일본 측에 굴욕감을 주었다」라고 하는 처치로 자존심을 채웠다.
그러나, 이렇게 고압적인 태도로 기술 이전을 강요하는 한국과 계약으로 고민하고 있던 일본측도 내심 마음 놓고 안심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일본의 신간선이 제외된 1993년 6월 당시 , 한국의 무역수지는 전체에서는 흑자였지만, 대일본에서는 적자나무였던 때문, 일본 정부로서는 형편을 방관하는 것만으로 적극적으로 유치에 움직이기 힘들다고 하는 상황도 있었다.
2002년 9월에는 로템제의 제13 편성이 330 km/h를 기록하고 있는 . 그러나 터널 진입시에 전두부에 상정외가 압력이 가해지고 있는 것이 판명되는 등, 차량과 노선의 궁합에 의문을 던지는 시운전 결과도 밝혀졌다.
이 건의 해소 (위해)때문에, 2000년 9월에 일본 정부에 대해서 기술 협력의 이래가 있었지만, 일본은 거부하고 있다.
또, 2004년 열차를 당기는 전력 공급 장치인 「모터 블록」안의 반도체소자(IGCT)가 불타는 현상이 있다 등, 모터 블록만으로도 4개의 결함이 발견되었다.
이 때도 신간선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의 차량 회사와 운수성에 기술 지원을 요청했지만,「협력이 구할 수 있던 일본 기업의 관계자는 「TGV와 신간선은 기본적인 설계나 개념이 다르기 위해, 일본의 기술이 유효할지 의문이다」라고 해, 지원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으면 조선일보가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