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々人々は非常に固執的で核心的な信頼を持つ. このために自分の信頼とは全然違った現実の客観的証拠が事実で現われれば, その新しい証拠を事実で認めることができなくなる. 代りにそれは “認知不調和”と呼ばれる非常に不便な感じを作り上げるでしょう. それで信頼に符合しないものなどを歪曲して合理化して, 無視して, はなはだしくは不正だろう. その理由は無意識的に, 自分の核心信頼を保護するのがなによりも一番重要だと思うからだ. - フランツパノング
自分の信頼とは全然違った現実が客観的な証拠で言われた時,
その証拠と論理に対する収容ではない, 事実を言った相手に対する怒り, 歪曲に表出されて,
相手に対する粘着につながる類型は kjでもたくさん見える類型であるでしょう. w
特に自分の能力を過大評価する過信の間違いを持った人が
相手によって自分の主張と論理が破綻されて自分の無能が現われた時,
その認知不調和が作り出した相手に対する怒りと恨みはすごいようにする.
粘着する日本人じじいを見て毎度感じたのだが, 他のきっかけでもう一度感じるようになった. w
때때로 사람들은 매우 고질적이고 핵심적인 믿음을 가진다. 이 때문에 자기 믿음과는 전혀 다른 현실의 객관적 증거가 사실로 드러나면, 그 새로운 증거를 사실로 인정할 수가 없게 된다. 대신에 그것은 "인지부조화"라고 불리는 매우 불편한 느낌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래서 믿음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을 왜곡하여 합리화하고, 무시하고, 심지어는 부정할 것이다. 그 이유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핵심 믿음을 보호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 프란츠 파농
자신의 믿음과는 전혀 다른 현실이 객관적인 증거로 말해졌을때,
그 증거와 논리에 대한 수용이 아닌, 사실을 말한 상대에 대한 분노, 왜곡으로 표출되어,
상대에 대한 점착으로 이어지는 유형은 kj에서도 많이 보이는 유형일 것이다. w
특히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과신의 오류를 가진 사람이
상대에 의해 자신의 주장과 논리가 파탄되고 자신의 무능이 드러났을때,
그 인지부조화가 만들어낸 상대에 대한 분노와 원한은 굉장한 듯 하다.
점착하는 일본인 할아범을 보며 매번 느끼던 것이지만, 다른 계기로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