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羅と日本序列関係を見せてくれる歴史的事件で 争長 事件だということが存在する.
唐は各国の序列順位によって使臣の儀典を違うようにしたが, 新羅と吐蕃を 1位に, 日本は新羅の下に残していた.
753年これに反撥した日本の使臣は唐に抗議したし, 唐はそれを受けて新羅代りに日本を 1位にあげたと言う事件があったと言うことが新羅と日本の間の 争長 事件だというのだ.
ところが, 753年の 争長 事件は韓国や中国の記録そのどこにも存在しないで, 純然と日本の記録でばかり登場する内容だ.
一方 897年にも渤海と新羅の間に 争長 事件が勃発するのに, 新羅があった 1位の席に渤海がなければならないと渤海が唐に抗議したのだ. しかし唐は渤海の抗議を受けなかったし, 新羅が序列 1位のので維持される.
753年の 争長 事件に対する日本記録とは相反する内容だ. 日本が 1位になったと言う内容はただ日本の記録でばかり登場して, 日本の記録と違うように渤海と新羅の間の 争長 事件があった 897年までも新羅はずっと 1位を守っていたことと見える.
753年の 争長 事件は単純に日本のそのほかダルンゴデ記録と同じな日本人の歴史捏造だったことだ.
日本人の捏造と妄想外, 実際世界の歴史では, 数千年間日本を韓国の属国あるいは韓国より小さな弱小国位にだけ認識していた.
신라와 일본 서열 관계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으로 爭長 사건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당나라는 각국의 서열 순위에 따라 사신의 의전을 다르게 했는데, 신라와 吐蕃을 1위에, 일본은 신라의 아래에 두고 있었다.
753년 이것에 반발한 일본의 사신은 당나라에 항의했고, 당나라는 그것을 받아 신라 대신에 일본을 1위에 올렸다고 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하는 것이 신라와 일본 사이의 爭長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753년의 爭長 사건은 한국이나 중국의 기록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순전히 일본의 기록에서만 등장하는 내용이다.
한편 897년에도 발해와 신라 사이에 爭長 사건이 발발하는데, 신라가 있던 1위의 자리에 발해가 있어야 한다고 발해가 당나라에 항의했던 것이다. 하지만 당나라는 발해의 항의를 받지 않았고, 신라가 서열 1위인 것으로 유지된다.
753년의 爭長 사건에 대한 일본 기록과는 상충되는 내용이다. 일본이 1위가 됐다는 내용은 오직 일본의 기록에서만 등장하며, 일본의 기록과 다르게 발해와 신라 사이의 爭長 사건이 있었던 897년까지도 신라는 계속 1위를 지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753년의 爭長 사건은 단순히 일본의 여타 다른 고대 기록과 마찬가지인 일본인의 역사 날조였던 것이다.
일본인의 날조와 망상 밖, 실제 세계의 역사에서는, 수천년간 일본을 한국의 속국 혹은 한국보다 작은 약소국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