調べてみたら日本の時計店で製作…銀工芸品、14年ぶりに文化財抹消
2023.02.07|7:10
国家登録文化財「銀製李花文花瓶」昨年末、再調査を経て登録抹消
「『李花文装飾=李王職美術品製作所製作品』誤った認識によるミス」
2009年の調査報告書に掲載された遺物の写真
(近代工芸遺物文化財登録調査報告書の一部のキャプチャ)
王室文化を垣間見ることができる資料とされていた銀工芸品が、実際には日本のある時計店で作られていたことが確認され、14年ぶりに文化財登録が抹消された。
7日、学界などによると、文化財庁は今月初め、官報を通じて国家登録文化財である「銀製李花文花瓶」の文化財登録を抹消すると告示した。
文化財庁は「銀製李花文花瓶の底面にある『小林』の押印は、東京の小林時計店の製品であることが確認され、登録を抹消する」と明らかにした。
小林時計店は、かつて日本の有名な時計店であり、美術品製作所として知られている。
19世紀半ばから1943年まで東京で営業し、時計の他にも銀製品や装身具などを製作した。宮内省をはじめとする各官庁などに品物を納品することもあったという。
問題になった銀製李花文花瓶は1910年代に作られたと推定される遺物で、国立故宮博物館にある。
この遺物は首が長く胴体側に行くほど広くなる形をしているが、胴体中央には大韓帝国の皇室紋章であるスモモの花(李花)文様が付いている。
「銀製李花文花瓶」の底の部分の様子
遺物の底の部分にある「小林」の 押印。写真は登録が抹消される前に国家文化遺産ポータルに掲示されていた。(文化財庁国家文化遺産ポータル提供)
文化財庁は2009年、この遺物を登録文化財に指定し「王室で使用する工芸品を製作するために設立された李王職美術品製作所で1910年代に製作」したと説明していた。
しかし、文化財の現場では、この遺物を再調査すべきだという意見が絶えず出ていたという。
瓶の底面に小林を意味する押印が押されていたためだ。学界では、スモモの花模様(李花文)の工芸品は、まず李王職美術品製作所で作ったという見方を批判する意見も少なくなかったという。
昨年末、調査に参加した専門家たちも同様の意見を出した。
ある文化財委員は、「押印を見ると、小林時計店で製作されたことが明白だ」とし「李王家が注文したものなのか商業的理由で製作販売したものなのかは分からないが、朝鮮工芸の脈を継いだり王室の生活ぶりを示す歴史的な価値があるとは見なし難い」と判断した。
また別の専門家は「『李花文がある工芸品は李王職美術品製作所製作品』という誤った認識により国家登録文化財に登録された明白なミスが確認される」と伝えた。
これを巡って学界内外では、文化財登録過程での調査及び専門家の判断が残念だという指摘が出ている。
「銀製李花文花瓶」
(文化財庁国家文化遺産ポータル提供)
2009年当時、文化財庁は韓国伝統文化研究所を通じて「近代工芸遺物文化財登録調査」研究サービスを発注し工芸分野の専門家の助言を受けた。
報告書によると、当時の文化財委員と専門家たちは遺物の形態、保存状態、製作技法などについて現場調査を行ったが、「小林」の押印についてのいかなる言及もなかったことが確認された。
これと関連して文化財庁の関係者は「登録調査が行われて久しいため、当時の状況に関して確認するのは難しいが、調査過程で関連内容が正確に把握されていないものと見られる」と説明した。
工芸専門家として過去に文化財委員として活動したある関係者は、聯合ニュースとの電話インタビューで「スモモの花模様だけに集中するのではなく、多様な可能性を置いて遺物を細心の注意を払って見て判断すべきだった」と指摘した。
文化財登録は抹消されたが、銀製李花文花瓶は国立故宮博物館で引き続き管理する予定だ。
文化財庁は「国立故宮博物館は購入を通じて(確保した)李花文がある銀製工芸品を所蔵している」とし「李花文が飾られたこの遺物は博物館で引き続き所蔵・管理する計画」と明らかにした。
登録が抹消された「銀製李花文花瓶」
(文化財庁国家文化遺産ポータルのキャプチャ)
ソース:https://naver.me/x8ic7Fbc
1. 韓国人
要約
メイドインジャパンって書いてあったのに、誰も気にする人がいなかった
共感:126|非共感:0
日本に返しなさいw
조사해 보면 일본의 시계점에서 제작 은공예품, 14년만에 문화재 말소
2023.02.07|7:10
국가 등록 문화재 「은제 리화붕카병」작년말, 재조사를 거쳐 등록 말소
「 「리화문장식=이왕직 미술품 제작소 제작품」잘못된 인식에 의한 미스」2009년의 조사보고서에 게재된 유물의 사진
(근대 공예 유물 문화재 등록 조사보고서의 일부의 capther)
왕실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자료로 되어 있던 은공예품이, 실제로는 일본이 있는 시계점에서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 확인되어 14년만에 문화재 등록이 말소되었다.
7일, 학계등에 의하면, 문화재청은 이번 달 초, 관보를 통해서 국가 등록 문화재인 「은제 리화붕카병」의 문화재 등록을 말소한다고 고시했다.
문화재청은 「은제 리화붕카병의 저면에 있는 「고바야시」의 날인은, 도쿄의 고바야시 시계점의 제품인 것이 확인되어 등록을 말소한다」라고 분명히 했다.
고바야시 시계점은, 일찌기 일본의 유명한 시계점이며, 미술품 제작소로서 알려져 있다.
19 세기 중반부터 1943년까지 도쿄에서 영업해, 시계 외에도 은제품이나 장신구등을 제작했다.궁내성을 시작으로 하는 각 관청 등에 물건을 납품하기도 했다고 한다.
문제가 된 은제 리화붕카병은 1910년대에 만들어졌다고 추정되는 유물로, 국립 고 궁박물관에 있다.
이 유물은 목이 길고 동체 측에 갈수록 넓어지는 형태를 하고 있지만, 동체 중앙에는 대한제국의 황실 문장인 자두의 꽃(꽃) 문양이 붙어 있다.
「은제 리화붕카병」의 바닥의 부분의 님 아이
유물의 바닥의 부분에 있는 「고바야시」의 날인.사진은 등록이 말소되기 전에 국가 문화유산 포털에 게시되고 있었다.(문화재청국가 문화유산 포털 제공)
문화재청은 2009년, 이 유물을 등록 문화재로 지정해 「왕실에서 사용하는 공예품을 제작하기 위해서 설립된 이왕직 미술품 제작소에서 1910년대에 제작」했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화재의 현장에서는, 이 유물을 재조사해야 한다고 하는 의견이 끊임 없이 나와 있었다고 한다.
병의 저면에 고바야시를 의미하는 날인이 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학계에서는, 자두의 꽃 무늬(리화문)의 공예품은, 우선 이왕직 미술품 제작소에서 만들었다고 하는 견해를 비판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작년말, 조사에 참가한 전문가들도 같은 의견을 냈다.
있다 문화재 위원은, 「날인을 보면, 고바야시 시계점에서 제작되었던 것이 명백하다」라고 해 「이왕가가 주문한 것인가 상업적 이유로 제작 판매한 것인가는 모르지만, 조선 공예의 맥을 잇거나 왕실의 생활모습을 나타내는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라고는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 「리화문이 있다 공예품은 이왕직 미술품 제작소 제작품」이라고 하는 잘못된 인식에 의해 국가 등록 문화재에 등록된 명백한 미스가 확인되는/`v라고 전했다.
이것을 둘러싸 학계 내외에서는, 문화재 등록 과정으로의 조사 및 전문가의 판단이 유감이다고 하는 지적이 나와 있다.「은제 리화붕카병」
(문화재청국가 문화유산 포털 제공)
2009년 당시 , 문화재청은 한국 전통 문화 연구소를 통해서 「근대 공예 유물 문화재 등록 조사」연구 서비스를 발주해 공예 분야의 전문가의 조언을 받았다.
보고서에 의하면, 당시의 문화재 위원과 전문가들은 유물의 형태, 보존 상태, 제작 기법등에 대해서 현장 조사를 실시했지만, 「고바야시」의 날인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이것과 관련해 문화재청의 관계자는 「등록 조사를 해 오래 되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에 관해서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만, 조사 과정에서 관련 내용이 정확하게 파악되어 있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공예 전문가로서 과거에 문화재 위원으로서 활동한 있다 관계자는, 연합 뉴스와의 전화 인터뷰로 「자두의 꽃 무늬인 만큼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을 두어 유물을 세심의 주위를 기울여 보고 판단해야 했다」라고 지적했다.
문화재 등록은 말소되었지만, 은제 리화붕카병은 국립 고 궁박물관에서 계속해 관리할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국립 고 궁박물관은 구입을 통해서(확보한) 리화문이 있다 은제 공예품을 소장하고 있다」라고 해 「리화문?`장식된 이 유물은 박물관에서 계속해 소장·관리할 계획」이라고 분명히 했다.
등록이 말소된 「은제 리화붕카병」
(문화재청국가 문화유산 포털의 capther)
소스:https://naver.me/x8ic7Fbc
1.한국인
요약
메이드 인 재팬이라고 써 있었는데, 아무도 신경쓰는 사람이 없었던
공감:126|비공감:0
일본에 돌려주세요 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