異国の地で王になった徐福は
実は日本に来ていた!?
佐賀県の吉野ヶ里遺跡は、弥生時代の日本における国家形成期の「クニ」の全貌がわかる遺跡である。現在はほぼ全域が史跡公園となり、国の特別史跡に指定されている。
高さ十数メートルもある物見櫓(ものみやぐら)や祭殿の復元が有名だが、遅れて公開された北墳丘墓には歴代の吉野ヶ里の王が葬られている。個人的には、その初代は有名な伝説の人物ではないかと夢想している。
徐福という名を聞いたことがあるだろうか。秦の始皇帝の命令で不老不死の仙薬を探しに行った、という人物である。探検家のようなイメージをお持ちの方もいると思うが、そうではない。
漢代の史書「史記」によれば、徐福は「三千人を引き連れて渡海し、平原光沢を得て、王となって帰らなかった」とある。すなわち、大移民船団を率いた人物なのである。そして、その到着地は日本とされている。
史記の内容は「伝説・空想の類い」だという認識も多いと思う。しかし、著者である司馬遷が史記の執筆を始めたのが紀元前100年頃。徐福の出発は紀元前210年なので、110年しかたっていない。司馬遷は遠い昔ではなく、曽祖父あたりの世代の出来事を記したことになるため、一定の正確性はあるのではないか。
また、中国では徐福について「始皇帝をだまして資金を得た」「日本に永住して子孫は交易に来た」「日本人の祖先は徐福である」などという話も伝わっている。1981年には、中国・江蘇省で「徐福の生まれ故郷」との伝承を持つ村も見つかった。
ただし、中国での徐福の評判は、あくまで「秦の時代に大挙して海外移住を行い、うまく立ち回って資金を得た人物」というものが中心だ。「不老不死の薬を探しに行った人物」というのは、付け足しの話である。
実は「徐福がやってきた」という伝説が佐賀県にはある。
이국의 땅에서 왕이 된 조후쿠는
실은 일본에 와있었다!?
사가현의 요시노마을 유적은, 야요이 시대의 일본에 있어서의 국가 형성기의 「나라」의 전모를 알 수 있는 유적이다.현재는 거의 전역이 사적 공원이 되어, 나라의 특별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높이 수십 미터나 있는 구경노( 것 봐 망루)나 제전의 복원이 유명하지만, 늦어 공개된 북분구묘에는 역대의 요시노마을의 왕이 매장해지고 있다.개인적으로는, 그 초대는 유명한 전설의 인물은 아닐까 몽상 하고 있다.
조후쿠라고 하는 이름을 (들)물었던 것이 있다일까.진의 시황제의 명령으로 불로불사의 영약을 찾으러 갔다는 인물이다.탐험가와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계신 분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한대의 사서 「사기」에 의하면, 조후쿠는「3천명을 거느려 항해해, 평원 광택을 얻고, 왕이 되어 돌아가지 않았다」어떤.즉,대이민 선단을 인솔한 인물인 것인다.그리고, 그 도착지는 일본으로 되어 있다.
또, 중국에서는 조후쿠에 대해 「시황제를 속이고 자금을 얻었다」「일본에 영주 해 자손은 교역에 왔다」 「일본인의 조상은 조후쿠이다」등이라고 하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1981년에는, 중국·강소성에서 「조후쿠의 태어난 고향」이라는 전승을 가지는 마을도 발견되었다.
다만, 중국에서의 조후쿠의 평판은, 어디까지나 「진의 시대에 대거 해 해외 이주를 실시해, 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자금을 얻은 인물」이라고 하는 것이 중심이다.「불로불사의 약을 찾으러 간 인물」이라고 하는 것은, 부가의 이야기이다.
실은 「조후쿠가 왔다」라고 하는 전설이 사가현에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