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戸時代の税制は五公五民と言われて税率が50%とされているけど
その税金の基礎台帳となったものは江戸時代に入る前の太閤検地だったと聞いている。
もしかしたら江戸時代初期にも検地があったかもしれないがそこらへんは忘れた。
そして検地後、その台帳は更新されなかった。
つまりそれから土地を開拓したり農業技術が進展して収穫量が増えても増収分には税金がかからなかったので
実質負担はもっと軽かったという。
封建時代でもあり農民の税金は重かったと思うが江戸の町民たちは月に数日働けば暮らしていけたらしいので
農村から江戸に流れていくものも多かったらしい。
だから町民たちはあまり税金がない。
大病しなければ貧しいが気楽な生活。
そしてご存じの通り江戸幕府は明治政府に敗れて
新たに日本は近代化の道を進んだ。
そして税制も改革されたと思うがその改革の中身は学校で習わなかったので知らない。
ただ歴史は勝者が作る。
だから江戸時代を懐かしんで話す者は逮捕された。
そうして江戸時代は明治政府によって不当にゆがめられてしまった。
最近、江戸時代は思っているより
自由だったという研究者も出てきているが
しみついた江戸時代のイメージを大きく変えるまでには至ってない。
こんなエピソードがある。
お殿様の食事をある臣下が我慢できずに食べてしまい
お殿様が来た時、慌てて逃げて行った。
それを見ても殿様は何も言わず臣下の食べ残した食事を食べた。
その臣下は罰を受けずむしろかわいがられて昇進した。
日ごろまじめでお殿様と良い関係だったのは前提だけど
色々とゆるかったんですね。
私的には日本で最も税負担が重かったのは明治だと思う。
国が急激な近代化を進め今まで侍だけの義務だった国防が庶民の肩にのしかかったから。
彼らが農村にとって貴重な働き手であったことを思うと兵役は重税だった。
そして産業の振興を急いで経済を活発化したとはいえ軍備増強や植民地経営の負担。
(日本は西洋とは違って開発援助型の植民地経営だから日本の税金をいっぱい投入した)
でもいまだに教科書で明治時代の税制は語らないんだよね。
에도시대의 세제는 오공 오민이라고 해져 세율이 50%로 되어 있지만
그 세금의 기초 대장이 된 것은 에도시대에 들어가기 전의 태합 검지였다고 (듣)묻고 있다.
혹시 에도시대 초기에도 측량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정도에 는 잊었다.
그리고 측량 후, 그 대장은 갱신되지 않았다.
즉 그리고 토지를 개척하거나 농업기술이 진전해 수확량이 증가해도 증수분에는 세금이 붙지 않았기 때문에
실질 부담은 더 가벼웠다고 한다.
봉건 시대이기도 해 농민의 세금은 무거웠다고 생각하지만 에도의 읍민들은 달에 몇일 일하면 살아서 갈 수 있던 것 같기 때문에
농촌으로부터 에도로 흘러 가는 것도 많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읍민들은 별로 세금이 없다.
중병 하지 않으면 궁핍하지만 마음 편한 생활.
그리고 아시는 바대로 에도 막부는 메이지 정부에 져
새롭게 일본은 근대화의 길로 나아갔다.
그리고 세제도 개혁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개혁의 내용은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모른다.
단지 역사는 승자가 만든다.
그러니까 에도시대를 그리워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체포되었다.
그렇게 해서 에도시대는 메이지 정부에 의해서 부당하게 왜곡할 수 있어 버렸다.
최근, 에도시대는 생각하는 것보다
자유로웠다고 말하는 연구자도 나와 있지만
배어든 에도시대의 이미지를 크게 바꾸기까지는 도달하지 않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영주의 식사를 있다 신하가 참지 못하고 먹어 버려
영주가 왔을 때, 당황해서 도망쳐 갔다.
그것을 봐도 영주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신하가 먹다가 남긴 식사를 먹었다.
그 신하는 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귀여워해져 승진했다.
평소 성실하고 영주와 좋은 관계였던 것은 전제이지만
다양하게 느슨했지요.
사적으로는 일본에서 가장 세부담이 무거웠던 것은 메이지라고 생각한다.
나라가 급격한 근대화를 진행시켜 지금까지 사무라이만의 의무였던 국방이 서민의 어깨에 덮쳤기 때문에.
그들이 농촌에 있어서 귀중한 일꾼인 것을 생각하면 병역은 중세였다.
그리고 산업의 진흥을 서둘러 경제를 활발해졌다고는 해도 군비 증강이나 식민지 경영의 부담.
(일본은 서양과는 달라 개발 원조형의 식민지 경영이니까 일본의 세금을 가득 투입했다)
그렇지만 아직껏 교과서로 메이지 시대의 세제는 말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