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1年の記事は連帯手順で列外された記事なのを分かる.
そうだから日本学界では 391年の問題の記事は大前置文と言った.
391年記事は後続する記事全部を修飾する前置文であり, 皆韓半島南部/waワグァンリョンされた記事というのだ. しかし 398年は Mohe 遠征ギサムで日本学界の主張する論拠は成り立たない.前置文の連続性が割れているのだ. ゆえに 391年記事は 396年百済遠征を強調するために作った ‘’前置文‘だ ‘大前置文’ではない. さあ, 391年に新羅と百済を臣民で作った主体は誰であろうか.前置文が修飾する 396年の百済遠征には日本人の面貌が一切ないが...
ここで 391年当時にあたる高句麗側記録をよく見れば
[광개토왕릉비] 일본인에겐 역사란 그냥 쇼비니즘의 도구이다
391년의 기사는 연대 순서에서 열외된 기사임을 알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학계에서는 391년의 문제의 기사는 大前置文이라고 했다.
391년 기사는 후속하는 기사 전부를 수식하는 前置文이며, 모두 한반도 남부/wa와 관련된 기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398년은 Mohe 원정 기사므로 일본 학계가 주장하는 논거는 성립하지 않는다. 前置文의 연속성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고로 391년 기사는 396년 백제 원정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前置文‘ 이지 ‘大前置文’이 아니다. 자, 391년에 신라와 백제를 신민으로 만든 주체는 누굴까. 前置文이 수식하는 396년의 백제 원정에는 일본인의 면모가 일절 없지만...
여기서 391년 당시에 해당하는 고구려측 기록을 살펴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