カンゲト大王陵碑, 中国の歴史書たちや三国史記, 日本書紀は書かれた立場(入場)と背景が違うから少しずつ他の内容が書かれられていたりするが, 大略的に確認することができることは, 広開土大王の 南征 以後, 5世紀当時大和は高句麗に併合あうことに恐ろしくて震えていたというのだ.
広開土大王は 396年, 百済の首都を落ちて百済王の降参を受け出したし,
新羅を攻撃した倭軍を全滅させて, 任那を降参させて, 軍隊を駐屯させるようになる.
当時半島全体が一時的に統一されたと見られたはずだ.
これがカンゲト大王陵碑の内容だ.
広開土大王の 南征 以後の事件で三国史記には百済が大和に使臣を送って,
高句麗が軍隊を送ってこれから大和を攻撃するはずだから備えなさいと警告するから,
大和が軍隊を送って見回って守るようにしたが, それを高句麗が皆殺しさせたという記録がある.
以後中国歴史書の記録には, 大和の王が中国に朝貢を送って冊封を頼み始めながら,
高句麗が大和を竝合しようと思うから中国に救援を要請する内容が書いている.
日本書紀にはこのような内容を全部隠蔽して,
日本が高句麗,百済,新羅皆勝ったという三韓征伐というファンタジー小説に取り替えられているが,
現実の日本は高句麗に併合される予定に恐ろしくて震えていた.
광개토대왕릉비, 중국의 역사서들이나 삼국사기, 일본서기는 쓰여진 입장과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조금씩 다른 내용이 적혀져 있긴 하지만, 대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광개토대왕의 南征 이후, 5세기 당시 야마토는 고구려에 병합 당할 것에 두려워 떨고 있었다는 것이다.
광개토대왕은 396년, 백제의 수도를 함락하고 백제 왕의 항복을 받아냈으며,
신라를 공격하던 왜군을 전멸시키고, 임나를 항복시키고, 군대를 주둔시키게 된다.
당시 반도 전체가 일시적으로 통일되었다고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광개토대왕릉비의 내용이다.
광개토대왕의 南征 이후의 사건으로 삼국사기에는 백제가 야마토에 사신을 보내서,
고구려가 군대를 보내서 이제 야마토를 공격할 것이니까 대비하라고 경고 하니까,
야마토가 군대를 보내서 순찰하고 지키게 했는데, 그것을 고구려가 몰살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중국 역사서의 기록에는, 야마토의 왕이 중국에 조공을 보내고 책봉을 부탁하기 시작하면서,
고구려가 야마토를 병합하려고 하니까 중국에 구원을 요청하는 내용이 쓰여있다.
일본서기에는 이러한 내용을 전부 은폐하고,
일본이 고구려,백제,신라 모두 이겼다는 삼한정벌이라는 판타지 소설로 대체 되어 있지만,
현실의 일본은 고구려에 병합될 예정에 두려워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