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で食べるのが” 重要な日本…それでも “光良いまんしゅうあんず”はいやな韓国 [同じ日本, 他の日本]
入力2024.06.01. 午前 4:30 記事原文
[同じ日本, 他の日本] <114>
韓国のようなように他の, 日本の美意識
編集者注
私たちには近いが遠い国日本. 一週間おき土曜日連載される ‘同じ日本, 他の日本’はメディア人類学者金硬化博士が多様な視覚で日本の現住所を察してみる企画物です.
韓国の美意識は自然な本質を重視する一方, 日本の美意識は人為的な努力と真心を高く評価する. どっちがもっと優越だと評価するのではないが, ‘美しさ’を認知する方式から韓日間差があるというのは明らかだ. イラスト金日英
◇ 韓日美意識の明らかな差
実は韓国の伝統的な美意識も自然との調和と素朴な美しさを追い求めるという点で, 日常の中の美的要素を重要視する日本の美意識と一脈相通ずる面がある. 例えば, ‘見た目がよい餠が食べやすい’と言う国語諺のように韓食でも清潔に食べ物を出す美的感覚を重視する. 和食位粘っこくて緻密ではないかも知れなくても, 韓食でも食べ物の視覚的美しさが重要な要素で思われる.
しかし 韓国には ‘光良いまんしゅうあんず’, ‘見掛け倒し’という諺もある. 見掛にうまそうでも実際ではまずい食べ物を意味するこの表現は, やっぱり韓国の食文化では味が美的要素を取り替えることができない重要な基準なのを見せてくれる. 一方, 日本の食文化では視覚的楽しさが味覚位重要な役目をする. 伝統デザートである ‘お菓子(和菓子)’のように見掛けは形形色色派手だがいざ味は単調で水くさい食べ物もある. このように韓日間美的価値観には明らかな差がある. 韓国の美意識は自然な本質を重視する一方, 日本の美意識は人為的な努力と真心を高く評価する. どっちがもっと優越だと評価するのではないが, ‘美しさ’を認知する方式から韓日間差があるというのは明らかだ.
一つおもしろい事例がある. 十余年前に韓国特派員で勤めた日本人知人から韓国の市場で ‘醜い’ 野菜が商品で出ていることを見てびっくりしたという話を聞いた. 日本のスーパーマーケットではとてもこぎれいに手入れされた ‘ハンサムな’ 野菜と果物だけ陳列台に上げられる. それで韓国の市場では土がついた野菜やきずある果物が堂堂と陳列した風景が不慣れだったみたいだ. 実は私の目には土がちょっとつくとか虫食った野菜と果物がもっと生き生きしく見える. 地で自然に育ったし農薬を減らす使ったように見えるからだ. 等しい事物でもどんな人には ‘醜く’ 見えてどんな人には ‘生き生きしく’ 見える. 対象を認知する方式の文化的差によって意図しない誤解がもたらしたりする. 結局美しさと言う(のは)実に主観的な感覚だ.
金硬化メディア人類学者
"눈으로 먹는 게" 중요한 일본…그래도 "빛 좋은 개살구"는 싫은 한국 [같은 일본, 다른 일본]
입력2024.06.01. 오전 4:30 기사원문
[같은 일본, 다른 일본] <114>
한국과 같은 듯 다른, 일본의 미의식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한국의 미의식은 자연스러운 본질을 중시하는 반면, 일본의 미의식은 인위적인 노력과 정성을 높이 평가한다. 어느 쪽이 더 우월하다고 평가할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움’을 인지하는 방식에서 한일 간 차이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일러스트 김일영
◇ 한일 미의식의 뚜렷한 차이
사실 한국의 전통적인 미의식도 자연과의 조화와 소박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상 속의 미적 요소를 중요시하는 일본의 미의식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예를 들어, ‘보기에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우리말 속담처럼 한식에서도 정갈하게 음식을 내는 미적 감각을 중시한다. 일식만큼 깐깐하고 치밀하지 않을지 몰라도, 한식에서도 음식의 시각적 아름다움이 중요한 요소로 여겨진다.
그러나 한국에는 ‘빛 좋은 개살구’, ‘속 빈 강정’이라는 속담도 있다. 겉보기에 먹음직스러워도 실제로는 맛이 없는 먹을거리를 뜻하는 이 표현은, 역시 한국의 식문화에서는 맛이 미적 요소를 대체할 수 없는 중요한 기준임을 보여준다. 반면, 일본의 식문화에서는 시각적 즐거움이 미각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통 디저트인 ‘와가시(和菓子)’처럼 외관은 형형색색 화려하지만 정작 맛은 단조롭고 싱거운 먹을거리도 있다. 이처럼 한일 간 미적 가치관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한국의 미의식은 자연스러운 본질을 중시하는 반면, 일본의 미의식은 인위적인 노력과 정성을 높이 평가한다. 어느 쪽이 더 우월하다고 평가할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움’을 인지하는 방식에서 한일 간 차이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십여 년 전에 한국 특파원으로 근무했던 일본인 지인으로부터 한국의 시장에서 ‘못생긴’ 채소가 상품으로 나와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의 슈퍼마켓에서는 아주 깔끔하게 손질된 ‘잘생긴’ 채소와 과일만 진열대에 올려진다. 그래서 한국의 시장에서는 흙이 묻은 채소나 흠 있는 과일이 버젓이 진열된 풍경이 낯설었던 모양이다. 사실 내 눈에는 흙이 좀 묻거나 벌레가 먹은 채소와 과일이 더 싱싱해 보인다. 땅에서 자연스럽게 자랐고 농약을 덜 사용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사물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못생기게’ 보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싱싱하게’ 보인다. 대상을 인지하는 방식의 문화적 차이로 인해 뜻하지 않은 오해가 빚어지기도 한다. 결국 아름다움이란 실로 주관적인 감각이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