私が大好きな将軍は第14代将軍家茂
家茂は紀州藩主の息子として生まれるが生まれる12日前に父斉順(なりゆき)が亡くなったので
父の跡を継いで藩主となった叔父の養子になる。
ところがその叔父も早くに亡くなってしまい家茂はわずか4歳で紀州藩主となった。
家茂が13歳の時、第13代将軍家定が亡くなり家茂は跡を継いで第14代将軍となる。
この家茂には心温まるエピソードがたくさんある。
一々出典を調べると時間がかかるので記憶で書く。なので鳥の名前とか細かいところがあいまい。
まず大変な動物好き。
藩主と言えど子供なので儀式の間じっと座っていることができない。
困った家臣は一計を案じて庭の池につるを放った。
動物大好きな家茂はそれをじっと見つめて大人しくしていたそう。
後、献上品で虫かごに入った鈴虫(?)をもらった家茂は大喜び。
「気に入った。後100ほど持ってまいれ」
と命令したとか。
それをおつきのものに注意されて
「わがままだった。ごめんなさい」
と謝った。
元服(これをすると大人になったとみなされる)のために
江戸城に向かった家茂。泣き虫だった家茂を気遣って乳母が
今日はあなた様の大切な日ですから泣いてはいけませんよ。
と言ったのに初めて会う将軍たちに会ってギャン泣き。
家に帰ってから乳母に真っ先に駆け寄り
「今日は泣いちゃったの」
と告白した。その家茂のあまりのかわいさに誰も叱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そして将軍となってから家茂は家臣たちの武道の訓練を視察することになった。
将軍がお越しとあって普段よりも張り切る臣下たち。
ところが勢い余って一人の武士が家茂の手を思いきり踏んでしまった。
「申し訳ありません」とひれ伏す臣下。
それに家茂は一言
「大事ない」
と答えた。
安心して顔を上げた臣下は家茂の目に涙がいっぱいたまっているのを見つける。
そう。ここで自分が騒いだら家来が罰を受けるので家茂は痛みを必死にこらえ
大事ないと言ったのだ。家来は感謝でひれ伏し泣いてしまったという。
家茂は書の達人である戸川安清(やすずみ)に書道を習っていた。
ところがある日、家茂は頭から安清に水をかけた。
そして
「続きはまた明日」
と言って去っていった。
見ると安清は泣いている。
「どうしたのですか?」
と驚き心配してかけよる臣下たち。
実は高齢だった安清はお漏らしをしてしまった。
将軍の前でおしっこを漏らすのは大失態だ。
それを恥じて安清が切腹しないように家茂は水をかけてシミを目立たなくした。
そして「続きは明日」と言って命を絶ってはならないと命じたのである。
ナポレオン三世
当時、フランスで蚕が大量死したと聞いて
「蚕がなければ庶民も国王も困るだろう」
と言って蚕をフランスに送って喜ばれた。
このような関係があったので幕末の動乱期にフランスは徳川幕府を応援したのである。
このようないい人エピソードはまだあるが家茂はわずか21歳で亡くなった。
死の直前、「私は将軍として何もできなかった」
と家茂は後悔の涙を流したと言う。
だが歴史を知る者にとってはそうではない。
彼は優しい心で妻となった孝明天皇の妹和宮を愛したため
夫亡き後、和宮は愛する夫の徳川家を守ろうと奮闘するのだ。
明治維新は奇跡と言われる。
普通なら内戦になって多くの命が失われたはずがほとんど戦争らしい戦闘もなく
スムーズに政権が交代された。
もし当時世界最大の人口を誇った江戸で戦闘が行われていたら多くの一般市民も
巻き込まれてしまったに違いない。
そうならなかったのはひとえに夫を愛した第13代、第14代将軍の妻たちが
力を合わせて平和な政権交代を訴えたからだ。
和宮は京都に帰ってこいと言う兄に対して
「まことにわが身を案じて下さり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でも徳川の臣下たちがまだ箱根についていません。
彼らが箱根につかない内は私はここを動きません」
と言い、
徳川の臣下たちに対しては
「けして戦ってはなりません。抵抗しなければ殺さ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戦えばあなたたちが守ろうとする
徳川家を滅ぼすことになります」
と説得していた。そして和宮は最後の江戸城明け渡しまで江戸城に残り臣下を守った。
第13代将軍御台所、篤姫も負けていない。
西郷隆盛に7メートルにも及ぶ手紙を書いて
忠誠心厚い隆盛に主君島津斉彬が平和を願っていたと説得する。
島津斉彬は西郷隆盛を取り立ててくれた恩ある主君である。
隆盛は主君の言葉を出されては戦いに踏み切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
こうしてさまざまな交渉の後、西郷隆盛と勝海舟は江戸城で会談し無血開城となった。
西郷隆盛
勝海舟
この時、女性たちだけが平和を望んだのではないと思う。
だが彼女たちの存在が平和を強く推し進めたのは間違いない。
その彼女たちの原動力は夫への愛だった。
言い換えれば夫の深い愛情が残された妻たちに徳川家を守らなければと
思わせたのである。
家茂のような立場でなくても自分は何者でもない、
何もできなかった
と失望することはたくさんある。
だけど自分のした小さな行いがもしかしたら大きなことになって帰ってくるかもしれない。
誰かを助けたり
誰かの心を明るくしたり
何が起こるか分かっているのは神様ただお一人だ。
나를 아주 좋아하는 장군은 제14 대장군가무
가 무는 기슈 지방 영주의 아들로서 태어나지만 태어나는 12일전에 부제순(형편)이 죽었으므로
아버지가 뒤를 이어 지방 영주가 된 숙부의 양자가 된다.
그런데 그 숙부도 빨리에 죽어 끝집무는 불과 4세에 기슈 지방 영주가 되었다.
가 무가 13세 때, 제13 대장군가정이 죽어 가 무는 뒤를 이어 제14 대장군이 된다.
이 가 무에는 마음 따뜻해지는 에피소드가 많이 있다.
하나 하나 출전을 조사하면 시간이 걸리므로 기억으로 쓴다.그래서 새의 이름이라든지 세세한 곳이 애매.
우선 대단한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
지방 영주와 말네아이이므로 의식의 사이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다.
곤란한 가신은 한 계책을 궁리해 뜰의 연못에 학을 풀어 놓았다.
동물 정말 좋아하는 가 무는 그것을 가만히 응시해 얌전하게 하고 있던 그렇게.
후, 헌상품으로 벌레나 에 들어간 방울 벌레(?)(을)를 받은 가 무는 큰 기쁨.
「마음에 들었다.후 100(정도)만큼 가지고 갈 수 있다」
라고 명령했다든가.
그것을 수행원의 것에 주의받아
「멋대로였다.미안해요」
라고 사과했다.
원복(이것을 하면 어른이 되었다고 보인다)을 위해서
에도성으로 향한 가 무.울보였던 가 무를 염려해 유모가
오늘은 귀하의 중요한 날이기 때문에 울어서는 안되요.
이렇게 말했는데 처음으로 회?`, 장군들을 만나 개 울음.
집에 돌아가고 나서 유모에 맨 먼저에 달려 와
「오늘은 울어 버렸어」
라고 고백했다.그 가 무의 너무나 귀여워서 아무도 꾸짖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장군이 되고 나서 가 무는 가신들의 무도의 훈련을 시찰하게 되었다.
장군이 행차답게 평상시보다 의욕에 넘치는 신하들.
그런데 기세가 지나쳐서 한 명 무사가 가 무의 손을 마음껏 밟아 버렸다.
「죄송합니다」라고 엎드리는 신하.
거기에 가 무는 한마디
「소중한 있어」
라고 대답했다.
안심하고 얼굴을 올린 신하는 가 무의 눈에 눈물이 가득 쌓여 있는 것을 찾아낸다.
그래.여기서 자신이 떠들면 하인이 벌을 받으므로 가 무는 아픔을 필사적으로 참아
소중한 실 말했던 것이다.하인은 감사 나와 따라 울어 버렸다고 한다.
가 무는 책의 달인인 토카와 야스쿄(나 바람을 쐼)에 서도를 배우고 있었다.
그런데 있다 일, 가 무는 머리로부터 야스쿄에 물을 걸었다.
그리고
「다음은 또 내일」
이라고 말해 사라지고 갔다.
보면 야스쿄는 울고 있다.
「왜입니까?」
(와)과 놀라움 걱정해 내기 밤신하들.
실은 고령이었던 야스쿄는 루등 해를 해 버렸다.
장군의 앞에서 소변을 흘리는 것은 대실태다.
그것을 부끄러워해 야스쿄가 할복 자살하지 않게 가 무는 물을 끼얹고 얼룩을 눈에 띄어 없앴다.
그리고 「다음은 내일」이라고 하고 생명을 끊어서는 안 되면 명했던 것이다.
나폴레옹 3세
당시 , 프랑스에서 누에가 떼죽음 했다고 (들)물어
「누에가 없으면 서민이나 국왕도 곤란할 것이다」
라고 해 누에를 프랑스에 보내 환영받았다.
이러한 관계가 있었으므로 에도막부 말기의 동란기에 프랑스는 토쿠가와막부를 응원했던 것이다.
이러한 좋은 사람 에피소드는 아직 있다가 가 무는 불과 21세에 죽었다.
죽음의 직전, 「 나는 장군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와 가 무는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하지만 역사를 아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그는 상냥한 마음으로 아내가 된 타카아키 천황의 여동생 가즈노미야를 사랑했기 때문에
남편 사후, 가즈노미야는 사랑하는 남편 토쿠가와가를 지키려고 분투한다.
메이지 유신은 기적이라고 말해진다.
보통이라면 내전이 되어 많은 생명이 없어졌을 것이 거의 전쟁한 것같은 전투도 없고
부드럽게 정권이 교대되었다.
만약 당시 세계 최대의 인구를 자랑한 에도에서 전투를 하고 있으면 많은 일반 시민도
말려 들어가 버린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되지 않았던 것은 전적으로 남편을 사랑한 제13대, 제14 대장군의 아내들이
힘을 합해 평화로운 정권 교대를 호소했기 때문이다.
가즈노미야는 쿄토에 돌아오라고 하는 형(오빠)에 대해서
「정말로 내몸을 염려해 주셔 감사합니다.그렇지만 토쿠가와의 신하들이 아직 하코네에 도착해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코네에 도착하지 않는 동안은 나는 여기를 움직이지 않습니다」
라고 말해,
토쿠가와의 신하들에 대해서는
「지워 싸우고는 되지 않습니다.저항하지 않으면 살해당할 것은 없습니다.싸우면 당신들이 지키려고 하는
토쿠가와가를 멸하는 것에」
라고 설득하고 있었다.그리고 가즈노미야는 마지막 에도성명도까지 에도성에 남아 신하를 지켰다.
제13 대장군부엌, 아츠시 공주도 지지 않았다.
사이고 다카모리에게 7미터에 달하는 편지를 써
충성심 두꺼운 융성에 주군시마즈 나리아키라가 평화를 바라고 있었다고 설득한다.
시마즈 나리아키라는 사이고 다카모리를 등용해 준 은혜 있다 주군이다.
융성은 주군의 말을 나오고는 싸워를 단행할 수 없었다.
이렇게 해 다양한 교섭의 뒤, 사이고 다카모리와 카츠 가이슈는 에도성에서 회담해 무혈 개성이 되었다.
사이고 다카모리
카츠 가이슈
이 때, 여성들만이 헤이와를 바라본 것은 아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들의 존재가 평화를 강하게 추진한 것은 틀림없다.
그 그녀들의 원동력은 남편에게의 사랑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남편의 깊은 애정이 남겨진 아내들에게 토쿠가와가를 지키지 않으면이라고
생각하게 했던 것이다.
가 무와 같은 입장이 아니어도 자신은 누구도 아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와 실망하는 것은 많이 있다.
그렇지만 자신이 한 작은 행동이 혹시 큰 것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돕거나
누군가의 마음을 밝게 하거나
무엇이 일어날까 알고 있는 것은 신다만 한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