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当時の高句麗はどんな民族だったのか
考古学籍で見れば朝鮮民族, 韓民族の同質的な文化圏は新石器, 青銅器時代からもう満洲で韓半島にかけて形成されていたことと見える.
高句麗は当時その韓民族の中で一つで, 昔の朝鮮の領土だった 忽本で始まって中原帝国を駆逐と朝鮮の領土を回復した国家だった.
最近までの言語研究によれば新羅,百済,高句麗の言語は特に違わなかったと言う.
夫余と高句麗が三韓や新羅, 百済のような言語を使って同じ民族であることと, ツングース族とは違う民族だと言うことは最初から当代中国の歴史書にも明らかに記録されていたのだった.
2.
高句麗は以後にどうなったのか
平壌城陷落以後高句麗は王子だった高安勝を新しい王で推戴して, 抗戦を長続く.
そうする間, 唐が新羅との協議を破って新羅と唐の間に戦争が勃発するようになりながら, 高安勝が新羅側で合流するようになる.
新羅軍は 唐軍を追い出して満洲の 烏骨城まで進撃しながら高句麗を吸収する.
6年間の 羅唐 戦争が終わった後, 高安勝と大部分の高句麗人は新羅で帰化したし, 新羅は三国統一を宣布する.
一方唐に引かれて行った高句麗人たちは脱出して満洲で渤海を建国する.
以後新羅末期に全国が分裂するのに, 北部の高句麗人たちは高句麗を再建して南部の 後百済と新羅を再統合する.
それが中世 王氏の 高麗だ.
渤海が滅亡した時は渤海の太子 大光顯と数十万名の渤海人がまた高麗に帰化しながら高麗に吸収される.
3.
そうだから中国でも 唐宋元明清にかけて元々はただ一度も不正ではなくて高句麗を韓民族の歴史と話して来たのだ.
日本の一部非専門歴史扇動家たちの主張する高句麗人が満州族, ツングース族だと言う主張は単純に根拠がない嘘に過ぎない.
日本の専門性ある学界や教科書では当たり前にも高句麗を中国史ではなく韓国史に含んでいる.
1.
당시의 고구려는 어떤 민족이었는가
고고학적으로 보면 조선 민족, 한민족의 동질적인 문화권은 신석기, 청동기 시대부터 이미 만주에서 한반도에 걸쳐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는 당시 그 한민족 중 하나로, 옛 조선의 영토였던 忽本에서 시작되어 중원 제국을 驅逐하고 조선의 영토를 회복한 국가였다.
최근까지의 언어 연구에 따르면 신라,백제,고구려의 언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夫餘와 고구려가 삼한이나 신라, 백제와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민족인 것과, 퉁구스족과는 다른 민족이라고 하는 것은 애초부터 당대 중국의 역사서에도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던 것이었다.
2.
고구려는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가
평양성 함락 이후 고구려는 왕자였던 高安勝을 새 왕으로 추대하고, 항전을 지속한다.
그러던 중, 당나라가 신라와의 협의를 어겨 신라와 당나라 간에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서, 高安勝이 신라측으로 합류하게 된다.
신라軍은 唐軍을 몰아내고 만주의 烏骨城까지 진격하면서 고구려를 흡수한다.
6년간의 羅唐 전쟁이 끝난 후, 高安勝과 대부분의 고구려인은 신라로 귀화했고, 신라는 삼국 통일을 선포한다.
한편 당나라로 끌려갔던 고구려인들은 탈출해 만주에서 발해를 건국한다.
이후 신라 말기에 전국이 분열하는데, 북부의 고구려인들은 고구려를 재건하고 남부의 後백제와 신라를 재통합한다.
그것이 중세 王氏의 高麗이다.
발해가 멸망했을때는 발해의 태자 大光顯과 수십만명의 발해인이 다시 고려에 귀화하면서 고려로 흡수된다.
3.
그렇기 때문에 중국에서도 唐宋元明淸에 걸쳐서 원래는 단 한번도 부정하지 않고 고구려를 한민족의 역사라고 이야기 해왔던 것이다.
일본의 일부 비전문 역사 선동가들이 주장하는 고구려인이 만주족, 퉁구스족이라고 하는 주장은 단순히 근거가 없는 거짓말에 불과하다.
일본의 전문성 있는 학계나 교과서에서는 당연하게도 고구려를 중국사가 아니라 한국사에 포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