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代の韓国は本来盟主である 目支国と 4個の 臣智国が統治する国家だった.
新羅と百済はその下に属している 小国だった.
目支国の統治体制が崩壊された後にも,
残存した 臣智国はその隣近の 小国らに,
支配力を発揮する盟主として残っていた.
そのうち 臣雲新国(新彌諸国,?彌多礼)の場合は,
晉書の記録で 目支国が滅亡した後にも,
20余個の国家を従えていたと言う.
残存した東南の方の 臣智国だった 安邪国と 狗邪国も
彼に準する勢力があったはずだ.
初期の新羅もこれらを対局として礼遇をしていた.
過去 弁韓, 任那あるいは伽揶に属していた 浦上の 8ヶ国家も,
安邪国と 狗邪国の支配力の下にあった国家だ.
しかし 浦上の 8ヶ国家は,
安邪国と 狗邪国に不満を抱いて, 下克上を計画する.
これら 8個の国家は連合して 安邪国 あるいは 狗邪国を攻撃するようになる.
(記録が変わる. 安邪国 あるいは 狗邪国 あるいは二つともであった可能性もある.)
これらの攻撃を手におえ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任那の盟主は,
新羅に助けを要請するようになる.
結局新羅の参戦で下克上は失敗で終わるようになる.
新羅が 安邪国と 狗邪国を押して浮び上がる新興強者で半島の東で完全な優位を占めるようになったこともこの時からだ.
三国史記には 209年‾212年に起こった戦争だと記録するのに,
三国史記初期新羅の年代は不正確なのが多い.
最小 目支国の滅亡後, 3世紀後半, 4世紀にあった戦争だと思う.
고대의 한국은 본래 맹주인 目支國과 4개의 臣智國이 통치하는 국가였다.
신라와 백제는 그 아래에 종속되어 있는 小國이었다.
目支國의 통치체제가 붕괴된 후에도,
잔존한 臣智國은 그 인근의 小國들에,
지배력을 발휘하는 맹주로써 남아있었다.
그 중 臣雲新國(新彌諸國,忱彌多禮)의 경우는,
晉書의 기록으로 目支國이 멸망한 뒤에도,
20여개의 국가를 거느리고 있었다고 한다.
잔존한 동남쪽의 臣智國이었던 安邪國과 狗邪國도
그에 준하는 세력이 있었을 것이다.
초기의 신라도 이들을 대국으로써 예우를 하고 있었다.
과거 弁韓, 임나 혹은 가야에 속해있던 浦上의 8개 국가도,
安邪國과 狗邪國의 지배력 아래에 있었던 국가였다.
하지만 浦上의 8개 국가는,
安邪國과 狗邪國에 불만을 품어, 하극상을 계획한다.
이들 8개의 국가는 연합하여 安邪國 혹은 狗邪國을 공격하게 된다.
(기록이 갈린다. 安邪國 혹은 狗邪國 혹은 둘 다 였을 가능성도 있다.)
이들의 공격을 감당할 수 없었던 임나의 맹주는,
신라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결국 신라의 참전으로 하극상은 실패로 끝나게 된다.
신라가 安邪國과 狗邪國을 누르고 떠오르는 신흥 강자로 반도의 동쪽에서 완전한 우위를 점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이다.
삼국사기에는 209년~212년에 일어난 전쟁이라고 기록하는데,
삼국사기 초기 신라의 년대는 부정확 한 것이 많다.
최소 目支國의 멸망 후, 3세기 후반, 4세기에 있었던 전쟁이라고 생각한다.