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貢を捧げて入朝しなければ征伐するという 隋の何回も脅迫にも高句麗は 隋に対立することに決心する.
598年, 高句麗の先制攻撃で始まった 1次高句麗-隋 戦争は高句麗の勝利で終わる.
1次戦争勝利後高句麗は, 対隋 包囲網を提案するために当時 隋に服属していた突厥に使臣を送る.
607年, 高句麗の計画を見抜いた 隋煬帝は激怒して 対隋 包囲網の主軸である高句麗を征伐すると宣言する.
自国史だけ学んだ日本人は分からないことだが,
以前まで数百年間中国の属国を自任して冊封を受けた大和が,
607年, 隋に使臣を送って 日出処天子, 日沒処天子と発言したことは,
高句麗に敗れて, 突厥が離脱しながら権威が墜落した 隋に対して,
高句麗の後に隠れて虚勢を張ったのだ.
当時大和の支配層エルリトがそこまで遇鈍であほうな馬鹿ではないから,
大和がこの間まで中国の冊封を受けた国で, 隋,高句麗,突厥のような強大国ではないというの位は分かっていたはずだ.
嘘が比較的少なくて, 直観的な韓国と中国の歴史書と違うように, 大大的な捏造作業になっている日本の古代歴史書を見る時はもろもろ他の情況たちを代入して事実に近く類推する事を経って見なければならない.
大和は以後 唐の時代までも高句麗と連携して中国に対抗していたことを見れば,
中国との関係を排除しても中国とほとんど対等な文物水準だった高句麗との新しい友好だけで満足することができると思ったようだ.
日本はあの時までは 高麗尺 など, 高句麗式制度と文物を使った.
조공을 바치고 입조하지 않으면 정벌하겠다는 隋의 여러차례 협박에도 고구려는 隋에 맞서기로 결심한다.
598년, 고구려의 선제 공격으로 시작된 1차 고구려-隋 전쟁은 고구려의 승리로 끝난다.
1차 전쟁 승리 후 고구려는, 對隋 포위망을 제안하기 위해 당시 隋에 복속하고 있었던 돌궐에 사신을 보낸다.
607년, 고구려의 계획을 알아차린 隋煬帝는 격노하여 對隋 포위망의 주축인 고구려를 정벌하겠다고 선언한다.
자국사만 배운 일본인은 모르는 것이겠지만,
이전까지 수백년간 중국의 속국을 자처하고 책봉을 받던 야마토가,
607년, 隋에 사신을 보내 日出處天子, 日沒處天子라고 발언했던 것은,
고구려에 패하고, 돌궐이 이탈하면서 권위가 추락한 隋에 대해,
고구려의 뒤에 숨어서 허세를 부렸던 것이다.
당시 야마토의 지배층 앨리트가 거기까지 우둔하고 멍청한 바보는 아니기 때문에,
야마토가 얼마전까지 중국의 책봉을 받던 나라이고, 隋,고구려,돌궐과 같은 강대국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거짓말이 비교적 적고, 직관적인 한국과 중국의 역사서와 다르게, 대대적인 날조 작업이 되어 있는 일본의 고대 역사서를 볼 때는 여러가지 다른 정황들을 대입하여 사실에 가깝게 유추하는 일을 거쳐서 봐야 한다.
야마토는 이후 唐의 시대까지도 고구려와 연계해 중국에 대항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중국과의 관계를 배제해도 중국과 거의 대등한 문물 수준이었던 고구려와의 새로운 우호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일본은 그때까지는 高麗尺 등, 고구려식 제도와 문물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