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通信使は壬辰の乱で日本の敗戦以後交隣のために同等な立場(入場)で派遣された使臣団だ.
この当時 朝鮮は日本の天皇の存在を認知し始めた.
それで元々日本の国王だと称した将軍を,
「大君」という王より低い称号と呼び始めたし,
天皇を日本の国王で認知し始めた時期だ.
6台将軍 徳川家宣は 朝鮮 国王と同等な称号で均衡を合わせるため
将軍を 大君ではない国王だと呼んでくれるのを申し入れたが,
8台 徳川吉宗からまた 大君に帰って来たこともあった.
がのように日本の幕府も充分にお互いの関係を認知していた.
しかし日本は自国内部とヨーロッパに,
壬辰の乱は日本の勝利だったし,
朝鮮通信使が朝貢使臣団だと嘘ついていた.
日本は古代にはもっと途方もない嘘をついていたし, 歴史を歪曲した.
日本は現代にも歴史を歪曲している.
朝鮮通信使는 임진왜란에서 일본의 패전 이후 교린을 위해 동등한 입장에서 파견된 사신단이다.
이 당시 朝鮮은 일본의 천황의 존재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원래 일본의 국왕이라고 호칭했던 쇼군을,
「大君」이라는 왕보다 낮은 칭호로 부르기 시작했고,
천황을 일본의 국왕으로 인지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6대 쇼군 德川家宣은 朝鮮 국왕과 동등한 칭호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쇼군을 大君이 아닌 국왕이라고 불러주길 제의했으나,
8대 德川吉宗부터 다시 大君으로 돌아온 일도 있었다.
이 처럼 일본의 막부도 충분히 서로의 관계를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자국 내부와 유럽에,
임진왜란은 일본의 승리였고,
朝鮮通信使가 조공 사신단이라고 거짓말하고 있었다.
일본은 고대에는 더 터무니 없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으며, 역사를 왜곡했다.
일본은 현대에도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