室町時代には日本将軍を日本国王と称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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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辰の乱以後外交家断絶さ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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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9年, 対馬島 宗氏が両国仲介外交を始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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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年, 朝鮮は日本が敗戦責任の誠意を見せてくれれば寛大に処分して, そうではなければ日本を征伐する. と答信を送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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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年, 日本将軍が朝鮮人虜送還を言い付ける.
朝鮮は正式通信使ではない, 回答兼刷還使を派遣して虜を送還受け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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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3年, この時まで朝鮮の 国書 原本には日本将軍の本名を直接呼びながら粗末にあしらっていたが,
対馬島 宗氏が朝鮮の 国書に書いている将軍の本名を日本国王という称号に変えるなど捏造したことがばれて対馬島 宗氏は処罰さ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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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年, 朝鮮は正式で 国書で将軍の本名ではない日本大君(日本国王より格下げである称号)で日本将軍を称して,
江戸時代最初で正式通信使を派遣する.
무로마치 시대에는 일본쇼군을 일본국왕으로 호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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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후 외교가 단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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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9년, 대마도 宗氏가 양국 중개 외교를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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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년, 조선은 일본이 패전 책임의 성의를 보여주면 관대하게 처분하고, 그렇지 않으면 일본을 정벌하겠다. 라고 답신을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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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년, 일본쇼군이 한국인 포로 송환을 명령함.
조선은 정식 통신使가 아닌, 回答兼刷還使를 파견해서 포로를 송환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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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3년, 이때까지 조선의 國書 원본에는 일본쇼군의 본명을 직접 부르며 하대하고 있었는데,
대마도 宗氏가 조선의 國書에 쓰여있는 쇼군의 본명을 일본 국왕이라는 칭호로 바꾸는 등 날조했던 것이 발각되어서 대마도 宗氏는 처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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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조선은 정식으로 國書에서 쇼군의 본명이 아닌 일본大君(일본국왕보다 격하인 칭호)으로 일본쇼군을 호칭하고,
에도시대 최초로 정식 통신使를 파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