竹島は韓国の地と歌う韓国人!おはよう!
竹島は1953年10月15日に紅宗人 韓国山嶽会会長(当時 朝鮮日報主筆)が盗んだ島だという事実を知っていますか?
朝鮮戦争で、大韓民国憲法3条に記載された領土の半分を北朝鮮に奪われた李承晩が、竹島を日本から奪うことで国民を洗脳したのですw
“竹島杭”を 抜いて “独島石標”を 建てる。(1953年) チォックパリ(注:日本人の蔑称)の韓半島侵略の憎らしい証拠である竹島杭に 1953年 韓国山嶽会が力強く突きたてた誇らしい太極旗 ! このたび6・25戦争(注:朝鮮戦争)中に日本が独島の領有権を主張するために設置した木杭を破棄した韓国山嶽会会員有志の写真が公開された。 この写真は著名な写真家であるキムハンヨク(金漢鏞・81)氏が 6.25戦争当時(1953年)大韓民国山岳グループの代表格である韓国山嶽会と同行して独島に上陸したときのものだ。 この杭は6・25戦争中の1952年6月に日本人9人が水産試験船で上陸設置したことで知られていた。 高さ2mを越す木杭には漢字で “島根県 隠地郡 五箇村 竹島”と書いてある。 1953年10月15日独島に上陸 日本人が立てた杭を抜く韓国山嶽会会員有志 前面に“독도 ” “獨島” “LIANCOURT”の文字を刻んだ標石を設置する 紅宗人 韓国山嶽会会長(当時 朝鮮日報主筆) 紅会長は “この石標は広さが二자ほど、高さは半자 体積は一자弱”と記録している。(一자約 30.3cm) Liancourt Rocksは独島を意味するフランス語(国際名称)。 (注:正しいフランス語名称は“Rochers de Liancourt”) この標石は 本来1年前の52年8月15日に設置が予定されていたもので 裏面に“15th AUG 1952” (1952年 8月15日)と刻まれている。 標石を設置した後 独島に上陸した16人の隊員の記念写真を撮った。 最前列の帽子をかぶってカメラを携げているのがキムハンヨク氏 山嶽会調査隊は測地班、記録班、報道班などで構成されていた。 登攀測量中の測地班 韓国山嶽会は独島に上陸して浜辺で野営した。 山嶽会員はソ ドクギュ大尉が指揮する海軍の905艇で独島に渡った。 ザイルで降崖する韓国山嶽会員 独島でキャンプファイアを囲む韓国山嶽会員 おそろしいです。 李承晩は徐坰徳教授と同じぐらい洗脳が上手でしたね。 |
한국인!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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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케시마는 한국의 땅과 노래하는 한국인!안녕!
타케시마는 1953년 10월 15일에홍종인 한국산악회 회장(당시 조선일보 주필)이훔친 섬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한국 전쟁으로, 대한민국 헌법 3조에 기재된 영토의 반을 북한에 빼앗긴 이승만이, 타케시마를 일본에서 빼앗는 것으로 국민을 세뇌했습니다 w
“타케시마말뚝”을 뽑아 “독도 글자를 새겨 안표로 세우는 돌”을 세운다.(1953년) 치크파리(주:일본인의 멸칭)의 한반도 침략의 얄미운 증거인 타케시마말뚝에 1953년 한국산악회가 강력하게 찔러 세운 자랑스러운 태극기 ! 이번에 6·25 전쟁(주:한국 전쟁) 중에 일본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서 설치한 목항을 파기한 한국산악회 회원 유시의 사진이 공개되었다. 이 사진은 저명한 사진가인 킴한요크(금한·81) 씨가 6.25전쟁 당시 (1953년) 대한민국 산악 그룹의 대표격인 한국산악회와 동행해 독도에 상륙했을 때의 것이다. 이 말뚝은 6·25 전쟁중의 1952년 6월에 일본인 9명이 수산 시험선으로 상륙 설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높이 2 m를 넘는 목항에는 한자로 “시마네현은지군 고카무라 타케시마”라고 써 있다. 1953년 10월 15 일독섬에 상륙 일본인이 세운 말뚝을 뽑는 한국산악회 회원 유시 전면에“ ” “독도” “LIANCOURT”의 문자를 새긴 표석을 설치하는 홍종인 한국산악회 회장(당시 조선일보 주필) 다홍색 회장은 “이 글자를 새겨 안표로 세우는 돌은 넓이가 2(정도)만큼, 높이는 반체적은 1미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일약 30.3 cm) Liancourt Rocks는 독도를 의미하는 프랑스어(국제 명칭). (주:올바른 프랑스어 명칭은“Rochers de Liancourt”) 이 표석은 본래 1년전의 52년 8월 15일에 설치가 예정되어 있던 것으로 이면에“15th AUG 1952” (1952년 8월 15일)라고 새겨지고 있다. 표석을 설치한 후 독도에 상륙한 16명의 대원의 기념 사진을 찍었다. 맨앞줄의 모자를 써 카메라를 휴라고 있는 것이 킴한요크씨 산악회 조사대는 측지반, 기록반, 보도반등에서 구성되어 있었다. 등반 측량중의 측지반 한국산악회는 독도에 상륙해 해변에서 야영 했다. 산악회원은 소드크규 대위가 지휘하는 해군의 905정으로 독도에 건넜다. 로프로 강애 하는 한국산악회원 독도에서 캠프 파이어를 둘러싸는 한국산악회원 무섭습니다. 이승만은 서덕교수와 같을 정도 세뇌가 능숙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