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は 隋に 日出天子日沒天子と言った !
日本の歴史は自主的で 隋に劣らないほどに偉い国だった ! 古代東アジアの G2だった !
と妄想する日本人がいるようだが,
(日本は, この間まで数百年間中国に自国民を朝貢しながら冊封を受けていた.)
607年頃当時の大和最大の建築物と当時に建設された周辺国の建築物参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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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時代の新羅(左側)と大和(右側)
同時代の 隋(左側)と大和(右側)
607年頃当時は 隋が高句麗に敗れて, 隋の権威が墜落して, 元々 隋に服属していた突厥が離脱して, 高句麗と同盟を結ぼうと思いながら状況が 隋に不利に帰った時期だった.
日本人の妄想みたいなのではなくて大和という国は, 弱小国だったがただ高句麗の後に隠れて 隋に虚勢を張ったことだけだった.
일본은 隋에게 日出天子日沒天子라고 말했다 !
일본의 역사는 자주적이고 隋에 버금갈 정도로 위대한 나라였다 ! 고대 동아시아의 G2였다 !
라고 망상하는 일본인이 있는 것 같지만,
(일본은, 얼마 전까지 수백년간 중국에 자국민을 조공하면서 책봉을 받고 있었다.)
607년경 당시의 야마토 최대의 건축물과 당시에 건설된 주변국의 건축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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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의 신라(좌측)와 야마토(우측)
동시대의 隋(좌측)와 야마토(우측)
607년경 당시는 隋가 고구려에게 패해, 隋의 권위가 추락하여, 원래 隋에게 복속하고 있던 돌궐이 이탈해, 고구려와 동맹을 맺으려고 하면서 상황이 隋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던 시기였다.
일본인의 망상 같은 것은 아니고 야마토라는 나라는, 약소국이었지만 그저 고구려의 뒤에 숨어서 隋에게 허세를 부렸던 것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