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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承晩ラインと日本漁船拿捕


日本安全保障戦略研究所研究員 藤井 賢二



焦点の「済州島周辺」
日本漁船の拿捕位置については、以前から不思議なことがあった。たとえば、浅羽祐樹氏は「竹島よりも好漁場の対馬や五島列島周辺で拿捕され」た(『日韓関係史』東京大学出版会 2015 年249 頁)とした。岩下明裕氏は「漁民の多くは実は竹島の近海ではなく、より豊かな漁場を持つ対馬や五島列島の近海で捕まった。」(『北方領土・竹島・尖閣・これが解決策』朝日新書 2013年 31 頁)とし、その後「日本漁船が拿捕されたのは事実だが、これは竹島近辺ではない。ほとんどが漁業資源が豊饒な対馬沖である。」(『入門 国境学』中公新書 2016 年 116 頁)と説明を変えた。このように「済州島周辺」を無視する記述が散見されることである。
李承晩ラインの画定作業では、韓国はまず「済州島周辺」の好漁場を囲い込んだ。1965 年に日韓漁業協定が結ばれて日本漁船拿捕が終わる時も、最後まで日韓間でもめたのは「済州島周辺」での日本漁船の操業許可範囲や漁獲量等であった。日本漁船拿捕は竹島周辺では起きていないことを強調するあまりに、日韓間の漁業問題の本質を見失ってはならないと思う。

『朝日新聞』の記事について
昨年 8 月 25 日付『朝日新聞(西部本社)』夕刊に、1955 年に拿捕されて 2 年 8 ヶ月間も釜山で抑留された漁船員の日記が発見されたという記事が掲載された。この日記を鈴木久美氏が「拿捕・抑留日記が語るもの」(『アジア・文化・歴史』3 号 2016 年)で紹介している。
鈴木氏は、被拿捕漁船の乗組員が、漁業資源保護法による刑期が終了しても「日韓に国交がなかったため、そのまま釜山外国人収容所に留め置かれ」たと書いている(86 頁)が、私はそうは思わない。
好漁場の独占をめざして設定された李承晩ラインは、当時行われていた日韓会談(日韓国交正常化交渉)を韓国が有利に進める「人質外交」(日韓会談の韓国側代表で後に韓国の外務部長官となる金東祚が『回想 30 年 韓日会談』 中央日報社 1986 年 で使った言葉)の手段となっていた。同じように国交がなかった同時期の中国では、1960 年代には拿捕・抑留はほとんどなくなった。
韓国も 1954 年 7 月以前は日本人の長期抑留をしてはいなかった。韓国が日本人を帰国させずに抑留した原因は、国交がなかったという「状況」ではなく、韓国の日本から譲歩を引き出そうとする「政策」だと考えている。
なお、この『朝日新聞』記事の解説には、「拿捕または抑留された日本の船・船員の数は 239隻。2,791 人(政府の答弁で使われてきた数)。338 隻(3,929 人)とする業界団体の調査もあり、正確な数ははっきりしない」とある。これは、李承晩ライン宣言後の数字(前者)と戦後の総数(後者)とを混同したものであろう。拿捕の被害への補償は、日韓条約で韓国に請求しないことになったため、日本政府が国内措置で行った。農林大臣による拿捕漁船認定は 1966 年から 1967年にかけて5回にわたって行われ、1948 年の韓国政府成立以前のものも含め、計 325 隻、3796人が補償の対象となった。「正確な数ははっきりしない」ものにも日本政府が補償したかのような誤解を与える恐れがある、この解説は適切でない。

「漁業資源保護法」について
学習院大学東洋文化研究所の『東洋文化研究』は、「未公開資料 朝鮮総督府関係者 録音記録」を毎号掲載しており、今年刊行の 19 号は「朝鮮の水産業」を取り上げている。録音記録の重要語句に「註」が付されているが、宮本正明氏による「平和線/李承晩ライン」(この二つの言葉は同じ意味ではない。同一のものを指すとしても日本人の著作ならば「李承晩ライン」を先に記すべきだと考える)の註に見過ごすことのできない部分がある。
それは、韓国が日本漁船拿捕の口実とした漁業資源保護法の制定を 1952 年 10 月としていることである(258 頁)。これは誤りで実際は 1953 年 12 月 12 日である。漁業資源保護法の制定を実際より一年早く記すという奇妙な記述は、韓国人の著作に複数ある(元容奭『韓日会談十四年』三和出版社 1965 年 85 頁、水協中央会漁村指導課編『韓国水産発達史』水産業協同組合中央会1966 年 542 頁、池鐵根『平和線』汎友社 1979 年 306 頁)。
1953 年 9 月に韓国は日本漁船大量拿捕を開始したが、日本人漁船員を「処罰する法律もなかった」(金東祚『回想 30 年 韓日会談』46~47 頁)。漁業資源保護法制定を 1952 年とする記述は、李承晩ラインを口実とする日本漁船拿捕は国際法のみならず韓国の国内法にも違反していたという失態を少しでも取り繕おうとする苦心の表れとではないかと私は疑っている。

李承晩ラインの違法性
李承晩ライン宣言は、「隣接海洋に対する主権に関する宣言」という正式名称が示すように、最大で距岸 200 海里近い公海に主権が及ぶことを突如宣言した非常識なものであった。宣言のもう一つの内容である、李承晩ライン水域の資源を韓国政府のみが管理するという主張にしても、ある国に隣接する公海での資源保護のための漁労の規制は、関係各国との協議の上で行うという国際法の原則に李承晩ラインは違反していた。
韓国政府の日韓会談に関する文書には、「平和線の不当性を強力に主張する日本側の主張の前に萎縮してまるで国際法に違反しているため一種の罪意識を持つのではないか」と、日韓会談で交渉にあたる韓国側代表を気遣う韓国政府内の意見すら残されている。李承晩ラインの正当化に苦心する韓国が様々な「言い訳」をすることも頭に入れて、文献を読むべき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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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로타

이승만 리인과 일본 어선 나포


일본 안전 보장 전략 연구소 연구원 후지이 켄지



초점의 「제주도 주변」
일본 어선의 나포 위치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신기한 일이 있었다.예를 들어, 아사바 유우키씨는 「타케시마보다 호어장의 대마도나 오도 열도 주변에서 나포되어」( 「일한 관계사」도쿄대학 출판회 2015 년 249 페이지)로 했다.이와시타 아키유씨는 「어민의 상당수는 실은 타케시마의 근해가 아니고, 보다 풍부한 어장을 가지는 대마도나 오도 열도의 근해에서 잡혔다.」( 「북방 영토·타케시마·센카쿠·이것이 해결책」아사히 신서 2013년 31 페이지)로 해, 그 후 「일본 어선이 나포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타케시마 부근은 아니다.대부분이 어업 자원이 풍요로운 대마도바다이다.」( 「입문 국경마나부」중 공신서 2016 년 116 페이지)과 설명을 바꾸었다.이와 같이 「제주도 주변」을 무시하는 기술이 산견되는 것이다.
이승만 리인의 확정 작업에서는, 한국은 우선 「제주도 주변」의 호어장을 둘러쌌다.1965해에 한일 어업 협정이 연결되어 일본 어선 나포가 끝날 때도, 끝까지 일한간에 옥신각신한 것은 「제주도 주변」에서의 일본 어선의 조업 허가 범위나 어획량등이었다.일본 어선 나포는 타케시마 주변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것을 강조한 나머지, 일한간의 어업 문제의 본질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사히 신문」의 기사에 대해
작년 8 월 25 일자 「아사히 신문(서부 본사)」석간에, 1955 년에 나포되어 2 년 8 개월간이나 부산에서 억류된 어선원의 일기가 발견되었다고 하는 기사가 게재되었다.이 일기를 스즈키 쿠미씨가 「나포·억류 일기가 말하는 것」( 「아시아·문화·역사」3 호 2016 년)로 소개하고 있다.
스즈키씨는, 피나포 어선의 승무원이, 어업 자원 보호법에 따르는 형기가 종료해도 「일한에 국교가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부산 외국인 수용소에 유치되어」라고 쓰고 있는(86 페이지)가, 나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호어장의 독점을 목표로 해 설정된 이승만 리인은, 당시 행해지고 있었다중일 회담(한일 국교 정상화 교섭)을 한국이 유리하게 진행하는 「인질 외교」(중일 회담의 한국측 대표로 후에 한국의 외무부 장관이 되는 김동조가 「회상 30 년 한일 회담」중앙일보사 1986 년에 사용한 말)의 수단이 되고 있었다.똑같이 국교가 없었던 동시기의 중국에서는, 1960 년대에는 나포·억류는 거의 없어졌다.
한국도 1954 년 7 월 이전에는 일본인의 장기 억류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한국이 일본인을 귀국시키지 않고 억류한 원인은, 국교가 없었다고 하는 「상황」이 아니고,한국의 일본으로부터 양보를 꺼내려고 하는 「정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덧붙여 이 「아사히 신문」기사의 해설에는, 「나포 또는 억류된 일본의 배·선원의 수는 239척.2,791 명(정부의 답변으로 사용되어 온 수).338 척(3,929 명)으로 하는 업계 단체의 조사도 있어, 정확한 수는 확실치 않다」라고 있다.이것은, 이승만 리인 선언 후의 숫자(전자)와 전후의 총수(후자)를 혼동 한 것일 것이다.나포의 피해에의 보상은, 한일 조약으로 한국에 청구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국내 조치로 갔다.농림 수산부 장관에 의한 나포 어선 인정은 1966 해부터 1967년에 걸쳐 5회에 걸쳐서 행해져 1948 년의 한국 정부 성립 이전의 것도 포함해 합계 325 척, 3796명이 보상의 대상이 되었다.「정확한 수는 확실치 않다」 것에도 일본 정부가 보상한 것 같은 오해를 줄 우려가 있다, 이 해설은 적절하지 않다.

「어업 자원 보호법」에 대해
가쿠슈인대학 동양 문화 연구소의 「동양 문화 연구」는, 「미공개 자료 조선 총독부 관계자 녹음 기록」을 매호 게제하고 있어, 금년 간행의 19 호는 「조선의 수산업」을 몰수하고 있다.녹음 기록의 중요 어구에「주」가 첨부 되고 있는이, 미야모토 마사아키씨에 의한 「평화선/이승만 리인」(이 두 개의 말은 같은 의미는 아니다.동일한 것을 가리킨다고 해도 일본인의 저작이라면 「이승만 리인」을 먼저 적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의 주에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한국이 일본 어선 나포의 구실로 한어업 자원 보호법의 제정을 1952 년 10 월로 하고 있는 것이다(258 페이지).이것은 잘못으로 실제는 1953 년 12 월 12일이다.어업 자원 보호법의 제정을 실제보다 일년 빨리 적는다고 하는 기묘한 기술은, 한국인의 저작에 다수 있다(원용 「한일 회담 14년」산와 출판사 1965 년 85 페이지, 수협중앙회 어촌 지도과편 「한국 수산 발달사」수산업 협동조합 중앙회 1966 년 542 페이지, 지철근 「평화선」범동업회사 1979 년 306 페이지).
1953 년 9 월에 한국은 일본 어선 대량 나포를 개시했지만,일본인 어선원을 「처벌하는 법률도 없었다」(김동조 「회상 30 년 한일 회담」4647 페이지).어업 자원 보호법 제정을 1952 년으로 하는 기술은, 이승만 리인을 구실로 하는 일본 어선 나포는국제법 뿐만 아니라 한국의 국내법에도 위반하고 있었다고 하는실태를 조금이라도 손질하려고 하는 고심의 표현과는 아닐까 나는 의심하고 있다.

이승만 리인의 위법성
이승만 리인 선언은, 「인접 해양에 대한 주권에 관한 선언」이라고 하는 정식명칭이 나타내 보이도록(듯이),최대로 거안 200해리 가까운 공해에주권이 미치는일을 갑자기 선언한 비상식적인 것이었다.선언의 또 하나의 내용인, 이승만 리인 수역의 자원을 한국 정부만이 관리한다고 하는 주장으로 해도,있다 나라에 인접하는 공해에서의 자원 보호를 위한 어로의 규제는, 관계 각국과의 협의한 후로 실시한다라고 하는 국제법의 원칙에 이승만 리인은 위반하고 있었다.
한국 정부의 중일 회담에 관한 문서에는, 「평화선의 부당성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일본측의 주장 전에 위축 해 마치 국제법에 위반하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죄의식을 가지는 것은 아닌가」라고, 중일 회담에서 교섭에 해당하는 한국측 대표를 염려하는 한국 정부내의 의견조차 남아 있다.이승만 리인의 정당화에 고심하는 한국이님 들인 「변명」을 하는일도 이해하고, 문헌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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