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と韓国で個人的に一番違うのは敗者に対する視線の違いと思う。
韓国は必ず勝たなければ!いう意識が強い。
それは敗者が徹底的に踏みにじられた歴史からくるものかもしれない。
日本でも勝つことが大切なのは変わらないが敗者に対する視線が暖かいので
勝ちにこだわる気持ちが韓国と少し違うように思う。
高校生だったころ、
枕草子を書いた清少納言は享楽的で陽気、あまりものを深く考えず感覚でとらえる人。
と教わった。
でも大人になった今、清少納言には全く違う印象を持っている。それは滅びたもの、敗者への限りない愛と思いやりを持つ人物というものです。
少し説明します。
これは平安時代、約1000年ころに清少納言が仕えた中宮(天皇の妻)定子のサロン
中宮定子は穏やかで優しく知的な女性で一条天皇の寵愛を一身に受けていました。
楽しく華やかで穏やかな日々。
そんな定子を支えたのは父藤原道隆の力あってこそ。
でも幸せは長く続かない。父道隆が病に倒れ亡くなってしまう。
定子の兄伊周は若すぎたこともあって権力の座につけなかった。
(直情的な人物で貴族から嫌われていたせいもある)
当時の天皇の妻は後ろ盾となる父や兄弟が失脚したり亡くなると力を失う。(説明すると長くなるので事実だけ)
今まで道隆に遠慮して娘を入内させなかった貴族たちは次々と自分の娘を天皇に嫁がせる。
それでも一条天皇の愛は変わらず定子を守り続けた。
そのような状況下でもまだ若い伊周なら待てば復権のチャンスはあった。
それなのに直情的な伊周は大変なスキャンダルを起こしてしまう。
自分が通っていた女性のもとに出家した花山法王(出家して仏門に入った元天皇)が通っていると勘違いしたのだ。
(当時は通い婚で男が女のもとを訪れる)
腹を立てて花山法王に矢を射る伊周の弟隆家
このことが公になって兄伊周と隆家は流罪になる。
中宮定子のもとに隠れていた伊周を検非違使は屋敷を破壊して捜索した。
定子はそのあまりの惨状に絶望し当時の社会では命も同然の髪を切ってしまう。
これは出家した=離婚したと同じ意味を持つ。
それでも正式な出家ではなかったので一条天皇は定子を守り離さない。
多くの貴族が権力者の道長にこびて定子を軽んじても一条天皇は定子のもとに足しげく訪れた。
やがて定子は媄子(びし)内親王を出産。翌日、後産が下りず亡くなる。
定子の父藤原道隆は当時の記録をみると美男子で有名だった。
その娘である定子も美しかったのだろう。
清少納言はこれほど美しい人を見たことがないと書き残している。
清少納言は定子に仕え、その栄華と没落を見てきた。
彼女は定子の死後、新たな権力者道長に出仕するように求められても断り
自分が心から仕えた定子の面影を世に残そうと枕草子を書いた。
清少納言は没落し貴族から軽んじられた定子ではなく
華やかで栄華を極めたときの定子の姿をいつまでも後世に伝えたいと思ったのだ。
清少納言は陽気で社交的な人だったらしい。
でも彼女の明るさは苦しみを知らない人の明るさではない。
悲しみや苦しみを経験した上の明るさだ。
こうして彼女が心から愛し仕えた定子の姿とともに清少納言もまた後世に残り続けるのです。
こうした敗者に対する慈しみと惜別の思いが日中韓で違うと思うのです。
それはいい悪いではなく歩んできた歴史の違いかもしれません。
일본과 한국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다른 것은 패자에 대한 시선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반드시 이기지 않으면!말하는 의식이 강하다.
그것은 패자가 철저하게 유린해진 역사로부터 온 것일까도 모른다.
일본에서도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지만 패자에 대한 시선이 따뜻하기 때문에
승리를 고집하는 기분이 한국과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고교생이었던 무렵,
마꾸라노소오시를 쓴 세이쇼나곤은 향락적으로 양기, 너무 것을 깊게 생각하지 않고 감각으로 파악하는 사람.
(이)라고 배웠다.
그렇지만 어른이 된 지금, 세이쇼나곤에게는 완전히 다른 인상을 가지고 있다.그것은 멸망한 것, 패자에게의 한없는 사랑과 배려를 가지는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조금 설명합니다.
이것은 헤이안 시대, 약 1000년무렵에 세이쇼나곤이 시중든 중궁(천황의 처) 정자의 살롱
중궁정자는 온화하고 상냥하게 지적인 여성으로 이치죠 천황의 총애를 일신에 받고 있었습니다.
즐겁게 화려하고 온화한 날들.
그런 정자를 지지한 것은 아버지 후지와라노 미치타카 힘 있어야만.
그렇지만 행복은 길게 계속 되지 않는다.아버지 미치타카가 병에 쓰러져 죽어 버린다.
정자의 형이주는 너무 젊은 적도 있고 권좌에 붙이지 않았다.
(곧 정적인 인물로 귀족으로부터 미움받아 할 수 있는 감자 있다)
당시의 천황의 아내는 후원자가 되는 아버지나 형제가 실각하거나 죽으면 힘을 잃는다.(설명하면 길어지므로 사실만)
지금까지 미치타카에 사양해 딸(아가씨)를 입궁시키지 않았던 귀족들은 차례차례로 자신의 딸(아가씨)를 천황으로 시집가게 한다.
그런데도 이치죠 천황 사랑은 변함없이 정자를 계속 지켰다.
그러한 상황하에서도 아직 젊은 이주라면 기다리면 복권의 찬스는 있었다.
그런데도 곧 정적인 이주는 대단한 스캔들을 일으켜 버린다.
자신이 다니고 있던 여성의 아래에서 출가한 하나야마 석가 여래(출가해 불 입문한 전 천황)가 다니고 있으면 착각 했던 것이다.
(당시는 다녀 결혼으로 남자가 여자의 아래를 방문한다)
화를 내 하나야마 석가 여래에 화살을 쏘는 이주의 제륭가
이것이 공이 되어형이주와 륭가는 유죄가 된다.
중궁정자의 아래에서 숨어 있던 이주를 검비위사는 저택을 파괴해 수색했다.
정자는 그 나머지의 참상에 절망해 당시의 사회에서는 생명도 동연의 머리카락을 잘라 버린다.
이것은 출가한=이혼했다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도 정식적 출가는 아니었기 때문에 이치죠 천황은 정자를 지켜 떼어 놓지 않는다.
많은 귀족이 권력자의 도장에 교태라고 정자를 경시해도 이치죠 천황은 정자의 아래에서 빈번하게 방문했다.
이윽고 정자는 아이(해) 내친왕을 출산.다음날, 후산이 물러나지 않고 죽는다.
정자의 아버지 후지와라노 미치타카는 당시의 기록을 보면 미남자로 유명했다.
그 딸(아가씨)인 정자도 아름다웠을 것이다.
세이쇼나곤은 이 정도 아름다운 사람을 본 적이 없으면 못 쓰고 남기고 있다.
세이쇼나곤은 정자를 시중들어 그 영화와 몰락을 봐 왔다.
그녀는 정자의 사후, 새로운 권력자도장에 출근하도록(듯이) 구할 수 있어도 거절
자신이 진심으로 시중든 정자의 모습을 세상에 남기려고 마꾸라노소오시를 썼다.
세이쇼나곤은 몰락해 귀족으로부터 경시된 정자는 아니고
화려하고 영화를 다했을 때의 정자의 모습을 언제까지나 후세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세이쇼나곤은 밝고 사교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녀의 밝기는 괴로움을 모르는 사람의 밝기는 아니다.
슬픔이나 괴로움을 경험한 위의 밝기다.
이렇게 해 그녀가 진심으로 사랑해 시중든 정자의 모습과 함께 세이쇼나곤도 또 후세에 계속 남습니다.
이러한 패자에 대한 자애와 석별의 생각이 일중한국에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좋은 나쁘지 않게 걸어 온 역사의 차이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