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board/exc_board_9/view/id/3468923
1. その文で高句麗が建国される時新羅はないと言っているが,
記録上に新羅はB.C. 57年に, 高句麗より先に建国された.
2. 高句麗は 遼河 半島に建国されたと言うのに,
高句麗は 遼河 半島ではなく, 中央内陸地域に建国された.
3. そして高句麗と東海は 沃沮で支えているから
三国史記 37年に出る東海が渤海という怪変をするのに,
三国史記 37年の東海は高句麗の領土として出るのではなく,
夫余の領土, 迦葉原を話すのだ.
(三国史記圏13 高句麗本紀第1 東明聖王 元年参照)
沃沮と ?婁は 夫余の属国だったので, 領土的に東海岸と接している.
むしろ渤海, 西海には 楽浪郡と 遼東郡, 中国の郡県があった時期だから
三国史記に出る東海が渤海というのはもっと話にならないことだ.
日本の竹島研究所は基本的な歴史知識もない浅い水準で怪変を列べる所のよう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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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pref.shimane.lg.jp/admin/pref/takeshima/web-takeshima/takeshima04/takeshima04-2/takeshima05-q.html
1. 그 글에서 고구려가 건국될때 신라는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기록상으로 신라는 기원전 57년에, 고구려보다 먼저 건국됐다.
2. 고구려는 遼河 반도에 건국됐다고 하는데,
고구려는 遼河 반도가 아니라, 중앙 내륙 지역에 건국됐다.
3. 그리고 고구려와 동해는 沃沮로 막혀있기 때문에
삼국사기 37년에 나오는 동해가 발해라는 괴변을 하는데,
삼국사기 37년의 동해는 고구려의 영토로써 나오는 것이 아니라,
夫餘의 영토, 迦葉原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삼국사기 권13 고구려본기 제1 東明聖王 원년 참고)
沃沮와 挹婁는 夫餘의 속국이었으므로, 영토적으로 동해안과 접해있다.
오히려 발해, 서해에는 樂浪郡과 遼東郡, 중국의 군현이 있던 시기이기 때문에
삼국사기에 나오는 동해가 발해라는 것은 더욱 말도 안되는 소리다.
일본의 다케시마 연구소는 기본적인 역사 지식도 없는 얕은 수준으로 괴변을 늘어놓는 곳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