雑有新羅高麗倭等亦有中国人
百済には新羅, 高麗, 倭の人々がまじて暮す. 中国人もある.
隋書
上の記録にももう書かれている位,
百済が 多民族国家だったということは元々かつてから研究されて来たのだ.
百済の遺跡, 遺物の中で 倭係は, 全体の 1/100にもならないで,
日本で発掘される韓国係遺跡, 遺物の比重に少しも及ぶことができない水準だ.
そしてもう発掘された幾多の百済の王族, 貴族古墳で 倭係 遺物は稀薄なことで見て,
倭の百済に対する政治的影響力はほとんどないということが分かって,
当代百済でも 倭係 文化は低劣したことに評価されたということももう発掘を通じて分かった.
やっと土器破片いくつが発掘されたと
日本人たちが集まって来て泣き叫ぶ姿を見れば情けないだけ. w
雜有新羅高麗倭等亦有中國人
백제에는 신라, 고려, 倭의 사람들이 섞여서 산다. 중국人도 있다.
隋書
위 기록에도 이미 쓰여지고 있는 만큼,
백제가 多민족 국가였다는 것은 원래 예전부터 연구되어 왔던 것이다.
백제의 유적, 유물 중에서 倭係는, 전체의 1/100에도 되지 않고,
일본에서 발굴되는 한국계 유적, 유물의 비중에 조금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리고 이미 발굴된 수많은 백제의 왕족, 귀족 고분에서 倭係 유물은 희박한 것으로 보아,
倭의 백제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당대 백제에서도 倭係 문화는 저열한 것으로 평가되었다는 것도 이미 발굴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겨우 토기 파편 몇개가 발굴되었다고
일본인들이 모여와 울부짖는 모습을 보면 한심할 뿐. 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