朔遣阿知使主都加使主於呉令求縫工 女
阿知使主と 都加使主を 呉に送って工女工女を求めるようにした.
呉王於是与工女
呉王が工女を与えた.
出典 :日本書紀 応神 37年(306年)
1. 306年に 呉はなかった. 呉は 280年にもう滅亡した.
2. 実際に工女と朝貢を送って冊封を受ける方は中国ではなく日本だった.
3. 呉が大和なんかに朝貢を送るとかする仕事も当然実際ではない.
4. 日本は元々文字と記録がなかった. 応神という人物自体も実際では存在さえしない虚構の人物である可能性がよほど高い.
5. 韓国と中国の歴史書の中に日本書紀位嘘になっている歴史ではいない.
三十八年春二月遣瓠公聘於馬韓
赫居世居西干, 38年, 春, 2月, 瓠公を馬韓に送った.
馬韓王譲瓠公曰辰卞二韓為我属比年 不輸職事大之礼其若是乎
馬韓の王(辰王)が 瓠公に言うのを, “辰韓と 卞韓は私の属国なのに, 近来に職分に当たる供え物を送らないから, 事大の礼儀がどんなにこういうことがあるか?” と言った.
対曰我国自二聖肇興人事修天時和倉 充実人民敬譲自辰韓遺民以至卞韓楽 浪倭人無不畏懐而吾王謙虚遣下臣修 聘可謂過於礼矣而大王赫怒劫之以兵 是何意耶
瓠公が答えるのを, “我が国の(新羅)は二つの 聖人が国を開いて起こした以来あいさつがよく揃って賎視が調和で倉庫が一杯で人民は 敬譲したら, 辰韓から 卞韓とナクラン, 倭人まで私たちを敬い畏れない心がないです. しかし私たち王(新羅王)が謙虚な心で私にとって馬韓を 交聘をするようにしたから, これは度が外れるほどに礼儀を弁えたことだと言えるのに, 大王(辰王)が怒って軍隊で脅威したらこれは何の意味ですか?”と言った.
王憤欲殺之左右止乃許帰
辰王が悔しくて 瓠公を殺そうと思ったが, 左右の臣下が引き止めて, やめて帰ることを承諾した.
前此中国之人苦秦乱東来者衆多処馬 韓東与辰韓雑居至是盛故馬韓忌之有 責焉
以前に中国の人々が秦 の時の大騷ぎを避けて東に渡来した人が多数あったが, 馬韓の東, 辰韓に入って来てまじて住みながら新羅が剛性され始めて, 馬韓がそれを憂慮して叱ったのだ.
出典 : 三国史記
1. 中国三国志東夷伝と一緒に馬韓の王が三韓全体を支配したことや, 秦人の到来も, 三国史記の内容でもそのまま現われる.
2. 新羅側の記録だと新羅が馬韓の属国だったことを歪曲するとか欺かないでそのまま記録している.
当代遺物や中国記録とは全然交差検証にならないで,
韓国, 中国が日本に朝貢を送ったとかする,
途方もない嘘と脳内妄想で一杯なファンタジー小説日本書紀と違うように,
三国史記の内容は当代遺物と中国記録とも交差検証が可能な内容で充実だ.
朔遣阿知使主都加使主於吳令求縫工女
阿知使主와 都加使主를 吳에 보내서 공녀工女를 구하게 하였다.
吳王於是與工女
吳王이 공녀를 주었다.
出典 : 일본서기 應神 37년(306년)
1. 306년에 吳는 없었다. 吳는 280년에 이미 멸망했었다.
2. 실제로 공녀와 조공을 보내고 책봉을 받는 쪽은 중국이 아니라 일본이었다.
3. 吳가 야마토 따위한테 조공을 보낸다거나 하는 일도 당연히 실제로는 없다.
4. 일본은 원래 문자와 기록이 없었다. 應神이라는 인물 자체도 실제로는 존재조차 하지 않는 허구의 인물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5. 한국과 중국의 역사서 중에 일본서기 만큼 거짓말로 되어있는 역사서는 없다.
三十八年春二月遣瓠公聘於馬韓
赫居世居西干, 38년, 봄, 2월, 瓠公을 마한으로 보냈다.
馬韓王讓瓠公曰辰卞二韓爲我屬囯比年不輸職𧴨事大之禮其若是乎
마한의 왕(辰王)이 瓠公에 말하기를, "辰韓과 卞韓은 나의 속국인데, 근래에 직분에 맞는 공물을 보내지 않으니, 사대의 예의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라고 하였다.
對曰我國自二聖肇興人事修天時和倉𢈔充實人民敬讓自辰韓遺民以至卞韓樂浪倭人無不畏懷而吾王謙虛遣下臣修聘可謂過於禮矣而大王赫怒劫之以兵是何意耶
瓠公이 대답하기를, “우리나라(신라)는 두 聖人이 나라를 열고 일으킨 이래 인사가 잘 갖추어지고 천시가 조화로워 창고가 가득하고 인민은 敬讓하니, 辰韓으로부터 卞韓과 낙랑, 왜인까지 우리를 경외하지 않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왕(신라왕)께서 겸허한 마음으로 저로 하여금 마한을 交聘을 하게 하셨으니, 이것은 지나칠 정도로 예의를 차린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왕(辰王)께서 노하여 군대로 위협하시니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라고 하였다.
王憤欲殺之左右諌止乃許歸
辰王이 분하여 瓠公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좌우의 신하가 만류하여, 그만두고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前此中國之人苦秦亂東來者衆多處馬韓東與辰韓雜居至是寖盛故馬韓忌之有責焉
이전에 중국의 사람들이 秦 때의 난리를 피해 동쪽으로 도래한 사람이 다수 있었는데, 마한의 동쪽, 辰韓에 들어와 섞여 살면서 신라가 강성해지기 시작해, 마한이 그것을 우려해 꾸짖었던 것이다.
出典 : 삼국사기
1. 중국 삼국지 동이전과 같이 마한의 왕이 삼한 전체를 지배한 것이나, 秦人의 도래도, 삼국사기의 내용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2. 신라측의 기록이라고 신라가 마한의 속국이었던 것을 왜곡하거나 속이지 않고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당대 유물이나 중국 기록과는 전혀 교차검증 되지 않고,
한국, 중국이 일본에 조공을 보냈다 라든가 하는,
터무니 없는 거짓말과 뇌내 망상으로 가득한 판타지 소설 일본서기와 다르게,
삼국사기의 내용은 당대 유물과 중국 기록과도 교차검증이 가능한 내용으로 충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