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kjclub.com/kr/board/exc_board_9/view/id/3648821?&sfl=membername&stx=booq
1.ルングビ 396年に記録されたグァンミソング陷落は光ヶ土用の元年 391年に起った事でフンゾックをよく整理して限定された空間を效率的に使うために 396年百済征伐記事に編入になった. すなわち百済に対する攻勢は 391年から始まったし 396年まで長続き
2. ルングビと三国史記が即位年と享年まで 1年間違いが現われるのに, これは三国史記の即位年,幼年称寃法で起因した間違いだ. 最近には故国さん王のいつまでも譲位説が頭をもたげている. 当代金石文である広開土王陵碑が当然信憑性が高いから.
3. 高句麗本紀と百済本紀で収録されたグァンミソング陷落記事は高句麗戦勝を土台で百済本紀に縮約した形態の記事が収録された可能性が大きい. 高句麗本紀の記録がもっと長くて長たらしいから. これを前提に推論しようとすると金腐食線で高句麗側記事を 392年で書き誤りした可能性が大きい.
4. 1番(回)のような論理でキタイ征伐記事もルングビでこういうふうに編集になった可能性が大き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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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릉비 396년에 기록된 관미성 함락은 광개토왕의 원년 391년에 벌어졌던 일로 훈적을 잘 정리하여 한정된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396년 백제 정벌 기사에 편입 되었음. 즉 백제에 대한 공세는 391년부터 시작 되었고 396년까지 지속됌
2. 릉비와 삼국사기가 즉위년과 향년까지 1년 오류가 나타나는데, 이것은 삼국사기의 즉위년,유년 칭원법에서 기인한 오류임. 최근에는 고국양왕의 생전 양위설이 대두 되고 있음. 당대 금석문인 광개토왕릉비가 당연히 신빙성이 높으니깐.
3. 고구려본기와 백제본기에서 수록된 관미성 함락 기사는 고구려 전승을 토대로 백제본기에 축약한 형태의 기사가 수록되었을 가능성이 큼. 고구려 본기의 기록이 더 길고 장황하기 때문. 이것을 전제로 추론하자면 김부식 선에서 고구려측 기사를 392년으로 오기 했을 가능성이 큼.
4. 1번과 같은 논리로 거란 정벌 기사도 릉비에서 이런식으로 편집 되었을 가능성이 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