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言で言うと次の抜粋である。
「日本呉音の直接の原型は朝鮮音(百済音)であり、その朝鮮音の原型は「楽浪方言音」、さらに楽浪方言音の原型は、黄海を挟んた朝鮮半島の対岸にある山東半島沿海部方言であると思われる。」
以下に歴史的背景の抜粋を記す。
「 遼東半島は中国(漢民族)の飛び地
現代の世界地図・中国地図を見て、古来から朝鮮と中国の国境は、長白山脈から流れ出る鴨緑江-豆満江で、漢民族と朝鮮民族は鴨緑江を挟んで隣り合わせに住んでいた、などと勘違いしている人が多くて困るが、古来鴨緑江の向こうは中国ではなく「満州」であり、そこに住んでいたのは中国語を話す漢民族ではなく、満州語を話す満州人であり、ここに漢民族が多数住み始めたのは19世紀以降のことである。
ただ、地理的には満州の一部であるが、黄海に突き出した遼東半島だけは、紀元前の遙か昔から漢民族の支配地域であった。
遼東半島と対岸の山東半島は最短100㎞弱であり、晴れた日には相互に観望でき、また山東-遼東には廟島列島という小さな島々が点在しており、しかも黄海は平均水深44mの浅く穏やかな海であり、原始的な筏や丸木船でも漕ぎ渡れたたため、山東半島から遼東半島への漢民族の移住は紀元前数千年、考古学時代まで遡る。
それ以前に遼東半島に住んでいたであろう満州系やモンゴル系の先住民を追い払った漢民族は、紀元前5世紀頃の戦国時代には、半島の付け根に長城(燕の長城)を築いて、満州系やモンゴル系民族の侵入を防いでいた。
つまり、遼東半島だけは紀元前の遙か昔から満州に於ける「中国の飛び地」だったのである。 」
詳しい説明は以下サイトを参照して下さい。
https://hakusukinoe.site/Go-on
ここで、ぼくが思うに呉(春秋時代)が南方の越に滅ぼされた時に呉の民は北方に逃げたはずであり、特に船で逃げれば山東半島に漂着する。
なので山東半島沿海部方言が呉音というネーミングは、それはそれで妥当ではないか。
한마디로 말하면 다음의 발췌이다.
「일본오음의 직접적인 원형은 조선음((쿠다라)백제음)이며, 그 조선음의 원형은 「락랑방언음」, 한층 더 락랑방언음의 원형은, 황해를 협한반도의 대안에 있는 산동 반도 연해부 방언이다고 생각된다.」
이하에 역사적 배경의 발췌를 기록한다.
「요동 반도는 중국(한민족)의 뚝 떨어진 영토
현대의 세계 지도·중국 지도를 보고, 고래부터 조선과 중국의 국경은, 장백산맥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압록강-두만강에서, 한민족과 조선 민족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이웃(옆자리)에 살고 있던, 등과 착각 하고 있는 사람이 많아서 곤란하지만, 고래 압록강의 저 편은 중국은 아니고 「만주」이며, 거기에 살고 있던 것은 중국어를 하는 한민족이 아니고, 만주어를 이야기하는 만주인이며, 여기에 한민족이 다수 살기 시작한 것은 19 세기 이후의 일로 있다.
단지, 지리적으로는 만주의 일부이지만, 황해에 쑥 내민 요동 반도만은, 기원 전의 요인가 옛부터 한민족의 지배 지역에서 만났다.
요동 반도와 대안의 산동 반도는 최단 100 km 미만이며, 맑은 날에는 서로 관망할 수 있어 또 산토우-랴오둥에는 묘도열도라고 하는 작은 섬들이 점재하고 있어, 해 일지도 황해는 평균 수심 44 m의 얕고 온화한 바다이며, 원시적인 이카다나 통나무배로도 저어 도모아 두어 산동 반도에서 요동 반도에의 한민족의 이주는 기원 전 수천년, 고고학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전에 요동 반도에 살고 있었을 것이다 만주계나 몽골계의 선주민을 쫓아버린 한민족은, 기원 전 5 세기무렵의 전국시대에는, 반도의 밑에 장 시로(제비의 장 시로)를 쌓고, 만주계나 몽골계 민족의 침입을 막고 있었다.
즉, 요동 반도만은 기원 전의 요인가 옛부터 만주 에 있어서 「중국의 뚝 떨어진 영토」였으므로 있다. 」
자세한 설명은 이하 사이트를 참조해 주세요.
https://hakusukinoe.site/Go-on
여기서, 내가 생각컨대 오(춘추시대)가 남방의 월에 멸해졌을 때에 오의 백성은 북방으로 도망쳤을 것이어, 특히 배로 도망치면 산동 반도에 표착한다.
그래서 산동 반도 연해부 방언이 오음이라고 하는 네이밍은, 그것은 그래서 타당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