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人は死に物狂いで嘘と捏造して隠蔽しようと思うが,
ソウルは元々 19世紀にも大部分こんな風景,
もちろん日本人が好きな写真のその 草家と仮建物がある区域もあった.
元々 朝鮮 初期漢陽は貴族の回ったし, 法的に瓦の家だけ作ることができたから 草家や仮建物は全然なかった.
景福宮の瓦も元々は青瓦だったし, 建物も今とかなり違ったから今分かる漢陽, 上の写真ともかなり他の姿だった.
そうする間, 壬辰の乱以後都市に貧民が増加したし, 不法仮建物たちが増加し始めた.
朝鮮 後期にも 英祖, 正祖 時代には中興期で体系と経済が大丈夫な時代もあったが,
正祖 死後勢道政治が始まって経済が崩れ始めたし,
19世紀は興宣大院君の当百銭でスーパーインフレーションが発祥して, また経済が崩れた状態だった.
19世紀外国人が入って来始めた当時にはそんな状況だった.
일본인은 필사적으로 거짓말하고 날조하고 은폐하려고 하지만,
서울은 원래 19세기에도 대부분 이런 풍경,
물론 일본인이 좋아하는 사진의 그 草家와 가건물이 있는 구역도 있었다.
원래 朝鮮 초기 한양은 귀족의 도시였고, 법적으로 기와집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草家나 가건물은 전혀 없었다.
경복궁의 기와도 원래는 청기와였고, 건물도 지금과 꽤 달랐기 때문에 지금 아는 한양, 위의 사진과도 꽤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던 중, 임진왜란 이후 도시에 빈민이 증가했고, 불법 가건물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朝鮮 후기에도 英祖, 正祖 시대에는 중흥기로 체계와 경제가 괜찮은 시절도 있었지만,
正祖 사후 세도정치가 시작되어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19세기는 흥선대원군의 당백전으로 슈퍼 인플레이션이 발상해, 다시 경제가 무너진 상태였다.
19세기 외국인이 들어오기 시작한 당시에는 그런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