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 5.20 夕方光州市内にタクシー 200代が竝んで盗聴で進撃を始めたしその後をバスとトラックが後に従ったその有名な車デモはまさにその時間に
陸軍本部で空輸部隊光州市内撤収命令を在宅した時間だったのを明らかにしたところあったが, 韓国軍で偽装した
北朝鮮軍が戦死してその死体が確認された今タクシー夜間デモの方映像をまた見るようになるからいくら奸悪な行為だったのか確認になっています.
映像内容の中にサナブグム代納話が出るのに, 載せるように 27である幼い青少年たちに 10満員ずつ配ったという内容を確認して見れば, サナブグムを代納してくれるからデモに参加だけなせばなるで誘惑してデモ現場では北朝鮮軍が強制でタクシー運転手たちを引っ張り出して
戒厳君で突進したことなのが確認されています.
低時空輸部隊に逮捕して全校社憲兵隊に引かれて行った北朝鮮軍が 22である 全校社で解けて出る時鉄兜と軍服リュックサックを支払ってもらって M16 小銃 34情を 支払ってもらった更生院小隊だったことが誤認射撃時動員されてから射殺された北朝鮮軍 1名医死体を捜し出してすべての行為が 青竹回主張が事実なのを裏付してくれています.
1980. 5.20 저녁 광주시내에 택시 200대가 늘어서서 도청으로 진격을 시작했고 그 뒤를 버스와 트럭이 뒤따랐던 그 유명한 차량시위는 바로 그 시간에
육군본부에서 공수부대 광주시내 철수명령을 재가한 시간이었음을 밝혔던 바 있었는데, 한국군으로 위장한
북한군이 전사해 그 시신이 확인된 지금 택시 야간 시위편 영상을 다시 보게 되니까 얼마나 간악한 행위였는지 확인이 되고 있습니다.
영상 내용 중에 사납금 대납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게 27일 어린 청소년들에게 10만원씩 나누어 주었다는 내용을 확인해 보면, 사납금을 대납해 주니까 시위에 참가만 하면 된다고 유혹하고 시위현장에서는 북한군이 강제로 택시 기사들을 끌어내
계엄군으로 돌진했던 것임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저때 공수부대에 체포되어 전교사 헌병대로 끌려갔던 북한군이 22일 전교사에서 풀려 나올 때 철모와 군복 배낭을 지급받고 M16 소총 34정을 지급받았던 갱생원 소대였음이 오인사격때 동원됐다가 사살된 북한군 1명의 시신을 찾아내어 모든 행위가 청죽회 주장이 사실임을 뒷받침 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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