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国人と味付け海苔(笑
韓国のノリ養殖は、年間生産量が130億枚に達し、生産量では世界一となり、日本を始め米国や中国などの国々へノリを輸出している。
このような韓国におけるノリ養殖の発展は1980年代に入って本格化したが、発展のきっかけとなったのは、この当時日本から輸入した全自動乾海苔製造機(乾燥機)の導入による加工と養殖の分離であったと言えよう。それ以前は、養殖漁家の養殖規模は自家加工能力の制限を受けて一戸当り6〜7柵(当時は支柱式であった)が精一杯であったが、全自動乾海苔製造機を持つ近隣の加工専門業者に加工賃を払って委託加工する事によって、養殖規模の拡大を図るようになったのである。
かかる規模拡大の要求の結果、漁場の狭さが問題となり、その解決策として浮流式の養殖技術が開発され普及したが、これは1980年代半ばからの出来事であった。その過程でノリ価格は供給増大のため低迷したので、新しい養殖技術を探択する事による規模拡大を成し遂げられなかった漁家はノリ養殖から脱落し、1990年の養殖漁家数は1984年の約半分にまでに減少した。
1990年代に入ると、伝統的に板ノリの形態で最終消費されていたノリが、調味ノリ(加工ノリ)の形態に変わりはじめ、大手企業による調味ノリの生産が本格化した。この過程で調味ノリ加工会社による板ノリの大量購入が行われるようになり、一次加工業者を通じての購入が中心となったため、一次加工の性格も変わってきた。即ち、製品の販売について養殖漁家が主導的な位置を占めていた委託加工という形態から、製品の製造については一次加工業者が主体となり、養殖漁家は一次加工業者に原藻を販売するのみという形態に転換され始めたのである。
こうして、韓国のノリ生産は原藻ノリ生産者たる養殖漁家と板ノリ生産者たる一次加工業者、そして調味ノリ生産者たる二次加工会社という段階の構造を持つようになった。なお、かかる構造変化の結果、価格決定の構造もまた二次加工会社の主導下で板ノリの仕入価格が決められ、それに基づいて一次加工業者が原藻ノリの仕入価格を決めるという構造になったのである。
その結果、原藻ノリ生産量の大幅な変動にも拘らず、原藻ノリの価格は概ね一定水準で安定する様相が出現したが、この事は、作況の変動による経営的な打撃のほとんど全てを原藻ノリを生産する養殖漁家が負担することになったことを意味する。
最近、韓国においてもノリの品種改良や漁場環境の改善、養殖方法の改善などによってノリの産地ブランド化が推進されているが、原藻ノリの生産を担当している養殖漁家と板ノリ生産を担当している一次加工業者が機能的に分離されている条件の下では、その推進は不可能ではあるまいかと思われる。可能とするには、養殖漁家の組織による一次加工への参加が必要である。また、かかる努力によって初めてノリ価格決定における養殖漁家の交渉力を高めることができるであろう。
2012年3月
釜慶大學校水産科學大學海洋産業経営學部教授/経済學博士 金 炳 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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調味のりすらごく最近でしたかwww
한국인과 맛내기 김(소
이러한 한국에 있어서의 김 양식의 발전은1980년대에 들어와 본격화했지만, 발전의 계기가 된 것은, 이 당시일본으로부터 수입한 전자동건김제조기(건조기)의 도입에 의한 가공과 양식의 분리였다고 말할 수 있자.그 이전은, 양식 료케의 양식 규모는 자가 가공 능력의 제한을 받아 이치노헤당 6~7책(당시는 지주식이었다)이 힘껏에서 만났지만, 전자동건김제조기를 가지는 근린의 가공 전문 업자에게 가공비를 지불해 위탁 가공하는 일에 의해서, 양식 규모의 확대를 도모하게 되었던 것이다.
걸리는 규모 확대의 요구의 결과, 어장의 좁음이 문제가 되어, 그 해결책으로서부류식의 양식 기술이 개발되어 보급했지만, 이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의 사건이었다.그 과정에서 김 가격은 공급 증대를 위해 침체했으므로, 새로운 양식 기술을 탐택 하는 일에 의한 규모 확대를 완수할 수 없었던 료케는 김 양식으로부터 탈락해, 1990년의 양식 료케수는 1984년의 약 반에까지 감소했다.
1990년대에 들어오면, 전통적으로 판김의 형태로 최종 소비되고 있던 김이,
이렇게 하고, 한국의 김 생산은 원조김 생산자인 양식 료케와 판김 생산자인 일차 가공업자, 그리고 조미 김 생산자인 2차 가공 회사라고 하는 단계의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덧붙여 걸리는 구조 변화의 결과, 가격 결정의 구조도 또 2차 가공 회사의 주도하에서 판김의 구입 가격을 결정할 수 있어 거기에 기초를 두어 일차 가공업자가 원조김의 구입 가격을 결정한다고 하는 구조가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원조김 생산량의 대폭적인 변동에도 구애받지 않고, 원조김의 가격은 대체로 일정 수준으로 안정되는 님 상이 출현했지만, 이 일은, 작황의 변동에 의한 경영적인 타격의 거의 모두를원조노 리를 생산하는 양식 료케가 부담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최근, 한국에 있어도 김의 품종 개량이나 어장 환경의 개선, 양식 방법의 개선등에 의해서 김의 산지 브랜드화가 추진되고 있지만, 원조김의 생산을 담당하고 있는 양식 료케와 판김 생산을 담당하고 있는 일차 가공업자가 기능적 로 분리되고 있는 조건아래에서는, 그 추진은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된다.가능하게 하려면 , 양식 료케의 조직에 의한 일차 가공에의 참가가 필요하다.또, 걸리는 노력에 의하고 처음으로 김 가격 결정에 있어서의 양식 료케의 교섭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3월
부경대학교수산과학대학해양산업 경영학부 교수/경제학박사금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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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의 다람쥐등 극히 최근이었습니까 ww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