記事入力 : 2023/04/09 09:41
【写真】京畿道坡州市の北朝鮮軍墓地には、1968年1月21日に当時の朴正熙元大統領を暗殺するために青瓦台を襲撃して射殺された北朝鮮武装スパイ、パク・ギチョルの遺骨が安置されている。/5日、チャン・リョンソン記者
京畿道坡州市の敵軍墓地に、6・25戦争(朝鮮戦争)の北朝鮮軍戦死者810人のほか、大韓航空爆破テロ犯、青瓦台襲撃武装スパイなど南侵スパイ58人、川を流されてきた北朝鮮側の人物3人が埋葬されていることが5日までに分かった。歴代政権と韓国軍は遺骨の送還を北朝鮮側に打診してきたが、北朝鮮側が特に説明もなく拒否してきたことも判明した。
【写真】北朝鮮スパイと韓国軍・警察の交戦(1968年)で生じた弾痕の残っている木
国民の力の徐範洙(ソ・ボムス)国会議員が韓国国防部から受け取った資料によると、敵(北朝鮮)軍の墓には1968年1月21日に青瓦台を襲撃した北朝鮮民族保衛省偵察局第124部隊の武装スパイ30人、1987年の大韓航空858便爆破で犠牲者115人を出した工作員キム・スンイル氏、1998年に全羅南道麗水市での潜水艇侵入事件で死亡したスパイ6人など北朝鮮のスパイ58人が埋葬されている。1996年に発生した江原道鉄原での韓国軍第3師団侵入事件の3人と京畿道坡州での第1師団浸透事件の1人、99年の東海岸侵入スパイ1人、その他の武装スパイ16人も含まれている。北朝鮮から川を流されてきた非武装のスパイまたは脱北者と推定される3人も納められている。
6·25戦争の北朝鮮軍戦死者810人だけでなく、1953年の7·27停戦以降、90年代末までに侵入した武装スパイなどジュネーブ条約の対象ではない非戦死者61人も埋葬されているのだ。韓国政府は54年、国軍、国連軍と北朝鮮軍、中国軍による第1回遺骨送還以降、全国に散在している敵軍墓地を集め、96年に南方限界線から5キロ離れた坡州市積城面に面積6099平方メートルの敵軍墓地を整備した。「交戦中に死亡した敵軍の遺骨を尊重し、墓地も管理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ジュネーブ条約と人道主義の原則による措置だった。遺骨送還の手続きが追加で行われる場合に備える意味合いもあった。
実際に韓国政府は2014年から16年までの3年間、敵軍墓の中国軍541人の遺骨を送還した。現在敵軍墓地には中国軍の遺骨は全くなく、北朝鮮側の871人の遺骨しかない。韓国政府は遺骨返還を北朝鮮側に打診したが、毎回拒否されたという。韓国軍関係者は「国連軍司令部を通じて努力したが、北朝鮮側は関心を示さなかった」と話した。元国家情報院高官は「武装スパイの遺骨返還を受ければ、自分たちの過ちを認める格好になるのではないかと考え、送還手続きに応じない」と話した。北朝鮮は1968年の朴正熙(パク・チョンヒ)元大統領暗殺未遂事件の際も韓国側の「自作自演」だとしてスパイ派遣の事実を否認し、遺体引き渡しも拒否した。
これに関連し、文在寅(ムン・ジェイン)政権は2018年9月に平壌で行われた南北首脳会談後、敵軍墓地一帯を「平和公園」として整備しようとしたという。当時、青瓦台と李在明(イ・ジェミョン)京畿道知事(現共に民主党代表)は国防部の敵軍墓地管理権を京畿道に移管し、公園を整備しようとしたが、「敵を美化する恐れがある」という軍内部の反発に阻まれ失敗したとされる。19年3月25日、民主党の朴釘(パク・チョ^ン)議員が天安艦沈没事件の戦死者などを称える「西海守護の日」の行事に出席せず、当日敵軍墓地で開かれた「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軍人追慕祭」に出席したことが論議を呼んだりもした。
徐議員は「敵軍墓地は北朝鮮の侵略行為に目をつぶったからではなく、徹底的に人道主義原則に従ったものだ」とし、「政府と軍は北朝鮮による韓国軍兵士の遺骨送還に向けた努力を続けていかなければならない」と述べた。政界の一部には、北朝鮮兵士の遺骨と北朝鮮にある韓国軍兵士の遺骨を交換する交渉を進めようとの声がある。国連軍司令部によると、北朝鮮には韓国軍捕虜7万人余りの遺骨があるという。休戦後、韓国軍の行方不明者は8万2000人いたが、引き渡された捕虜は8343人にすぎなかった。その後脱北した韓国軍捕虜も80人程度にとどまった。
盧錫祚(ノ・ソクチョ)記者
기사 입력 : 2023/04/0909:41
【사진】경기도 파주시의 북한군묘지에는, 1968년 1월 21일에 당시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서 청와대를 습격해 사살된 북한 무장 스파이, 박·기쵸르의 유골이 안치되고 있다./5일, 장·롤손 기자
경기도 파주시의 적군 묘지에, 6·25 전쟁(한국 전쟁)의 북한군전사자 810명외, 대한항공 폭파 테러범, 청와대 습격 무장 스파이 등 남침 스파이 58명, 강을 흘러가 온 북한측의 인물 3명이 매장되고 있는 것이 5일에 밝혀졌다.역대 정권과 한국군은 유골의 송환을 북한측에 타진해 왔지만, 북한측이 특히 설명도 없게 거부해 온 것도 판명되었다.
【사진】북한 스파이와 한국군·경찰의 교전(1968년)에서 생긴 탄흔이 남아 있는 나무
국민 힘의 서범수(소·봄스) 국회 의원이 한국 국방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의하면, 적(북한) 군의 무덤에는 1968년 1월 21일에 청와대를 습격한 북한 민족 보위성 정찰국 제 124 부대의 무장 스파이 30명, 1987년의 대한항공 858편 폭파로 희생자 115명을 낸 공작원 김·슨일씨, 1998년에 전라남도 여수시에서의 잠수정 침입 사건으로 사망한 스파이 6명 등 북한의 스파이 58명이 매장되고 있다.1996년?`노 발생한 강원도철원으로의 한국군 제 3 사단 침입 사건의 3명과 경기도 파주에서의 제1 사단 침투 사건의 1명, 99년의 동해안 침입 스파이 1명, 그 외의 무장 스파이 16명이나 포함되어 있다.북한에서 강을 흘러가 온 비무장의 스파이 또는 탈북자와 추정되는 3명이나 납입할 수 있고 있다.
6䞕전쟁의 북한군전사자 810명 뿐만이 아니라, 1953년의7䞗정전 이후, 90년대말까지 침입한 무장 스파이 등 제네바 조약의 대상이 아닌 비전사자 61명이나 매장되고 있다.한국 정부는 54년, 국군, 국제 연합군과 북한군, 중국군에 의한 제1회 유골 송환 이후, 전국에 산재 하고 있는 적군 묘지를 모아 96년에 남방 한계선으로부터 5킬로 떨어진 파주시적성면에 면적 6099평방 미터의 적군 묘지를 정비했다.「교전중에 사망한 적군의 유골을 존중해, 묘지도 관리해야 한다」라고 하는 제네바 조약과 인도주의의 원칙에 의한 조치였다.유골 송환의 수속이 추가로 행해지는 경우에 대비하는 의미도 있었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2014년부터 16년까지의 3년간, 적군무덤의 중국군 541명의 유골을 송환했다.현재 적군 묘지에는 중국군의 유골은 전혀 없고, 북한측의 871명의 유골 밖에 없다.한국 정부는 유골 반환을 북한측에 타진했지만, 매회거농`로 되었다고 한다.한국군 관계자는 「국제 연합군 사령부를 통해서 노력했지만, 북한측은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라고 이야기했다.모토쿠니가 정보원 고관은 「무장 스파이의 유골 반환을 받으면,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이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송환 수속에 응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했다.북한은 1968년의 박정희(박·톨히) 전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때도 한국측의 「자작 연출」이라고 해 스파이 파견의 사실을 부인해, 사체 인도도 거부했다.
이것에 관련해, 문 재인(문·제인) 정권은 2018년 9월에 평양에서 행해진 남북 정상회담 후, 적군 묘지 일대를 「헤이와코우엔」으로서 정비하려고 했다고 한다.당시 , 청와대와 이재명(이·제몰) 경기도 지사(현 모두 민주당대표)는 국방부의 적군 묘지 관리권을 경기도에 이관해, 공원을 정비하려고 했지만, 「적을 미화할 우려가 있다」라고 하는 군내부의 반발에 방해되어 실패했다고 여겨진다.19년 3월 25일, 민주당의 박정(박·조^) 의원이 천안함침몰 사건의 전사자등을 칭하는 「사이카이 수호의 날」의 행사에 출석하지 않고, 당일 적군 묘지에서 열린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군인 추모제」에 출석했던 것이 논의를 부르기도 했다.
서의원은 「적군 묘지는 북한의 침략 행위?`노 눈감아 주었기 때문에가 아니고, 철저하게 인도주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라고 해, 「정부와 군은 북한에 의한 한국군 병사의 유골 송환을 향한 노력을 계속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정계의 일부에는, 북한 병사의 유골과 북한에 있는 한국군 병사의 유골을 교환하는 교섭을 진행시키려고의 소리가 있다.국제 연합군 사령부에 의하면, 북한에는 한국군 포로 7 만여명의 유골이 있다라고 한다.휴전 후, 한국군의 행방불명자는 8만 2000명 있었지만, 인도해진 포로는 8343명에 지나지 않았다.그 후 탈북 한 한국군 포로도 80명 정도에 머물렀다.
노 주석조(노·속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