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製の文化抹殺政策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7318
韓国に対する日本の植民地政策は社会・経済的収奪に止めないで民族の抹殺まで目標にしたという点で一番爆圧的で無断的だったし悪辣なのだった. 日製は歴史歪曲を通じる精神文化の改造, 韓国語使用抑制, 民族文化遺産破壊を躊躇しなかった. ここに対立した抗日独立闘いは全世界弱小民族の模範になるほどに頑強で粘り強く展開されて光復を成し出した. 日帝強制占領が国史に及ぼした悪影響は南北分断までもたらした.
民族抹殺のための植民地教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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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は 1911年 8月 「朝鮮教育領」を公布して民族抹殺と植民地教育を施行した.
「朝鮮教育領」の基本内容は 1. 韓国人に対する教育は日本帝国に忠良(忠良)ある国民を育成することを本意にして, 2 .日本語を普及して, 3. 朝鮮には大学を設置しないようにして, 必要ならば失業機能教育だけさせるというのだった.
日製はこの目的達成のために公立学校だけではなく私学の教員と教科課程, 教科書を総督府の指示に従うようにであった.
一方, 韓国語時間を減らして日本語時間を大幅に増加させた. 捏造課長された日本史を強制で学習させて日本崇拜思想を注入させて, 韓国史を歪曲して捏造して韓国民族は古代から日本の植民地支配を受けて来た他律的で正体的な民族であり, 今日韓国が日本の支配を受けることは歴史的 ・ 不可欠帰結という意識を注入させた.
内鮮一体 (鮮一)
内鮮一体(日本語: 鮮一)は日本帝国が日帝強制占領期間朝鮮を日本に完全に統合しようと立てた標語で, すぐないし(内, 日本)と朝鮮(鮮)が一身という意味を込めている. これは韓国人の民族アイデンティティを消えるようにして日本で編入させようと思った民族抹殺政策の一環に評価される.
神社参拜強要(神社参拜 要)
神社参拜は日本が民族抹殺政策の一つで強要したこととして, 日本はソウルに神宮を建てる一方, 各地方に神社を立てた. 韓国人に 神社参拜を強要したことは 1935年頃からなのに, まず学生に強要したが基督交界学校ではこれを拒否している途中平壌スングシルハックギョ・スングウィハックギョなどが閉校されたし学生・宣教師・牧師たちの反対運動は続いたし, 株譏さつ牧師と一緒に積極的に反対している途中投獄されて殉教した仕事が発生した.
色服奨励旗 (服 奨励 旗)
日帝強制占領期間に朝鮮文化及び風俗抹殺政策の一つで白衣廃止のために実施した色服奨励政策に使われたことで色服奨励運動の具体的芳香性を見せてくれることができる実物資料で現在まで知られた唯一の旗だ.
言論統制政策
1940年 1月日製は≪東亜日報≫・≪朝鮮日報≫羊新聞社にとって≪毎日新報≫わ統合して自ら廃刊するように慫慂した. これに対して羊新聞社は反対の意味を確かにしたし, 同時に日本に渡って廃刊方針の不当さを指摘した. すると結局≪東亜日報≫に対していわゆる ‘経理不正’事件を操作して一歩進んで独立運動資金を伝達しようと思ったと言って新聞社幹部などを大量で拘束する事態まで起ると羊新聞社は結局 1940年 8月 10日付け新聞を終りに廃刊してしまった.
일제의 문화 말살 정책1일제의 문화 말살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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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정책은 사회·경제적 수탈에 그치지 않고 민족의 말살까지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 가장 폭압적이고 무단적이었으며 악랄한 것이었다. 일제는 역사왜곡을 통한 정신문화의 개조, 한국어 사용 억제, 민족문화유산 파괴를 서슴지 않았다. 이에 맞선 항일독립투쟁은 전세계 약소민족의 모범이 될 정도로 완강하고 줄기차게 전개되어 광복을 이루어냈다. 일제강점이 우리 역사에 끼친 악영향은 남북분단까지 초래했다.
민족말살을 위한 식민지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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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1911년 8월 「조선교육령」을 공포하여 민족말살과 식민지교육을 시행하였다.
「조선교육령」의 기본내용은 1. 한국인에 대한 교육은 일본제국에 충량(忠良)한 국민을 육성하는 것을 본의로 하며, 2 .일본어를 보급하고, 3. 조선에는 대학을 설치하지 않도록 하고, 필요하면 실업기능교육만 시킨다는 것이었다.
일제는 이 목적달성을 위하여 공립학교뿐만 아니라 사립학교의 교원과 교과과정, 교과서를 총독부의 지시에 따르도록 였다.
한편, 한국어시간을 줄이고 일본어시간을 대폭 증가시켰다. 날조과장된 일본역사를 강제로 학습시켜 일본숭배사상을 주입시키고, 한국사를 왜곡하고 날조하여 한국민족은 고대부터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받아온 타율적이고 정체적인 민족이며, 오늘날 한국이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은 역사적 · 필연적 귀결이라는 의식을 주입시켰다.
내선일체 (内鮮一体)
https://ko.wikipedia.org/wiki/내선일체
내선일체(일본어: 内鮮一体)는 일본 제국이 일제강점기 조선을 일본에 완전히 통합하고자 내세운 표어로, 곧 내지(內, 일본)와 조선(鮮)이 한 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는 한국인의 민족 정체성을 사라지게 하여 일본으로 편입시키려 한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신사 참배 강요(神社參拜 強要)
https://ko.wikipedia.org/wiki/신사참배_강요
神社參拜는 일본이 민족 말살 정책의 하나로 강요한 것으로서, 일본은 서울에 신궁을 세우는 한편, 각 지방에 神社를 세웠다. 한국인에게 神社參拜를 강요한 것은 1935년경부터인데, 우선 학생에게 강요했으나 기독교계 학교에서는 이를 거부하다가 평양 숭실학교·숭의학교 등이 폐교되었고 학생·선교사·목사들의 반대운동은 계속되었으며, 주기철 목사와 같이 적극적으로 반대하다가 투옥되어 순교한 일이 발생하였다.
색복 장려 깃발 (⾊服 奬勵 깃발)
일제강점기에 조선 문화 및 풍속 말살 정책의 하나로 백의 폐지를 위해 실시한 색복 장려 정책에 사용된 것으로 색복장려운동의 구체적 방향성을 보여줄 수 있는 실물 자료로 현재까지 알려진 유일한 깃발이다.
언론통제정책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nh/view.do?levelId=nh_050_0020_0020_0040
1940년 1월 일제는≪동아일보≫·≪조선일보≫양 신문사로 하여금≪매일신보≫와 통합하여 자진 폐간하도록 종용하였다. 이에 대해 양 신문사는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하였고, 아울러 일본에 건너가 폐간방침의 부당함을 지적하였다. 그러자 결국≪동아일보≫에 대해 소위 ‘경리부정’사건을 조작하고 더 나아가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하려 했다고 하여 신문사 간부 등을 대량으로 구속하는 사태까지 벌어지자 양 신문사는 끝내 1940년 8월 10일자 신문을 끝으로 폐간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