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国人だけが知らない世界の常識w
[寄稿]韓国は見せかけの先進国という「外皮」を脱ぎ捨てよ
ハンギョレ新聞 2022-11-21
それだけではない。韓国文化は世界の人々の楽しむグローバル文化になった。政府樹立後数十年間にわたって厳しい独裁を経験したものの、1987年の民主化以降、民主主義はだんだんと強固になっていると信じていた。私たちが直面する深刻な社会経済問題さえ「先進国」大韓民国が支払うべきコストだと考えていた。
しかし、そうではなかった。韓国は深刻な社会経済的問題を抱えている「奇妙な先進国」ではなく、物質的豊かさを除いてほとんどすべてが成熟していない「奇妙な後進国」だった。でなければ、セウォル号惨事を経験して10年もたたないうちに、国がまたしても国民の安全をないがしろにし、その責任すら否定する状況が繰り返される現実を説明する術がない。
このかん私たちが作ってきたと思っていた「先進的」システムは作動しなかった。民主主義社会だから無能な人々も大統領になりうるし、無能な政党も政権を握りうると考えていた。だが、私たちがきちんとした社会・経済・政治システムを作っておけば、誰が政権を握っても国はきちんと動くと思っていた。
大変な錯覚だった。経済さえ成長させれば成熟した社会と政治は自然についてくると思っていたのだが、そうではなかった。経済成長のみを最高の価値とする社会では、力量のある民主的政治勢力も、社会も、成長できなかったからだ。
振り返ってみれば梨泰院(イテウォン)惨事が発生する前から、目に見えない社会・政治力量を成熟させなければ私たちの社会は持続可能にはならないという警告音が鳴り響いていたように思う。近くはセウォル号惨事からはじまって、深刻化する不平等、自分の権利だけが大切で、自分と自分の家族のみが豊かに暮らせればそれでいいという極めて利己的な自己責任という価値観、国と政治に対する途方もない不信に至るまで、あらゆる現象が危険を警告していた。
不幸なのは、責任あるいかなる政治勢力も、これらの警告を真剣に受け止めていなかったことだ。いや、受け入れられなかったのだろう。解放後、韓国には経済成長と先進国入りという誰も否定できない明確な目標があった。問題は、韓国社会がその合意された目標に達するやいなや、どこへ向かうべきか迷ってしまったということだ。私たちには、先進国に追いつくためにより速く「成長」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古い目標に代わる、新たな代案的目標がなかったからだ。
新たな代案的目標が見出せなかったから、誰も成長第一主義という古いフレームから抜け出せなかった。すると有力な政治勢力は、競うように「自分たちこそが国民をより金持ちにできる」と叫びはじめた。誰かが韓国社会を根本から問い、省察を求めれば、世間知らずがおめでたいことを言っていると思われるのが常だった。
前回の大統領選挙を振り返ってみれば、さらにそれが明らかになる。二大政党の公約は、その公約が「成長と福祉の好循環」という外見に覆われていようが、「公正な成長と国民生活の安定」とパッケージされていようが、結局中身はさらに豊かになるためにはさらに速い成長が必要だというものだった。こうして私たちの誰もが、早い成長という過ぎ去った昔の歌を吟じ続けている間に、韓国社会は前例のない危機に陥っていたのだ。
今、私たちはどこに立っているのだろうか。物質的に豊かな大韓民国の2022年を歴史はどのように記録するだろうか。歴史は2022年を民主化以降「最悪の年」のひとつとして記録するかもしれない。法の支配を装った人の支配が民主主義と等値とされ、公正と自由を叫ぶ政権の下で、不自由と不公正はより深刻になった。そしてソウルのど真ん中では、罪のない多くの市民が無責任な国のせいで命を落とす惨事が起きた。
経済だけが成長した奇妙な後進国、大韓民国が歩んできた道に対する冷静な省察が必要だ。物質的豊かさが全てではないということが、そして社会の力量の成熟とその社会を導いていく力量のある民主的政治勢力の成長なしには国民の生活を安全で幸福なものにすることはできないということが、明らかになった。最悪の2022年、私たちはどこへどのように向かってゆけばよいのか。社会的議論を始めよう。見せかけの先進国という外皮は脱ぎ捨て、これからは国民が安全で幸せな国を作る新たな歴史を記さねばならない。
한국인만이 모르는 세계의 상식 w
[기고]한국은 외관의 선진국이라고 하는 「외피」를 벗어 던져서
그것 만이 아니다.한국 문화는 세계의 사람들이 즐기는 글로벌 문화가 되었다.정부 수립 후 수십 년간에 걸쳐서 어려운 독재를 경험했지만, 1987년의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는 점점 강고하게 되어 있다고 믿고 있었다.우리가 직면하는 심각한 사회경제 문제마저 「선진국」대한민국이 지불해야 할 코스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이 관우리가 만들어 왔다고 생각한 「선진적」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민주주의 사회이니까 무능한 사람들도 대통령이 될 수 있고, 무능한 정당도 정권을 잡을 수 있는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하지만, 우리가 제대로 한 사회·경제·정치 시스템을 만들어 두면, 누가 정권을 잡아도 나라는 제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대단한 착각이었다
되돌아 보면 이태원(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기 전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정치력량을 성숙시키지 않으면 우리의 사회는 지속 가능하게는 안 된다고 하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던 것처럼 생각한다.근처는 세워르호참사에서는 글자 기다리고, 심각화하는 불평등, 자신의 권리만이 중요하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이 풍부하게 살 수 있으면 그것으로 좋다고 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자기책임이라고 하는 가치관, 나라와 정치에 대한 터무니없는 불신에 이르기까지, 모든 현상이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다.
불행한 것은, 책임 있다 어떠한 정치 세력도, 이러한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 들이지 않았던 것이다.아니, 받아 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해방 후, 한국에는 경제성장과 선진국 진입이라고 하는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문제는, 한국 사회가 그 합의된 목표에 이르자 마자, 어디로 향해야할 것인가 헤매어 버렸다고 하는 것이다.
새로운 대안적 목표를 찾아낼 수 없었으니까, 아무도 성장 제일 주의라고 하는 낡은 프레임으로부터 빠져 나갈 수 없었다.그러자(면) 유력한 정치 세력은, 겨루듯이 「스스로가 국민을 보다 부자로 할 수 있다」라고 외치기 시작했다.누군가가 한국 사회를 근본으로부터 물어, 성찰을 요구하면, 철부지가 경사스러운 말을 한다고 생각되는 것이 상이었다.
전회의 대통령 선거를 되돌아 보면, 한층 더 그것이 밝혀진다.2 타이세이당의 공약은, 그 공약이 「성장과 복지의 호순환」이라고 하는 외관에 덮여 있든지, 「공정한 성장과 국민 생활의 안정」이라고 패키지 되고 있든지, 결국 내용은 한층 더 풍부해지기 위해서는 한층 더 빠른 성장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었다.이렇게 해 우리의 누구나가, 빠른 성장이라고 하는 지나가 버린 옛 노래를 음 글자 계속하고 있는 동안에, 한국 사회는 전례가 없는 위기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있는 것일까.물질적으로 풍부한 대한민국의 2022년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역사는 2022년을 민주화 이후 「최악의 해」의 하나로서 기록할지도 모른다.법의 지배를 가장한 사람의 지배가 민주주의와 등치로 여겨져 공정과 자유를 외치는 정권아래에서, 부자유와 불공정은 보다 심각하게 되었다.그리고 서울의 한가운데에서는, 죄가 없는 많은 시민이 무책임한 나라의 탓으로 목숨을 잃는 참사가 일어났다.
경제만이 성장한 기묘한 후진국, 대한민국이 걸어 온 길에 대한 냉정한 성찰이 필요하다.물질적 풍부함이 모두는 아니라고 하는 것이, 그리고 사회의 역량의 성숙과 그 사회를 이끌어 가는 역량이 있는 민주적 정치 세력의 성장없이는 국민의 생활을 안전하고 행복한 것으로 하는 것은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밝혀졌다.최악의 2022년, 우리는 어디에 어떻게 향해 가면 좋은 것인가.사회적 논의를 시작하자.외관의 선진국이라고 하는 외피는 벗어 던져 지금부터는 국민이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새로운 역사를 적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