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島のハンウィノ−グックワング (漢委奴王)
一国の奴隷, 東夷伝にも 倭ヌンデバンググンに属して毎年朝貢をしながら食いつないだ.
その報答で受けたのが金印なのに江戸時代発見されたと言う.
おおよそ 2‾3世紀初朝貢長さ開かれた倭王が中国で受けた道場で
未開な日本から遠いところまで来た真心が殊勝で送ってくれた印章だ.
一部極右史学者たちといくつかのイルパドルによって 委を 倭で読まなければならないと話にならない怪変を列べている.
委や 為は任命用字なので九州にあった国に実存した国で露国王に下賜したのが確かだ.
三国志の上だ倭人組でも列島に野馬一国女王非Mihoが擁立なる前にはナムワングと長い間のの間戦乱があったと
記録しているのにナムワングに関する忘れてしまった歴史の片鱗だ.
しかしこの遺物は正常なルートに発掘された遺物ではない
江戸時代農歌バッエソズウォホンサングヘッダヌンゾンセプムで
捏造遺物論難が絶えていない.
分かるように江戸時代列島にはない固有文化を起こして立てるために古代史改作がたくさん起きたが
天皇古墳造成竹内文書シンデ文字捏造ドングドングジナチン民族主義で生まれた代表的な偽作たちだ.
열도의 한위노국왕 (漢委奴国王)
한나라의 노예, 동이전에도 倭는 대방군에 속하여 해마다 조공을 하며 연명하였다.
그 보답으로 받은것이 금인인데 에도시대 발견되었다 한다.
대략 2~3세기 첫 조공길이 열린 왜왕이 중국에서 받은 도장으로
미개한 일본에서 먼곳까지 온 정성이 갸륵해 보내준 인장이다.
일부 극우사학자들과 몇몇 일빠들에 의해 委를 倭로 읽어야한다고 말도 안되는 괴변을 늘어놓고 있다.
委나 爲는 임명용 글자이므로 규슈에 있던 나라로 실존한 나라이며 노국왕에게 하사한 것이 확실하다.
삼국지 위지 왜인조에서도 열도에 야마일국 여왕 비미호가 옹립되기전엔 남왕과 오랜동안 전란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남왕에 관한 잃어버린 역사의 편린이다.
그러나 이 유물은 정상적인 루트로 발굴된 유물이 아닌
에도시대 농부가 밭에서 주워 헌상했다는 전세품으로
날조 유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알다시피 에도시대 열도엔 없는 고유문화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고대사 개작이 많이 일어났는데
천황고분조성 다케우치 문서 신대문자 날조 등등 지나친 민족주의로 태어난 대표적인 위작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