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4/18 17:26 (2018/3/20 12:09 更新)
中央計画素案の中で、首都の候補について記されている部分(国立公文書館のアジア歴史資料データベースより)
戦時中、政府が首都移転の候補地として考えていた旧福島町を含む八女市中心部
八女が日本の首都になっていたかもしれない。突拍子もない冗談のようだが、実は太平洋戦争中に政府が検討していた歴史的事実だ。「事実は小説より奇なり」とはまさにこのこと。当時の資料をひもとき「八女遷都論」について調べてみた。
「八女遷都論」が明記されているのは、1943年10月付の極秘文書「中央計画素案」だ。内閣総理大臣直属の組織で、戦時下の国家総動員体制の諸計画を立案した「企画院」が作成した。現在は、国立公文書館の「アジア歴史資料データベース」で公開されている。
この文書は朝鮮、中国、東南アジアにおける権益確立を目指す「大東亜共栄圏」建設を見据え、政治、経済、産業、文化、防衛などを含めた国のあり方について方向性を示したもの。計画の対象は日本、朝鮮、台湾。遂行目標を「一応15年」としていた。
「首都」の項目では、候補地として岡山県行幸村(現・瀬戸内市)、朝鮮京畿道京城府(同・ソウル)と並び福岡県福島町(同・八女市)が挙げられていた。条件として、全国土の中心▽地震、風水害など天災地変が少ない▽寒さや暑さが厳しくない▽用水、電力、食料など物資が豊富▽既成の都市とは適当に離れている、など計6項目を明示。福島町は条件をクリアしていたようだ。
首都を構成する機能を、皇居のほか、政府各機関や生活必需物資配給機関、外国公館などとしているが、「極力不要なる機能の集中を抑制する」とも記載。「防空、耐火、耐震および美術上の見地において最も完全なる都市の造成に重点を指向する」と目標を掲げており、あらたに計画都市を造ろうとしていたことがうかがえる。
極秘文書は1967年、福岡県立花町(現八女市)出身の県職員だった故松延茂さんが発見した。松延さんは地域文芸誌「飛形」への寄稿で発見の経緯を振り返っている。当時、松延氏は県の企画室企画主査として県総合開発計画の策定に当たっていた。その参考資料を集める中で、戦前、戦中の膨大な公文書に触れる機会があり、その中から見つけたのだという。
この「中央計画素案」策定から2年後に日本は敗戦。遷都案も消えた。松延氏は寄稿の中で、矢部川の自然豊かな風情を表現した洋画家・青木繁の書簡の一節を紹介しながら思いを語っている。「福島町中心地区が首都になっていたら、わが故郷の様相はどうなっていたことか。時折、白昼夢にも似たまぼろしの首都を思い描いてみることを楽しみにしているが、そのようなとき、青木繁の詩情が私の心をゆさぶるふるさとである」
もし、福島町に首都が置かれたら、現在、八女はどうなっていただろう。国会や中央省庁が集まり、周辺も高層ビルが立ち並んでいるのではないか。人口も比べものにならないほど増えていたはずだ。一方で、伝統的な白壁の町並みや、丘陵地に広がる茶畑など現在の八女ならではの風景は失われていた可能性が高い。
いずれにせよ、多くの謎を残し、八女遷都論は歴史の中に消えた。
この記事は2017年04月18日付で、内容は当時のものです。
https://www.nishinippon.co.jp/item/o/328970/
2017/4/18 17:26 (2018/3/20 12:09 갱신)
중앙 계획 처음의 안 중(안)에서, 수도의 후보에 대해 기록되고 있는 부분(국립 공문서관의 아시아 역사 자료 데이타베이스보다)
전시중, 정부가 수도 이전의 후보지로서 생각하고 있던 구후쿠시마쵸를 포함한 야메시 중심부
야메가 일본의 수도가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엉뚱한 농담같지만, 실은 태평양전쟁중에 정부가 검토하고 있던 역사적 사실이다.「사실은 소설보다 진기함이든지」란 확실히 이것.당시의 자료를 끈이라고 해 「야메 천도론」에 대해 조사해 보았다.
「야메 천도론」이 명기되어 있는 것은, 1943년 10월 첨부의 극비 문서 「중앙 계획 처음의 안」이다.내각총리대신 직속의 조직으로, 전시하의 국가 총동원 체제의 제계획을 입안한 「기획원」이 작성했다.현재는, 국립 공문서관의 「아시아 역사 자료 데이타베이스」에서 공개되고 있다.
이 문서는 조선, 중국, 동남아시아에 있어서의 권익 확립을 목표로 하는 「대동아공영권」건설을 응시해 정치, 경제, 산업, 문화, 방위등을 포함한 나라의 본연의 자세에 대하고 방향성을 나타낸 것.계획의 대상은 일본, 조선, 대만.수행 목표를 「일단 15년」이라고 하고 있었다.
「수도」의 항목에서는, 후보지로서오카야마현 행차마을(현·세토우치시),조선 경기도의`부표{( 동·서울)와 줄후쿠오카현 후쿠시마쵸( 동·야메시)가 들어지고 있었다.조건으로서 전국흙의 중심▽지진, 풍수해 등 천재지변이 적은▽추위나 더위가 심하지 않은▽용수, 전력, 식료 등 물자가 풍부▽기성의 도시와는 적당하게 떨어져 있는, 등 합계 6항목을 명시.후쿠시마쵸는 조건을 클리어 하고 있던 것 같다.
수도를 구성하는 기능을, 황궁외, 정부 각 기관이나 생활 필수 물자 배급 기관, 외국 공관등으로 하고 있지만, 「극력 불필요한 기능의 집중을 억제한다」라고도 기재.「방공, 내화, 내진 및 미술상의 견지에 있어 가장 완전한 도시의 조성에 중점을 지향한다」라고 목표를 내걸고 있어 새로이 계획도시를 만들려 하고 있었던 것이 방문한다.
극비 문서는 1967년, 후쿠오카현 타치바나쵸(현야메시) 출신의 현 직원이었던 고 마츠노부 시게루씨가 발견했다.마츠노부씨는 지역 문예잡지 「비형」에의 기고로 발견의 경위를 되돌아 보고 있다.당시 , 마츠노부씨는 현의 기획실 기획 심사로서 현 종합개발계획의 책정에 임하고 있었다.그 참고 자료를 모으는 가운데, 전쟁 전, 전시중의 방대한 공문서에 접할 기회가 있어, 그 중에서 찾아냈던 것이라고 한다.
이 「중앙 계획 처음의 안」책정으로부터 2년 후에 일본은 패전.천도안도 사라진 .마츠노부씨는 기고 중(안)에서, 야베강의 자연 풍부한 풍치를 표현한 서양 화가·아오키 시게루의 서간의 일절을 소개하면서 생각을 말하고 있다.「후쿠시마쵸 중심지구가 수도가 되어 있으면, 우리 고향의 님 상은 어떻게 되어 있던 것인가.때때로, 백일몽에도 닮은 환상의 수도를 마음에 그려 보는 것을 기대하고 있지만, 그러한이라고 해 아오키 시게루의 시정이 나의 마음인 체하는 고향이다」
만약, 후쿠시마쵸에 수도가 놓여지면, 현재, 야메는 어떻게 되어 있었을 것이다.국회나 중앙 부처가 모여, 주변도 고층빌딩이 나란히 서 있는 것은 아닌가.인구도 비교가 안 되는 만큼 증가하고 있었을 것이다.한편, 전통적인 흰 벽의 마치나미 봐나, 구릉지에 퍼지는 차밭 등 현재의 야메만이 가능한 풍경은 없어져 있던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많은 수수께끼를 남겨, 야메 천도론은 역사안에 사라졌다.
이 기사는 2017년 04월 18 일자로, 내용은 당시의 것입니다.
https://www.nishinippon.co.jp/item/o/328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