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2 13:00
イ・ギファン先任記者
朝鮮時代の銃筒は曲がるかどうか壊れないように錫含有量を5~10wt%(重量パーセント・重量%)程度に合わせた。 発射時の衝撃で銃筒が壊れれば人命が怪我をする可能性があるため、最悪の場合には反るように作ったのだ。 |国立晋州博物館提供
1992年8月、閑山島沖で引き揚げたという「銃筒」(発射武器)が一瀉千里で国宝(第274号)に指定された。 名前で「龜艦別黄字銃筒」だった。 “万力兵新年(1596年・先祖29年)6月に製作された龜艦(亀甲船)の黄字銃筒は、敵船を驚かせ、一発を撃つと必ず敵船を水葬させる(龜艦黄字驚敵船一射敵船必水葬)」は銘文が刻まれていた。 亀甲船に装着した火砲が発見されたということで、国宝の中の国宝と評価された。 しかし、この銃筒は、とにかく4年後(1996年)に国宝で電撃解除される。
青銅合金総通流を分析してみると、16点で亜鉛が含まれたという事実が確認された。 銅(Cu)-錫(Sn)-鉛(Pb)と共に亜鉛(Sn)が含有されたものが15点(5%)、銅+亜鉛が1点(0%)であった。 14~16世紀の銃筒に亜鉛が含まれたことは、「偽」の証拠である可能性がある。 |国立晋州博物館提供
昇進に目が遠い李忠武功海戦遺物発掘団長、すなわち現職大佐が技術者と組んで偽の銃筒を製作した後、海に押し入れてはこれを引き揚げたかのようにだまされた事実が摘発されたためだ。 捜査結果、彼らは銘文が刻んだ偽の銃筒を製作した後、1年間火工薬品を注ぎ、輝く遺物に見えるように強制腐食させた事実が明らかになった。 その中で、国立文化財研究所の成分分析の結果、亜鉛が8%も含まれているという事実が明らかになったが、卒属国宝指定を防いでいなかったが、4年ぶりに偽りに潰れたのだ。
青銅器時代に作られた多鈕細文鏡(国宝第141号)。 どんな衝撃を受けたのか壊れた。 13wt%(重量パーセント・weight percent)を基準にそれ以上であればよく割れ、その以下でよく反る特性を有するという。 |国立晋州博物館提供
国立晋州博物館が「偽銃筒」事件が起きてから20年余りが去る2018年から14~16世紀製作されたという青銅製小型銃筒292点の成分を分析した結果、興味深い事実を明らかにした。 分析対象のうち16点(5%)で亜鉛が含まれたことを確認したのだ。 亜鉛を合金するには、原鉱石から抽出する必要があります。 しかし、亜鉛は揮発性が非常に強い金属として知られており、抽出して製錬することが難しい特徴を持っている。 許日圏国立晋州博物館学芸研究士は「朝鮮で金属亜鉛の製錬と合金が本格的に始まった時期は、常平通宝が製作された(1678年・宿宗4年)17世紀以降と判断される」と明らかにした。 さらに、亜鉛が含まれた16点の小型銃筒を綿密に分析してみると、わざと腐食させた痕跡も力力した。
ソウル軍機シッターで絡み合ったまま発見された小型銃筒の山。 曲がって機能を喪失した銃筒を廃棄したものと見られる。 |国立晋州博物館提供
国内所蔵の一部の銃筒が偽の可能性があるという他の証拠も見つけた。 銃筒を製作する際の必須条件は、銃口と銃身の内壁が最初から最後まで一定でなければならない。 中心に位置せずに片側に偏ったらどうなるのか。
真ん中が薄くなっても火薬が発射されて爆発してしまう。 だから壁を均等にして一定の銃身を作るのが小型銃筒製作の核心技術だ。 したがって、当代の朝鮮の技術者らは、銃筒製作時に銃口と銃身を固定し、空間を維持する装置、すなわちコア支柱(チャプレット)を設置した。 長い棒状の銃身部内型を固定する上部はW字型、下部はM字型、部屋の端部はL字型にそれぞれ作った。
小型銃筒鋳造時の内形と外形、そしてコア支柱の配置模式図。 W字M字L字型コア支柱は火薬長が一定になるように支える装置である。 ところが国内現戦する銃筒のうち、このような装置がないことが10点余り確認された。 偽物と推定される銃筒である。|国立晋州博物館提供
ところが、国立晋州博物館研究チームが小型銃筒をCT(コンピュータ断層)で撮影した結果、10点余りでこのようなコア支柱が見られなかった。 許日圏学芸士は「この中には亜鉛が含まれて二重に偽の可能性がチェックされた銃筒もある」とし「これらの偽物と推定される銃筒では近年腐食させた痕跡も見られる」と明らかにした。 一言で偽ということだ。 許日圏学芸士は「龜艦別黄字銃筒が有名世に乗った1990年代初め、このような偽物が製作流通された可能性を排除できない」と明らかにした。
国立晋州博物館はこのように高麗末~朝鮮中期、すなわち14~16世紀の間に製作された小型火薬武器800余点を調査した結果を<朝鮮武器調査研究報告書Ⅰ:小型火薬武器>を最近発刊した。 チェ・ヨンチャン管長は22日、「報告書に載せられた武器だけで合計748点に達する」とし、「国内唯一の壬辰わ乱専門博物館である国立晋州博物館が大量の実物資料をもとに科学的調査と文献資料を連携し、総合的な研究結果を導出した」と自平した。 報告書には、800点余りの中で選別した小型総銃筒275件(292点)と、銃筒48件50点(総身24点含む)の写真や諸元が詳細に載っている。
CT(コンピュータ断層)撮影で確認した朝鮮前期小型銃筒の内部構造。 |国立晋州博物館提供
博物館側は過去2年間、研究対象銃筒の諸元を測定し、内視鏡調査と3次元スキャン、CT撮影などで成分を分析した。 その結果、先に明らかにした一部の資料の真偽を判断するなど、これまで知らなかった多くの新しい事実を明らかにした。 一例として、非破壊分析の結果、国内青銅製小型銃筒300点余りの主成分(銅-錫-鉛)のうち錫含有量は5~10wt%(重量パーセント・重量%)程度で測定された。 この程度の錫含有量は、一般的な青銅製文化遺物と比較すると低い方に属する。 古代遺物のうち青銅鏡の場合、錫含有量が20wt%以上である。
小型総統で確認される様々な銘文。 銃筒を鋳造した後、製造年度と製造紙、製作者、重量などを刻んだ。 |国立晋州博物館・ソウル歴史博物館提供
ところが、銃筒で見られるように錫含有量が低いと曲がるかどうか容易に割れない特性を見せる。 まさにこれが武器としての銃筒を作る原則だ。 武器(銃筒)を使うのに途中で割れたらどうなるのか。 火薬を発射する際の衝撃で割れた場合、周辺の人々がけがをしたり死ぬ恐れが生じる。 したがって、最悪の場合、反るかどうか壊れないよう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 ホイル圏学芸士は「これが現前の小型総統のうち壊れた形態ではなく反った状態で伝わる銃筒が相当数発見される理由」と説明した。
1992年、海軍の李忠武功海戦遺物発掘団が引き揚げたという銃筒、1597年に亀甲船に装着され使用されたと発表されたが、4年後に偽物と判明した。 この銃筒には亜鉛が8%以上含まれていた。 朝鮮で金属亜鉛の製錬と合金が本格的に始まった時期は、常平通宝が製作された(1678年・宿宗4年)17世紀以降だ。 |傾向新聞資料写真
また今回の研究では、銘文調査や3Dスキャンなどを通じて、朝鮮前期の小型銃筒に見られる節(竹節)の個数から、銃筒の種類による規則性を確認することができた。 この他、CT撮影と内視鏡調査の結果、<国朝誤礼の書道>や<兵器図説>の記録をもとに行われた先行研究で主張された隔木部(撃木筒)が実際には存在しないことが確認できた。 「隔木」は、爆発で発生した燃焼ガスが漏れないように、発射体と火薬の間の空間を防ぎます。 すなわち、銃筒室内の爆発圧力を高めるための補助装置である。 今回の調査過程で国立慶州博物館所蔵品の中に内部に隔木が残っている銃筒も初めて見つけた。
チェ・ヨンチャン管長は「火薬武器は当代最先端技術の集合体であるが、中国、日本などの研究業績に比べて相対的に未進だったのが事実」とし「今回のCT、3Dスキャンなどの最先端装備を活用した研究を通じて多くの新しい事実を明らかにできた」と話した。
https://m.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006221300001
参考1 https://www.kjclub.com/jp/board/exc_board_9/view/id/3636910
参考2 https://www.kjclub.com/jp/board/exc_board_9/view/id/3637048
2020.06.22 13:00
이·기판 선임 기자
조선시대의 총통은 구부러질지 망가지지 않게 주석 함유량을 510 wt%(중량퍼센트·중량%) 정도에 맞추었다. 발사시의 충격으로 총통이 망가지면 인명이 다칠 가능성이 있다 모아 두어 최악의 경우에는 젖혀지도록(듯이) 만들었던 것이다. |국립진주박물관 제공
1992년 8월, 한산도 오키로 돌아왔다고 하는 「총통」(발사 무기)이 일사천리로 국보( 제274호)로 지정되었다. 이름으로 「균함별황자총통」이었다. "만력병 신년(1596년·선조 29년) 6월에 제작된 균함(귀갑선)의 황자총통은, 적선을 놀래키고 일발을 공격하면 반드시 적선을 수장시킨다(균함황자경적선일 쏘아 맞혀 적선필수장)」는 명문이 새겨지고 있었다. 귀갑선에 장착한 대포가 발견되었다고 하는 것으로, 국보안의 국보라고 평가되었다. 그러나, 이 총통은, 어쨌든 4년 후(1996년)에 국보로 전격 해제된다.
청동 합금 소츠류를 분석해 보면, 16점으로 아연이 포함되었다고 하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동(Cu) 주석(Sn) 납(Pb)과 함께 아연(Sn)이 함유 된 것이 15점(5%), 동+아연이 1점(0%)이었다.1416세기의 총통에 아연이 포함된 것은, 「가짜」의 증거일 가능성이 있다. |국립진주박물관 제공
승진에 눈이 먼 이 충무공해전 유물 발굴 단장, 즉 현직 대령이 기술자와 짜 가짜 총통을 제작한 후, 바다에 반침이라고는 이것을 돌아왔는지와 같이 속은 사실이 적발되었기 때문이다. 수사 결과, 그들은 명문이 새긴 가짜 총통을 제작한 후, 1년간화공 약품을 따라, 빛나는 유물로 보이도록(듯이) 강제 부식시킨 사실이 밝혀졌다. 그 중으로, 국립 문화재 연구소의 성분 분석의 결과, 아연이 8%도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졸속국보물 지정을 막지 않았지만, 4년만에 거짓에 무너졌던 것이다.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다유세문경(국보 제 141호). 어떤 충격을 받았는지 망가졌다. 13wt%(중량퍼센트·weight percent)를 기준에 그 이상이면 잘 갈라져 그 이하로 잘 젖혀지는 특성을 가진다고 한다. |국립진주박물관 제공
국립진주박물관이 「가짜총통」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20년남짓이 지난2018년부터 1416 세기 제작되었다고 하는 청동제 소형총통 292점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흥미로운 사실을 분명히 했다.분석 대상중 16점(5%)으로 아연이 포함된것을 확인했던 것이다. 아연을 합금 하려면 , 원광석으로부터 추출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나, 아연은 휘발성이 매우 강한 금속으로서 알려져 있어 추출해 제련하는 것이 어려운 특징을 가지고 있다. 허일권국립진주박물관 학예 연구사는 「조선에서 금속 아연의 제련과 합금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시기는,상히라도리보물이 제작된(1678년·숙종 4년) 17 세기 이후라고 판단된다」라고 분명히 했다. 게다가 아연이 포함된 16점의 소형총통을 면밀하게 분석해 보면, 일부러 부식시킨 흔적도 력력 했다.
서울 군사기밀 싯타로 얽힌 채로 발견된 소형총통의 산. 구부러져 기능을 상실한 총통을 폐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국립진주박물관 제공
국내 소장의 일부의 총통이 가짜 가능성이 있다라고 하는 다른 증거도 찾아냈다. 총통을 제작할 때의 필수 조건은, 총구와 총신의 내벽이 최초부터 끝까지 일정이 아니면 안된다. 중심에 위치하지 않고 한쪽 편에 치우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한가운데가 얇아져도 화약이 발사되어 폭발해 버린다. 그러니까 벽을 균등하게 해 일정한 총신을 만드는 것이 소형총통제작의 핵심 기술이다.따라서, 당대의 조선의 기술자등은, 총통제작시에 총구와 총신을 고정해, 공간을 유지하는 장치, 즉 코어 지주(체프렛트)를 설치했다. 긴 막대 모양의 총신 부내형을 고정하는 상부는 W자형, 하부는 M자형, 방의 단부는 L자형에 각각 만들었다.
소형총통주조시중형과 외형, 그리고 코어 지주의 배치 모식도. W자 M자 L자형 코어 지주는 화약장이 일정이 되도록(듯이) 지지하는 장치이다. 그런데 국내현전 하는 총통 가운데, 이러한 장치가 없는 것이 10점남짓 확인되었다. 가짜와 추정되는 총통이다.|국립진주박물관 제공
그런데 , 국립진주박물관 연구팀이 소형총통을 CT(컴퓨터 단층)로 촬영한 결과,10점남짓으로 이러한 코어 지주를 볼 수 없었다. 허일권학예사는 「이 안에는 아연이 포함되어이중으로 가짜 가능성이 체크된 총통도 있다」라고 해 「이러한 가짜와 추정되는 총통에서는 근년 부식시킨 흔적도 볼 수 있다」라고 분명히 했다. 한마디로 가짜라고 하는 것이다.허일권학예사는 「균함별황자총통이 유명세를 탄 1990년대 초, 이러한 가짜가 제작 유통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분명히 했다.
국립진주박물관은 이와 같이 고려말 조선 중기, 즉 1416 세기의 사이에 제작된 소형 화약 무기 800여점을 조사한 결과를<조선 무기 조사 연구 보고서:소형 화약 무기>를 최근 발간했다. 채연 장 관장은 22일, 「보고서에 실린 무기만으로 합계 748점에 이른다」라고 해, 「국내 유일한 임진원란전문 박물관인 국립진주박물관이 대량의 실물 자료를 기초로 과학적 조사와 문헌 자료를 제휴해, 종합적인 연구 결과를 도출했다」라고 자평 했다. 보고서에는, 800점 남짓의 안으로 선별한 소형총총통 275건(292점)으로 총통 48건 50점(전신 24점 포함한다)의 사진이나 제원이 상세하게 실려 있다.
CT(컴퓨터 단층) 촬영으로 확인한 조선 전기 소형총통의 내부 구조. |국립진주박물관 제공
박물관측은 과거 2년간, 연구 대상총통의 제원을 측정해, 내시경 조사와 3 차원 스캔, CT촬영등에서 성분을 분석했다.그 결과, 먼저 분명히 한 일부의 자료의 진위를 판단하는 등, 지금까지 몰랐다 많은 새로운 사실을 분명히 했다. 일례로서 비파괴 분석의 결과, 국내 청동제 소형총통 300점 남짓의 주성분(동 주석납) 중주석 함유량은 510 wt%(중량퍼센트·중량%) 정도로 측정되었다. 이 정도의 주석 함유량은, 일반적인 청동제 문화 유물과 비교하면 낮은 분에 속한다. 고대 유물 중 청동거울의 경우, 주석 함유량이 20 wt%이상이다.
소형 총통으로 확인되는 님 들인 명문. 총통을 주조한 후, 제조 연도와 제조지, 제작자, 중량등을 새겼다. |국립진주박물관·서울 역사 박물관 제공
그런데 , 총통으로 볼 수 있도록(듯이) 주석 함유량이 낮다고 구부러질지 용이하게 갈라지지 않는 특성을 보인다. 확실히 이것이 무기로서의 총통을 만드는 원칙이다. 무기(총통)를 사용하는데 도중에 갈라지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화약을 발사할 때의 충격으로 갈라졌을 경우, 주변의 사람들이 상처를 입거나 죽을 우려가 생긴다. 따라서, 최악의 경우, 젖혀질지 망가지지 않게 해야 한다.호일권학예사는 「이것이 눈앞의 소형 총통의 쳐 망가진 형태는 아니고 젖혀진 상태로 전해지는 총통이 상당수 발견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1992년, 해군 이 충무공해전 유물 발굴단이 돌아왔다고 하는 총통, 1597년에 귀갑선에 장착되어 사용되었다고 발표되었지만, 4년 후에 가짜와 판명되었다. 이 총통에는 아연이 8%이상 포함되어 있었다. 조선에서 금속 아연의 제련과 합금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시기는,상히라도리보물이 제작된(1678년·숙종 4년) 17 세기 이후다. |경향 신문 자료 사진
또 이번 연구에서는, 명문 조사나 3 D스캔등을 통해서, 조선 전기의 소형총통으로 보여지는 마디(죽절)의 개수로부터, 총통의 종류에 의한 규칙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외, CT촬영과 내시경 조사의 결과,<국 조오례의 서도>나<병기 그림 해설>의 기록을 기초로 행해진 선행 연구로 주장된 격키베(격키즈츠)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확인할 수 있었다. 「격목」은, 폭발로 발생한 연소 가스가 새지 않게, 발사체와 화약의 사이의 공간을 막습니다. 즉, 총통실내의 폭발 압력을 높이기 위한 보조 장치이다.이번 조사 과정에서 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안에 내부에 격목이 남아 있는 총통도 처음으로 찾아냈다.
채연 장 관장은 「화약 무기는 당대 최첨단 기술의 집합체이지만, 중국, 일본등의 연구 실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진이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해 「이번 CT, 3 D스캔등의 최첨단 장비를 활용한 연구를 통해서 많은 새로운 사실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라고 이야기했다.
https://m.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006221300001
참고 1 https://www.kjclub.com/jp/board/exc_board_9/view/id/3636910
참고 2 https://www.kjclub.com/jp/board/exc_board_9/view/id/3637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